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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 <24> “해상교통로 무임승차 시대는 끝났다”…미국이 세계에 보내는 청구서

2026.04.25 14:41

안전 제공자에서 질서 집행자로 변모된 트럼프 시대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그림


프롤로그: 미국은 더 이상 바다를 ‘지켜주지’ 않는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의 한마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 미국 해양전략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냈다. “유럽과 아시아는 수십 년간 우리의 보호를 누려왔지만 이제 무임승차의 시대는 끝났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압박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해군력이 더는 세계 질서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미국은 지금 이란의 모든 항구와 해안선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원유 수출은 차단되고, 이란 선박에 대한 단속은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전 세계 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봉쇄 조치 이후 이란 선박 또는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 34척이 회항했다. 봉쇄는 더 이상 지역 작전이 아니라 글로벌 해양질서의 재편이다.

과거 미국은 “우리가 바다를 지키니, 너희는 안전하게 무역하라”는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운영했다.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해상교통로를 안정시키며, 동맹국들은 그 질서의 수혜자가 됐다. 미국 해군력은 공공재처럼 작동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은 더 이상 질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질서를 운영하고 비용을 청구한다. “우리가 질서를 집행하니, 너희도 비용을 지불하라.” 이것이 트럼프 시대 미국 해군력의 본질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다. AFIB는 단순한 함대의 존재가 아니다.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이다. 함대는 더 이상 억제를 위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항구를 사용하고 누가 흐름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질서의 집행 장치가 됐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는 바로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이란은 ‘존재하는 위협(TIB· Threat in Being)’으로 세계를 흔들 수 있다는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연구소장 AI 그림


I. 현존위협(TIB· Threat in Being) : 이란은 닫지 않아도 세계를 흔든다
TIB가 만드는 전략적 힘

전통적인 해양전략에서 강한 함대는 반드시 싸워야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함대조차 상대 행동을 제약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고전적인 ‘현존함대(Fleet in Being)’ 개념이다. 존재 자체가 전략적 효과를 만든다는 뜻이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 개념이 더 확장된다. 이란은 실제로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봉쇄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정의하는 ‘존재하는 위협’ 또는 ‘현존위협’인 ‘TIB(Threat in Being)’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공간이다. 폭은 좁고 항로는 제한적이며, 기뢰와 고속정, 해안미사일, 드론만으로도 충분한 불확실성을 만들 수 있다. 완전한 봉쇄가 아니더라도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보험료는 상승하고, 운임은 급등하며, 선박은 대기하고, 에너지 가격은 흔들린다. 실제 공격 없이도 세계 경제는 흔들린다. 이란은 바로 이 지점을 전략으로 사용한다. 완전히 닫아 전면전을 부르는 것보다 부분적으로 흔들어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 이것이 ‘통제된 불안정’이다. 핵과 고농축 우라늄 역시 같은 구조다. 실제 사용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위협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존재 자체가 협상력이 된다.

TIB의 본질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을 지배하고, 상대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다. 즉, TIB는 실제 공격이 아니라 공격 가능성만으로 전략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란은 해협을 닫지 않아도 이미 세계를 흔들고 있다.

‘현존함대(FIB·Fleet in Being)’에서 ‘현존위협(TIB·Threat in Being’으로 그리고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로 개념이 확장 및 진화되는 과정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AFIB… 트럼프는 이미 흐름을 멈추고 있다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

이란의 TIB가 “나는 언제든 너를 흔들 수 있다”는 위협이라면, 트럼프의 AFIB는 전혀 다른 차원의 힘이다. 트럼프는 위협하지 않는다. 이미 실행하고 있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전통적인 FIB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FIB는 고전적 해양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강한 함대는 반드시 출항해 적과 교전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상대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함대조차 상대에게는 잠재적 위협이 된다. 상대는 그 함대가 언제 출항할지, 어디를 공격할지, 어떤 해상교통로를 차단할지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함대는 싸우지 않아도 전략적 효과를 만든다. 존재 자체가 억제력이다.

그러나 21세기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 고전적 개념만으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해양질서는 단순히 함대가 존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존재가 실제로 무엇을 집행하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FIB 개념을 두 방향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TIB다. 이란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든 닫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시장을 흔들고, 보험료를 올리고, 유가를 움직이며, 상대의 전략적 선택을 제한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함대가 아니라 존재하는 위협이다.

둘째가 AFIB다. 이것은 FIB보다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다. 함대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존을 기반으로 해상질서를 실제로 집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항모전단과 상륙강습단은 단순한 군사적 상징이 아니라, 누가 항구를 사용할 수 있는가, 누가 출항할 수 있는가, 누가 보험을 받을 수 있는가, 누가 원유를 팔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현장의 집행 장치가 된다. 따라서 AFIB는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이다.

미국은 지금 이란의 항구와 해안선을 봉쇄하고, 에너지 수출을 차단하며, 이란 선박에 대한 단속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전 세계 해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선박은 회항하고, 보험은 거부되며, 금융 결제는 막히고, 항만은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제재가 아니다. 해상 물류체계 자체를 작동 불능으로 만드는 군사적 경제전이다.

