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창작의 희열, 그 짜릿함이 나를 버티게 했다”
2026.04.25 00:31
“기왕 망칠 인생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장렬하게 전사하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영월을 딱 1년 만에 다시 오게 됐어요. 영화가 흥행이 돼서 기쁜 마음으로 (영월군민들께) 인사도 드릴 겸 왔습니다.”
지난 24일 ‘제59회 단종문화제’ 개막에 맞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촬영지 영월을 다시 찾은 장항준 감독은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강연 내내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창작의 희열, 그 짜릿함이 나를 버티게 했다”
장 감독은 학창 시절 자신을 “극도의 학습 능력 부진,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애(?)”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홍콩 영화 ‘영웅본색’을 보고 난 뒤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영웅본색 보고 나서... 갱스터 소설을 써야겠다”며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등장인물로 한 ‘항준본색’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장 감독은 “점심시간에 누군가 밖에 나가서 제 소설을 복사해 버립니다. 놀라운 전파력으로 이과 애들이 보기 시작하고, 선배들이 보기 시작하고, 심지어 선생님도 봅니다”라며 당시의 인기를 설명했다. 그는 이때의 찌릿한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고백했다. “그 어둡잖은 소설을 쓰면서 저한테 가득했던 것이 ‘창작의 희열’이라는 거였어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가슴 뛰고 신나는 일인가. 경제적으로 되게 불안정한 직업이지만 어떤 사람이 버티느냐? 이 창작의 희열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안전한 길 가도 망할 놈이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전사하자”
진학을 앞두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절, 한국 영화계는 이른바 “에로 영화의 전성시대”였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받던 시기”였다. 어느 날 극장 앞을 꽉 메운 인파를 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 그는 중대한 결심을 내린다. “버스가 멈춰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 몇 명이 될까? 제 눈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남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길로 가도 인생을 망칠 놈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망할 놈이라면 (차라리)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장렬히 전사하자.” 이 다짐 덕분에 그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화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박지훈 하루 사과 두 쪽... 나뭇잎 일일이 손으로 달아”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치열했던 현장 비하인드가 쏟아졌다.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의 캐스팅에 대해 장 감독은 “단종이라는 분이 연예인으로 보이는 순간 그 영화는 실패하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조금 신선한 사람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를 설득하기 위해 “총 네 번을 만났다”고 밝혔다. 특히 출연을 결정한 박지훈은 “열일곱 단종의 비극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운동 없이 사과 두 쪽만 먹는 극한의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감량하며 열연을 펼쳤다”며 배우의 극한 열연에 고마움을 표했다. 영월 선돌 맞은편에 억대 비용을 들여 지었던 세트장을 철거해야만 했던 일화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탈길에 토목공사를 해서 튼튼하게 지었지만, 지금은 해체하고 다시 원상 복구를 시켰어요. 야영객 안전사고 우려도 있고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덧붙였다. 또한 날씨 문제에 대해서도 “계절은 봄 배경인데 폭설이 와서 싹이 안 도는 거예요. 초반에 찍은 장면들은 전부 우리 미술팀이 다 나뭇잎을 손으로 (만들어) 단 겁니다”라며 악전고투했던 촬영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아마추어는 완벽주의 때문에 실패... 내 투자자들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글을 쓰기 시작한 74세 만학도의 질문에 장 감독은 작가로서의 뼈 있는 조언을 건넸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속도입니다. 아마추어분들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까 안 끝나요. 아이템이 머릿속에서 부패합니다. 무조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빨리 써서 일단 끝을 내고 다시 고쳐야 합니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고민을 묻는 질문에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막중한 무게감을 강조했다. “상업 영화잖아요. 투자만큼 수익이 나야 하는… 나를 믿고 시나리오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10원이라도 손해 보지 않게 하는 것. 그분들이 평생 나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상업영화 감독이 가진 숙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장항준 감독은 이날 강연에 이어 동강 둔치에서 열린 개막식에도 참석, 영월군으로 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영월=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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