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26] 호랑이와 한나절
2026.04.24 23:36
호랑이를 보러 가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호랑이 숲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쭉 호랑이를 보러 가고 싶었다. 살아 있는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숲속을 걷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주변에 강렬한 아우라를 지닌 생명체가 없어서일까. 인왕산 중턱 바위에 옛사람이 새겨놓은 신선이 있는데 발치에 호랑이가 앉아 있다. 이 산에 호랑이가 살던 시절, 누군가 조각한 것이리라. 그걸 보고 있으면 사라진 숲속의 아우라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골짜기 길을 고불고불 넘는데, 호랑이가 아니라 무슨 동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만큼 산세가 깊다. 이렇게 외진 곳이라면 전쟁이 나도 모르고 끝나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수목원 앞을 걷는데 과연 그 땅이 십승지지(十勝之地)라는 푯말이 있다. 병란이 나도 안심할 수 있는 조선의 열 군데 땅 가운데 하나란다. 2000년 전 소라국이라는 부족 국가 사람도 살았다고 하니 인적은 드물어도 사람이 산 역사는 길다.
수목원 내부는 봄꽃 향기로 가득했다. 개울 흐르는 입구에 흐드러진 벚꽃과 개나리를 지나, 수선화와 튤립이 싱그러운 동산을 넘어, 하얀 꽃이 몽실몽실 흐드러진 돌배나무 가로수길을 걸었다. 이슬에 젖은 진달래가 흙바닥을 수놓은 숲길을 올라, 연둣빛 어린잎 가득한 수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열고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나타난 호랑이 한 마리. 우와, 일단 머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허연 발도 두툼하다. 호랑이는 소변을 미스트처럼 사방팔방 뿌리며 걷는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에게 지문이 있듯 호랑이도 저마다 무늬가 다르다. 코앞에서 육중한 몸을 흔들며 멋진 무늬를 뽐낸 건 한반도에서 따온 ‘한’이라는 이름의 백두산 호랑이였다. 우린 같은 봄볕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한나절 같이 있기만 했는데 에너지가 충전된다. 뭐든 할 수 있을 듯하다. 자, 와라, 호랑이 기상으로 맞붙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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