이란이 “나는 해협을 닫을 수 있다”고 말하면, 트럼프는 “아니다. 내가 이미 너를 닫았다”고 답하는 구조다.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봉쇄 이후 지금까지 이란 선박 또는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 34척이 회항했다”고 밝혔다. 그는 “봉쇄는 확대되고 있으며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전황 보고가 아니다. AFIB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TIB가 가능성이라면, AFIB는 집행이다. TIB가 가격을 흔든다면, AFIB는 구조를 바꾼다. 과거 미국 해군은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호자였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 해군은 항행의 조건을 결정하는 집행자다. 과거에는 바다를 열어두는 것이 임무였다면, 지금은 누가 그 바다를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임무가 되고 있다.

이 변화가 바로 AFIB의 본질이다. FIB가 존재하는 함대였다면, TIB는 존재하는 위협이고, AFIB는 현장에서 실제 질서를 집행하는 힘이다. 과거에는 존재가 억제력이었고, 이후 존재는 위협이 됐으며, 오늘날 존재는 현장에서 실제 질서를 집행하는 힘이 됐다.

TIB가 가능성의 정치라면, AFIB는 현실의 통치다. 즉, TIB는 상대의 선택을 흔들고, AFIB는 상대의 선택 자체를 제거한다.

보호자에서 집행자로 미국 해군력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보호자에서 집행자로: 미국 해군력의 패러다임 전환
‘안보 제공자(Security Provider)’에서 ‘질서 집행자(Order Enforcer)’로

과거 미국 해군의 역할은 분명했다. 바다를 지키는 것이었다. 미국 해군은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를 보장하고, 세계 해상교통로(SLOC)를 안정시키며, 동맹국들이 안전하게 무역하고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했다. 항모전단은 단순한 군사력 과시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해양 공공재의 핵심이었다.

즉, 미국은 보호자였다. “우리가 바다를 지키니, 너희는 안전하게 무역하라.” 이것이 냉전 이후 오랫동안 유지된 미국 해양 패권의 기본 구조였다. 유럽도, 일본도, 한국도 이 질서의 수혜자였다. 막대한 국방비와 해군력을 미국이 부담하는 동안 동맹국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에너지 안보와 해상무역의 안전을 누릴 수 있었다. 미국 해군력은 사실상 무료로 제공되는 국제 공공재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는 다르다. 미국은 더 이상 질서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제 미국 해군은 보호자(Protector)가 아니라 집행자(Enforcer)다. 미국은 더 이상 바다를 지켜주는 나라가 아니다. 질서를 운영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가 질서를 집행하니, 너희도 비용을 지불하라.” 이 한 문장이 트럼프 시대 미국 해양전략의 본질이다.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의 “무임승차는 끝났다”는 발언은 바로 이 전환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한 방위비 분담 요구가 아니다. 미국 해군력이 제공하던 ‘무료 질서’의 종료 선언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그 청구서가 가장 먼저 발행되는 장소다. 왜냐하면 유럽도, 일본도, 한국도 이곳의 안정 위에 경제를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원유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하고, 에너지 가격의 충격은 곧바로 각국의 정치와 경제로 연결된다.

따라서 미국은 묻는다. “우리가 항모를 보내는데, 당신은 무엇을 보낼 것인가?” 이 질문은 외교가 아니다. 패권의 회계다. 과거에는 안보 제공자(Security Provider)였다면, 지금은 질서 집행자(Order Enforcer)다. 과거에는 미국 해군이 공공재를 제공했다면 지금은 트럼프의 패권 비용 청구다. 과거에는 동맹이 질서의 수혜자였다면, 지금은 질서 유지의 비용을 분담하는 참여자다.

이 변화가 바로 AFIB의 전략적 의미다. AFIB는 단순한 해군작전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해군력이 ‘보호자’에서 ‘집행자’로 변한 시대의 이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 함대를 가졌는가가 아니다. 누가 흐름을 멈출 수 있는가, 누가 항행의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가, 누가 질서의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해양패권의 본질이 됐다.

<미국 해군력의 패러다임 전환: 보호자(Protector)에서 집행자(Enforcer)로 표>


트럼프 시대의 미국 해군은 더 이상 세계 질서의 무료 공급자가 아니다. 항모전단은 단순한 억제 수단이 아니라, 질서의 가격을 결정하는 도구가 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청구서가 발행되는 첫 번째 장소이며, 헤그세스의 “무임승차는 끝났다”는 발언은 그 사실을 동맹국들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한 선언이었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그 질서의 비용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

