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LG 전 부회장 “먼저 주세요, 그래야 다시 옵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2026.04.25 06:02
최고의 재능은 간절함... 마음 얻어야 오래 간다
샐러리맨 신화? 남의 도움 잘 받은 것뿐
경영자서전 ‘당신이 잘 되길 바랍니다’
나만 잘 살려하면 남의 도움 못 끌어내
대중은 실수하는 리더를 좋아해
답 없어도 겸손해지면 해결책 나와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의 방향과 속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충격 이후 인문학은 성장보다 회복, 효율보다 적응으로 생태적 전환을 촉구했지만, 경제는 순식간에 디지털 기반으로 몸을 바꿔 점프했다. 인공지능의 본격 등장으로 주식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던 인류는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AI와 에너지 패권 전쟁에 돌입했고, 이 세계의 엔트로피는 극한으로 치솟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로 내일의 평화도 내일의 유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뚝심 있게 기업을 경영해 온 산업계의 영향력 있는 리더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권영수 LG그룹 전 부회장에게 만남을 청했다.
다채로운 도움과 도움닫기의 순간들이 정직하게 기록된 권영수의 책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를 읽은 후였다. 무엇보다 ‘샐러리맨의 삶’이 이토록 스펙터클할 수 있다는 데 무척 놀랐다. 그가 전자에서 디스플레이로 화학에서 유플러스로 에너지 솔루션과 지주사로 일터를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장면들은 고도성장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한국 산업사의 풍경과 겹쳐 묘한 스릴을 자아낸다.
지리한 수기 전표 노동을 일괄 전자 입력 시스템으로 바꿔 혁신을 일으켰던 신입 예산 과장 권영수, 1년에 절반 이상 출장을 다니면서도 아침마다 출근하고 싶어 마음 설레던 해외투자 실장 권영수, 삼성과 LG가 치열하게 서로를 추격하고 추월하며 레이스를 달리던 순간들…
엇갈린 듯 맞물린 골든타임에 디스플레이의 수장으로 자기 스타일의 경영을 선보였던 삼성의 권오현, LG의 권영수 두 거물의 현장 승부를 상상해 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차이를 만드는 격의 리더십과 차이를 수용하는 결의 리더십은 사내에 뿌리를 내려 서로 다른 기업 문화를 만들어냈다.
‘무지의 인정’은 권영수가 간파한 탁월함의 원천기술이었다. 권영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금성사 임원이던 과외 학생의 아버지가 적극 추천해서 1981년 금성사에 처음 출근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고문으로, 벤처 사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4월의 어느 아침, 창밖으로 벚꽃 엔딩에 취한 인파를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불쑥 그가 들어섰다. 근사하게 낡은 구제 가죽점퍼, 청바지, 검은 선글라스 차림이었고, 방금 바이크 내린 사람처럼 어깨에서 분홍 꽃잎이 떨어졌다. 포악한 전쟁 속에서도 계절은 개화와 낙화의 눈부신 풍경을 밀고 나아가고 있었다.
-꽃길을 걸어오셨어요?
“네. 늘 걸어서 옵니다. 하루 두 번 40분씩 걸어요.”
온몸에서 발산하는 파동이 싱싱해서 산소 포화도가 높아졌다.
-어떻게 살고 계세요?
“요즘엔 강연을 많이 해요. 부산에 독자 50명이 모였다고 해서 찾아가 북토크도 했고, 중견 기업 신입사원이나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많아요. 큰 줄거리는 같아도 대상에 따라 그때그때 맥락과 뷰가 달라져요.”
-불특정 다수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게 어렵지는 않으세요?
“신입 시절에 남이 써준 원고를 읽는 윗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 얘기가 아닌 데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지? 만약 내가 그런 자리에 가면 실수할지언정 보고 읽지는 말자.’ 나는 2006년부터 CEO를 했어요. 얘기할 기회가 많았어요. 원고 없이 말하는 걸 걱정하는 이들에게 내가 장담했어요. “내가 실수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할 말을 잊으면 ‘가만, 내가 무슨 얘기 하는 중이었죠?’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어텐션 하겠죠.”
-‘실수해도 돼’가 아니라 ‘내가 실수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야’라는 발상이 놀라워요!
“편하게 마음먹을수록 결과는 더 좋아집니다. 야구 경기를 예로 들게요. 전력이 약한 팀이 어찌어찌 코리안시리즈에 올라왔어요. 4번을 이겨야 우승하는데 첫 경기에 이겼어요. 그때 구단주가 와서 그랬답니다. “1승만 해도 고맙다. 나머진 다 져도 좋다.” 져도 좋다는 말을 들은 선수들은 겁날 게 없었고 용기백배해서 마침내 우승을 했어요.
