석유 최고가격제 '출구전략' 딜레마…‘재정부담 가중 vs 국내유가 폭등’
2026.04.26 10:56
제도 연장하며 재정부담 가중…단계적 연착륙 방안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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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 휴전 및 종전 협상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부가 중동 전쟁에 따른 원유 수급 위기 속에서 민생 안정 등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두고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업계와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는 도입 초기에는 국내 유가 안정 등 긍정적 역할을 했으나, 중동 전쟁 장기화로 정부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는데다 이 제도가 석유 소비를 억제하지 못하는 등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제도를 종료(폐지)하면 누적 인상 억제분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국내 유가가 폭등하면서 서민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일단, 산업부는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24일부터 적용되는 4차 석유 최고가격 동결 조치와 관련, 현재로선 제도 종료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진전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면서 국제유가가 안정됐다고 판단될 경우 모든 것을 고려해 폐지 여부를 검토할수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4차에 이어 5월 8일부터 5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될지 여부다.
정부는 2주 단위로 국제유가 변동률을 반영해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출고 가격에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운용하고 있다. 가격을 고정하는 방식에 비하면 시장 변동성을 어느 정도 흡수하므로 반등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상한액이 실제 국제유가의 변동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 첫 시행 이후 실제 가격 억제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다.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하면 현재 주유소 판매가격은 보통휘발유(이하 휘발유)가 L(리터)당 2200원 내외, 자동차용 경유(이하 경유)는 2800원 내외, 실내 등유(이하 등유)는 2500원 내외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2000원 선임을 고려하면 소비자는 이 제도 덕분에 L당 800원 정도의 인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혜택 이면에 감춰진 '인상 억제분'이다. 정부는 물가 관리와 서민 경제 부담 등을 고려해 국제가격 인상분보다 낮은 수준으로 상한액을 조절해 왔다. 그 결과 2차 최고가격 결정 때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에 달한다. 제도 조기 종료 시 이 차액이 한꺼번에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파키스탄은 2022년 2∼5월 석유 가격을 동결했다가 해제 직후 휘발유 가격이 66%나 급등하는 혼란을 겪었다. 헝가리 역시 2021∼2022년 가격상한제 기간 중 연료 판매량이 50%나 급증하며 수급 왜곡이 심화했고, 결국 제도가 끝난 뒤 혹독한 가격 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렇다고 석유 최고가격제를 무한정 연장하기에는 정유사가 입는 손실보전을 위한 정부 재정 압박이 너무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액을 분기별로 사후정산해 지원키로 했으며,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안에는 손실보전을 위한 4조 2000억 원 등 총 5조 원의 고유가 대응 예비기가 편성된 상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 적용 대상인 휘발유·경유·등유의 국내 일일 소비량은 약 100만∼120만 배럴에 달한다. 정유사 공급 단계에서의 가격 차액을 L당 100∼200원으로만 잡아도 정부가 부담해야 할 월 손실 보전 규모는 5000억 원에서 1조 원대에 이를 수 있다.
시장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제도 종료 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분산할 수 있는 정교하고 단계적인 연착륙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정부가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서도 4차 석유 최고가격을 인하하기보다는 동결한 것을 두고 출구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석유 최고가격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며 대안 수단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석유 최고가격제는 고유가 급등 초기의 단기 대응으로서는 역할이 있었으나, 이 구조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도, 자원 배분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최고가격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유류세 조정과 취약부문 직접지원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출구 시점을 구체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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