트럼프의 비용 청구서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동맹의 청구서: 한국은 무엇을 보낼 것인가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시작되는 장소이며, 동시에 한국의 동맹 정치가 시험받는 공간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산업과 물가, 금융시장, 국가안보가 연결되는 전략적 동맥이다. 이곳의 불안정은 곧바로 한국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호르무즈는 먼 바다가 아니다. 서울의 물가와 부산의 항만, 산업단지의 전력과 국민의 일상까지 연결되는 현실의 바다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선택은 외교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국은 지금 명확하게 묻고 있다. “우리가 항모를 보내는데, 당신은 무엇을 보낼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파병 요구가 아니다. AFIB 시대의 동맹은 더 이상 선언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은 보호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비용을 부담하는 계약이다. 미국이 해양질서를 집행하고 있다면, 그 질서의 수혜자인 동맹국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국의 대응은 감정이 아니라 전략으로 설계돼야 한다. 참여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소말리아 지역 파견 청해부대의 활동 구역을 아덴만에서 페르시아만 입구 부근의 비교적 안전한 해역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본래 임무인 해적 피해 방지와 선박 보호를 유지하면서 작전 반경을 넓히는 방식이다. 이는 이란의 정규 군사공격에 직접 노출되는 무리한 임무 변경은 피하면서도, 한미동맹에 대한 기여 의지는 분명히 보여주는 방어적 존재감 전략이다.

여기서 청해부대의 운용 개념 역시 단순한 파병이 아니라 AFIB의 관점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실제 교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해당 해역에 존재함으로써 상대의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고, 해상 통제 환경에 전략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AFIB’의 출발점이다. 호르무즈와 같은 제한된 해역에서는 누가 그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 자체가 전략적 변수다. 청해부대의 제한적이고 지속적인 전개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동맹의 신뢰와 해상 질서 유지에 대한 실질적 참여를 의미한다.

청해부대를 기반으로 한 AFIB 전략은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의 동맹 분담 요구에 응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신뢰를 강화한다. 둘째, 해상교통로 보호를 통해 에너지 안보라는 직접적 국가이익을 지킨다. 셋째, 전투 임무 전환에 명확히 선을 그음으로써 분쟁 당사국으로 연루되는 최악의 리스크를 차단한다.

청해부대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및 연합전력이 확보한 항공우세·해양우세 하에서 교전규칙(ROE)이 엄격히 제한적으로 설정돼야 한다. 청해부대의 임무는 고위험 교전이 아니라 선박 호송과 해상 안전 확보에 집중해야 하며, 다국적군과의 협력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이는 장병의 생명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조건이다.

소해작전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란의 기뢰전 능력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며, 소해작전은 사실상 직접적인 전투 참여에 가까운 고위험 임무다. 따라서 소해부대 투입은 즉각적 투입이 아니라 조건부 참여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이란의 비대칭 공격 능력이 충분히 제압되고, 미 해군 수준의 안전보장 조건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경우에 한해 적극 동참한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거부가 아니라 책임 있는 조건부 협력이다.

아덴만에서 그동안 쌓아온 청해부대 17년의 기여는 단순한 파병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이미 해양안보 질서의 일부였다는 증거이며, 앞으로 더 큰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외교적 자산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중장기적 해양안보 역량 강화에도 나서야 한다. 해상교통로 보호 능력의 체계적 확충, 다국적 해양안보 협력 네트워크 강화,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과제다. 호르무즈 사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일상이다.

결국 한국이 견지해야 할 전략적 원칙은 명확하다. 참여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무모하게 교전할 필요는 없다. 청해부대의 제한적·지속적 전개를 통해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고, 조건부 소해작전 참여를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이 AFIB 시대 한국이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해양안보 해법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하게 싸우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서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다. 모호함은 외교적 유연성이 아니라 책임 회피로 읽힌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그 모호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비용만 부담할 것인가.

AFIB 시대의 동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무임승차 시대의 종료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패권은 무료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1세기 국제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장면이다. 이제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영토를 점령했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승패는 국경선이 아니라 흐름에서 결정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가는 이곳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동맥이다. 중요한 것은 섬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멈추는 힘이다.

과거 이란은 “언제든 닫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시장을 흔들었다. 그것이 TIB, 즉 Threat in Being의 힘이었다. 존재하는 위협만으로도 보험료는 오르고, 유가는 흔들리며, 세계는 불안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는 가능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먼저 봉쇄하고, 먼저 멈추고, 먼저 질서를 집행한다. 이란이 TIB로 세계를 흔든다면, 트럼프는 AFIB로 그 흐름 자체를 통제한다.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 그것이 바로 AFIB다.

미국은 더 이상 바다를 지켜주는 나라가 아니다. 질서를 운영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가 바다를 지키니, 너희는 혜택을 누려라”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우리가 질서를 집행하니, 너희도 비용을 지불하라”의 시대다. 헤그세스의 “무임승차는 끝났다”는 발언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해군력이 보호자에서 집행자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공식 선언이다.

호르무즈는 그 청구서가 가장 먼저 발행된 장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한국에도 도착했다. 우리는 그 질서의 비용을 낼 것인가. 아니면 질서 밖에 남을 것인가.

AFIB 시대의 동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문제다. 누가 그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 누가 흐름을 멈출 수 있는가. 누가 질서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가. 그것이 오늘의 해양패권이며, 21세기 국제질서의 본질이다.

결국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지금 트럼프는 그 질서를 호르무즈를 넘어 전 세계 해상에서 직접 집행하고 있다.

글 :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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