“져도 돼” “실수하면 더 좋아” 의외로 이 생각은 힘이 세요. 물론 저는 강연 전에 키워드를 적은 메모를 안주머니에 넣어둡니다. 한 번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일단 안심이 됩니다. 습니다. 안심이 되면 청중의 반응에 따라 돌발적인 생각, 익사이팅한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튀어나와요. 어제도 ‘뒷담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에 없는 세 가지까지 질문했어요.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가 뭔지 아세요?
첫째, 비밀.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둘째, 공짜는 없어요. 셋째 정답도 없습니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의 오답이 되고 나의 정답이 너의 오답이 될 수도 있어요. 그만큼 케이스는 다양하고 변화는 빠릅니다.”
말투가 온유해서 듣는 귀가 절로 순하게 열렸다.
-클래스가 다른 ‘초격차’를 선망하는 시대에 ‘초겸손’을 들고 나오셨어요. 겸손은 더 큰 맥락 속에 자신을 던져놓는 태도인데, 타인지향성이 몸에 밴 듯합니다.
“(미소 지으며)겸손의 특징은 경청이에요. 말하기보다 먼저 들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상대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니, 일단 듣고 배우겠다고요. 배움에는 끝이 없잖아요. 어설프게 알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래요. ‘아! 불쌍하다…’
난 AI 시대에도 겸손한 사람이 빛을 발할 거라고 봐요. 자기 말만 떠드는 사람은 질문을 못 해요. 겸손하면 경청할 수 있고, 경청하면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하면 소통할 수 있어요. 소통하면 언제 어디서든 남의 도움을 잘 받습니다.”
-‘당신이 잘 되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어요. 기업의 리더가 아니라 마치 종교인의 메시지 같았습니다.
“제 인생철학이 그거였어요. ‘내가 아는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책 제목을 고민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4시에 꿈에서 나왔어요. ‘당신이 잘 되길 바랍니다’라는 한 줄의 문장이. 퍼뜩 깨서 휴대폰에 메모했죠. 아침에 출판사에 보여줬더니 좋답니다. 멋있는 말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 힘이 있잖아요(웃음).”
-기업의 목적을 얼마나 크게 보십니까?
“과거에는 돈 벌고 힘 있는 자리에 올라 성공하면 그걸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가치관이 바뀌어서 내가 행복해야 성공이에요. 명문대 나온 청년이 식당을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죠. 행복해야 성공한 거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내가 알든 모르든, 불특정 다수가 권영수의 도움으로 잘 되었다는 얘길 들으면, 너무 행복해요.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예요. 나로 인해 몇천 명, 몇만 명 직원들이 성과급도 받고, 승진도 하고 행복을 누리면 좋잖아요.”
-보통의 샐러리맨은 내가 잘 먹고 잘살려고 일합니다만.
“그것만으론 힘이 약해요. 그거로는 남의 도움을 못 끌어냅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미소 지으며)운은 평소 내 행동의 결과입니다. 가령 ‘밥 한번 먹자’는 말도 그래요. 아랫사람에게 그런 말 하면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저는 약속을 쉽게 하지 않았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어요. 그게 신실한 사람의 기본이에요. 사람들은 신실함을 높이 평가했고 나를 좋아해줬고, 절실한 길목마다 나타나 도와줬어요. 그게 운 좋은 사람의 패턴이에요.
파트너를 대할 때도 다르지 않았어요. 그 공무원이, 그 임원이, 잘 나갈 때는 찾아가지 않았어요. 굳이 나까지? 하지만 좌천되거나 실직할 때는 찾아갔어요. 그게 도리라고 생각도 했지만, 힘들 때 찾아가야 고마움을 느낍니다. 세상은 공평해요. 길게 봐야 해요. 그런 행동이 결국 나한테 더 많은 유익을 끼쳤어요.
좌천된 사람이 컴백할 때, 실직한 임원이 인품이 훌륭해서 현장 직원에게 영향력이 강할 때, 그들이 ‘권영수 한번 도와줘라’ 한 마디가 엄청 파워풀했어요. 관에 계신 분, 고객들, 협력사 사람들 대할 때도 공생 관계로 생각했어요. 이런 게 계속 쌓이면서 수도 없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무조건 먼저 줘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와요.”
단짠단짠처럼, 위기와 기회 전환, 악운과 행운은 짝을 맞춰 왔고 인생과 커리어 전반에 걸쳐 몇 개의 사이클을 만든다고 했다. 사업 실패로 사표를 품었는데 오히려 요직에 발탁돼 크게 쓰임 받는가 하면, 해외에서 큰 성과를 내고 돌아왔는데도 책상이 빠져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다. 참아야 할 때도 많았고 싸워야 할 때도 많았다.
