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당선” 오만인가, 도덕성 몰락인가
2026.04.25 07:01
● 민주당 당헌 “부정부패 재보궐엔 후보 내지 않는다”
● 2021년 재보궐부터 사라진 부정부패 무공천 원칙
● 정치권에서는 ‘뻔뻔함과 음흉함(厚黑)’ 갖춰야 성공하나
● 논란 빚은 후보 공천, 선거엔 유리할 수 있으나…
● 선거 이기려고 도덕 등한시한다면 민주주의는 파괴
경기 안산갑 선거구의 경우 전임자 양문석 전 의원이 딸 명의로 11억 원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평택을은 이병진 전 의원이 선거공보물에 재산 내역을 누락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선거구 역시 민주당 신용대 전 의원 측 선거캠프 핵심 인사들이 여론조사 중복 응답과 당내 경선 조작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되며 당선 무효형이 내려졌다.
진보진영, 아무도 도덕 찾지 않아
염치가 있는 정당이라면, 국민 세금으로 다시 치러지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과거 자당 귀책사유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서 무공천을 원칙으로 삼았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제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가 실시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었다.해당 규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15년 10월, 경남 고성군 재선거 유세에서 강력히 주장하며 개정한 것이다. 당시 그는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전임 군수(하학열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돼 치러지는 선거”라며 “그랬으면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귀책사유가 있는 지역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며 새누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만큼 과거 진보진영은 도덕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그래야만 보수진영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적 자산이 쌓였기에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국정농단 비리로 무너졌을 때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여권에서 아무도 도덕을 찾지 않는다.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결함을 넘어 한국 정치의 품격이 어디까지 추락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먼저 경기 안산갑에 출마 의사를 밝힌 김남국 대변인을 보자. 공무 수행 중 수십억 원대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수차례 거래했다. 국회 상임위 도중, 그것도 이태원 참사 현안 질의가 열리는 엄숙한 순간에도 암호화폐를 거래했다. 또한 암호화폐 과세를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한 사실이 드러나며 이해충돌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탈당했다가 청와대 디지털소통비서관으로 복귀했으나, 또다시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문진석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대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민간업체 인사를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대변인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올해 2월 당 대변인이 됐다.
김용 전 부원장도 안산갑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맡던 시절 “김용이나 정진상(전 성남시 정무조정실장)쯤은 돼야 측근”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최측근인 그는, 2022년 대선 경선에 필요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보석 기간 중 전국을 돌며 북 콘서트를 열고 있다.
'뜨거운 감자' 김용 출마 두고 민주당서도 설왕설래
김 전 부원장은 안산갑 지역구의 경쟁자인 김 대변인의 전략공천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4월 21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대변인은) 저하고 아주 친한 후배인데 지난번에 전략 공천을 한 번 받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전략공천을 받는 것이 특혜”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정청래 대표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의 한 고구마 농가를 찾아 민생 체험을 했다. 이 자리에 김 대변인도 동행했다.민생 체험 중 기자들이 김 전 부원장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정청래 대표는 김 대변인에게는 공천을 언급하며 농담을 건넸다. 정 대표는 함께 고구마순을 심던 김 대변인에게 “시원치 않은데”라며 “이래 가지고 공천 받겠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여기서 쓰러지면 공천을 주는 건가요”라며 받아쳤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농담의 형식을 빌려 정 대표가 김 대변인 전략공천에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 전 부원장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추미애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하남갑에도 출마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원장은 4월 23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가 알기로 저의 사법리스크에 의한 (공천) 불가론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김영진 의원, 조승래 사무총장 두 분 밖에 없다”며 “반면에 제가 국회로 들어와 국정조사로 결백을 밝히고 정치 검찰을 심판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공개 지지한 분들이 22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의 전략 공천은 특혜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요즘 제 공천에 매몰돼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김남국 후배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경기 하남갑에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당내 원로인 박지원 의원은 4월 24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 지사에게) 들은 바로는 하남갑에 (출마) 하겠다고 지도부와 이야기가 됐나보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김 전 부원장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도 (김 전 부원장에게 재보궐선거에) 나가라고 강하게 (이야기) 한다”며 “검찰과 사법부의 작태에 대해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김 전 부원장이 나가서 국민에게 심판받도록 민주당이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택을 출마를 선언한 조국 대표는 자녀 입시 관련 비리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논란 빚은 것이 무명보다 나은 정치판
2022년 10월 당 대변인을 맡고 있던 시기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 동훈 전 대표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0여 명과 자정이 넘은 시각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회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은 제보자의 거짓말로 밝혀져 김 전 청장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당해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 EU 대사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했는데, 김 전 청장은 이 내용을 왜곡 브리핑했다. 그는 페르난데스 대사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남북 긴장이 고조돼도 대화 채널이 있어 교류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이 브리핑을 들은 페르난데스 대사는 직접 “(내 발언이) 왜곡돼 유감”이라고 해명했다.
