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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인정…통화 주권은 국가에”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2026.04.25 21:01

(29) 디지털 화폐 전쟁


“스테이블코인을 존중하되, 통화의 중심은 CBDC와 예금토큰이 돼야 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의 국회 청문회 서면 답변은 단순한 정책 방향이 아니다. 이 문장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디지털 통화 패권 논쟁’의 결론을 압축한다. 그리고 이 결론은 필자가 지난해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6회에서 제시했던 문제의식 ‘CBDC vs 스테이블코인 경쟁을 넘어, 공존 구조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지난 4월 15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통화 패러다임 전환

불과 1~2년 전만 해도 시장은 이렇게 이해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CBDC 진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진영.’

혹은 ‘국가 vs 민간, 통제 vs 자유의 충돌.’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CBDC를 사실상 금지하고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밀어주면서, 이 구도는 더욱 선명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통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역할 분담이 시작됐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가 통화를 위협하거나 대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달러를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 은행 계좌 없이도, SWIFT망 없이도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달러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곧,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패권의 디지털(온체인) 유통망이다. 그래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활용한다. 담보의 대부분이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다는 점은 스테이블코인이 곧 미국 국채 수요를 창출하는 장치라는 의미다.

CBDC와 예금토큰, ‘통화의 중심’

그렇다면 왜 한국은행은 CBDC와 예금토큰을 중심에 두려 할까. 답은 명확하다.

통화는 결국 국가의 신뢰와 통제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이는 법정통화 그 자체다. 예금토큰은 시중은행이 발행하지만, 중앙은행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디지털 예금이다. 이 둘은 국가 통화 시스템 내부에 존재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의 분산 네트워크 위에서 움직인다. 속도와 확장성은 뛰어나지만, 통화 주권의 관점에서는 외부 변수다. 신현송 후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되, 통화 중심은 국가가 쥐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실험: 통합 통화 네트워크

이 구조는 이론이 아니다. 이미 실험이 진행됐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프로젝트 RLN’은 ‘CBDC, 예금토큰, 스테이블코인’을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운용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CBDC는 신뢰와 통제, 예금토큰은 기존 금융 시스템 연결,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확장’.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분산원장 위에 얹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개발하고 있는 기관용이나 범용 CBDC가 아닌 일종의 독특한 하이브리드 CBDC 시스템인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에 당선되면서 이 실험을 중단시키고 민간 분야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실험이 한국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한국은행의 CBDC 시스템이 바로 미국의 CBDC 개발 방향과 방식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개발한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상업은행이 예금토큰을 만들며 민간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을 포용할 여지를 남기는 구조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 새로운 통화 질서 설계에 가깝다. 하지만 이재명정부가 들어서자 한은 역시 이 실험을 중단하고 관망 중이다.

부각되는 비트코인의 위치

이 모든 변화 속에서 비트코인의 위치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CBDC와 예금토큰이 ▲기존 통화 체제 내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통화 체제에서 확장이라면, 비트코인은 그 바깥이다. ‘통제되지 않고, 발행 주체가 없으며, 정치와 분리된 자산.’ 그래서 비트코인은 화폐라기보다 디지털 시대의 금, 곧 ‘준비자산’에 가깝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강화할수록 비트코인의 존재 이유는 더 선명하고 강해진다. 결국 미래 통화 시스템은 이렇게 정리된다. ‘1층(중앙은행) → CBDC·2층(상업은행) → 예금토큰·3층(민간 네트워크) → 스테이블코인+외부 자산 → 비트코인.’ 이것이 ‘디지털 화폐 삼국지’의 시작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가 역할을 나눠 공존하는 구조다.

한국의 선택: ‘포용형 설계’가 답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첫째, CBDC와 스테이블코인을 경쟁이 아닌 공존으로 봐야 한다. 둘째, 예금토큰을 통해 기존 금융 시스템과 연결해야 한다. 셋째,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운용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과 브릭스가 주도하는 CBDC, 미국이 지원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대한민국 통화 시스템의 백년대계 설계다. 양쪽을 아우르며 동시에 모든 종류의 디지털 자산을 포용할 수 있는 선진 통화 시스템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다.

CBDC는 본질적으로 추적 가능한 화폐다. 이는 개인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통화 시스템의 핵심은 익명성과 투명성의 균형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과 제도의 동시 발전이다.

새롭게 등장한 ‘네 번째 축’: 금 ETF

여기서 이번에 중요한 변화가 등장한다. 신현송 후보는 외환보유액 운용 방식에서 금 ETF 등 투자 수단 다양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의 의미는 크다. 그동안 외환보유액은 달러 자산, 특히 미국 국채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달러 보유가 아니라 자산 분산 전략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는 ‘넥스트 달러 시대’ 준비이자 다음과 같은 인식을 반영한다.

“달러 시스템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준비자산도 다변화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연결이 완성된다. ‘CBDC → 통제되는 디지털 통화·스테이블코인 → 확장되는 디지털 달러·비트코인 → 비국가적 가치 저장, 금 → 역사적 준비자산.’ 곧, 미래 통화 시스템은 단순한 디지털 경쟁이 아니다. 디지털과 실물(금)이 결합된 구조다. 특히, 금 ETF를 외환보유액에 포함시키는 발상은 금의 역할이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통화 시스템 일부로 복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현송 후보의 답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장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그 흐름을 충분히 목격해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확장하고, CBDC는 통화를 통제하며, 예금토큰은 금융을 연결하고, 비트코인은 그 바깥에서 가치를 저장한다. 이것이 디지털 화폐 시대의 질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포지션을 잡는 것이다. 디지털 통화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통화 질서의 설계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6호(2026.04.20~04.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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