재보궐선거의 특성상 인지도는 결정적 변수다. 악명이 높은 것이 무명보다 낫다. 이름이 알려진 인물일수록 경선과 본선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논란을 빚은 인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에는 “어차피 당선된다”는 오만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이런 정치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선거판을 겪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느꼈다. 필자 역시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다. 정치판에 들어서자 예전에 쓴 글을 짜깁기해 나를 ‘여혐’ ‘극우 논객’으로 몰아세웠다. 심지어 내가 소속된 시민단체의 단톡방에서 한 회원이 5·18 폄하 관련 글을 올리자 ‘관련 글을 지우라’고 제지했음에도, 내가 직접 쓴 것처럼 왜곡 보도돼 법적 분쟁까지 겪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고향에 내려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면 어쩌나 고민했다. 그런데 의외로 주민들은 날 반갑게 맞아줬다. 일상이 바쁜 유권자 대부분은 TV에서 봤다는 이유만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억울한 낙인에 대해 해명하려다 당에 누가 될까 대응을 자제했었는데, 차라리 논란을 더 키워 주목받는 편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유리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정치인 중에는 정책으로 승부를 내기보단 어떻게든 자극적인 행동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그 관심이 비난이라도 뻔뻔하게 변명한다. 그렇게 인지도를 얻고 해당 진영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며 더 큰 권력을 잡아간다.
공천, 승부 전략이 아니라 공적 신뢰 기반한 약속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는 1911년 정치인들의 후흑(厚黑)에 대한 글을 썼다. 얼굴은 두껍고 속은 시꺼멓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 ‘후흑’이라고 쓴다. 정치인이 이름을 알리고 성공하려면 뻔뻔하고 음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 메시지는 발표된 직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17년에는 ‘후흑학(厚黑學·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이 책에서 리쭝우는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손권과 사마의 등 과거 중국의 정치를 주도했던 이들의 후흑사를 발가벗겼다. 중국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이 하나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이었음을 일깨우며, 역사상 공명을 떨친 사람 중 후흑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역설한다.
과거 정치에는 늘 후흑이 있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당파 싸움으로 수많은 선비가 죽어나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인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후흑의 정치를 정책 경쟁과 공존의 정치로 격상시킨 것이다. 후흑의 정치를 몰아내려던 민주주의가 최근 위협받고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에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상황에서 선출되는지, 이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책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졌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신호를 찾아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과 도덕’이라 설명한다.
공직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은 단순히 법적 판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규범과 도덕을 지키는 후보자였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이 검증에는 공적 권한을 행사했던 과정에서 드러난 판단의 문제, 도덕성 논란까지 포함된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도덕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 여당 공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재보궐선거는 ‘책임정치’의 시험대다. 기존 정치의 실패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거에서조차 과오를 씻지 못한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면, 이는 여권이 반성과 쇄신보다 당장의 의석을 우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 내부에서는 경쟁력과 인지도를 이유로 이러한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천은 단순한 승부 전략이 아니라 공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약속이다. 논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그 정당이 내세우는 가치와 명분 역시 설득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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