-낯선 곳에 발령받아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사람 공부요. 맨땅에 헤딩처럼 내가 알아야 할 사람들을 계속 관찰했어요. 인더스트리별로 사람들의 특징이 다 달라서 LG전자는 글로벌한 경쟁 문화에 익숙했고 화학은 국내파들이라 약간 촌스러운 듯 순수했어요. 유플러스는 로컬이지만 젊은 분위기였고 엔솔도 기술 문화가 완전히 달랐어요.
지주사까지 포함해서 제 머릿속엔 엄청난 빅데이터가 쌓였어요.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었고,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팀워크를 짜주니 회사가 금세 달라졌어요. 좋은 사람은 좋은 재료예요. 왜 재료가 안 좋으면 생선도 매운탕만 끓이지, 맑은 지리를 못 끓이잖아요? 좋은 사람이 많으면 운신의 폭이 확 달라져요.
다행히 제 리더십이 괜찮다고 소문나서 타사의 인재들도 제 발로 찾아왔어요. 디스플레이 시절엔 삼성전자에서, 유플러스에 있을 때는 SK에서도 많이들 왔어요. 그렇게 회사 안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운을 가져온 건 다 사람들이었어요.”
복잡한 것 같지만 경영이란 결국 남의 도움을 잘 받아 성공하는 것이 근본 원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배터리 사업을 할 때였어요. 제대로 전환을 이뤄내려면 좋은 양극재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 양극재를 만드는 일본 회사가 한국 회사에는 절대 공급을 못 한다는 겁니다. 직원들이 다 안 된다고 손을 저었어요. 그때 기적처럼 매듭이 풀렸어요. 그 양극재 회사의 리더가 알고 보니 제가 아는 분이었어요. 디스플레이 시절이 인연이었어요. 최고의 LED 칩을 공급받기 위해서 직접 일본으로 찾아가서 관계를 텄죠.
당시에도 안 만나준다고 했었는데, 결국 아삼육이 돼서 목욕도 같이 하는 사이가 됐어요. 나중엔 “권상, 나는 당신네 경쟁사인 삼성에 우리 LED 칩을 공급하지 않겠어요” 공언까지 하고 그 약속을 지켰어요. 그렇게 니치아화학의 회장님이 양극재를 보내줘서 배터리 성능이 획기적으로 좋아졌어요.
그 배터리로 폭스바겐을 뚫었고, 그 기세로 유럽 자동차 회사 판로가 열려서 수주 금액 세계 1위를 했어요. 사람이 만든 기적이었어요.”
권세 있는 자들은 한 방에, 갑납을녀는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막힌 길을 뚫어주었다고 했다. 권영수가 특유의 신실함과 진정성으로 쌓은 관계 자본은 순도가 높아 도처에 ‘자발적 은인’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만한 자들을 상대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거칠게 압박했다. IMF 당시, LCD 지분을 매각해 외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협상 일화가 그 예다. 당시 합작 법인 파트너였던 유럽 회사는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가치를 후려쳤다.
-얕잡아 보고 꼼수를 부리는 상대는 어떻게 다뤘습니까?
“어떻게든 주도권을 가져와야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땐 승부수를 던졌어요. 가령 상대가 먼저 내 가치를 바닥에서 제시하면, 반대 근거를 내가 계속 대야 해요. 수세에 몰리죠. 그때는 확 질러야 합니다. 우리가 제시받은 가격이 그때 2~3억 달러였는데, 저는 우리 회사 몸값으로 100억 달러를 불렀어요. 크게 선수를 친 후에 차분히 대응했습니다. 결국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외자를 유치했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MOU 체결식 당일에 상대 회사에서 합의한 금액을 대폭 깎은 계약서를 가져와 무조건 사인을 요구한 것. “국가 부도 상황이고 정부가 지켜보는 계약이라 당장은 눈물을 머금고 사인할 수밖에 없었어요.”
-뒤통수를 맞으면 머리가 아득할 텐데요.
“저는 어떤 사건을 해결하려면 철저하게 그 사람 입장이 되어봅니다. 누가 그런 만행을 시작하고 추진했을까 상상을 해봐요. 아마 M&A 담당 임원이 그런 아이디어를 짜냈고, CFO는 못 이기는 척 눈을 감았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그 CFO는 됨됨이가 괜찮았어요. 불편한 마음으로 승인했겠지요. 그렇게 공략 대상을 CFO로 정하고 간담이 서늘하게 레터를 써서 보냈습니다.
‘당신들의 행위는 M&A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행이고, 결국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당신네 회사는 낙인이 찍히고 평판에 금이 갈 것이다. 합작 순간부터 52% 오너십 회사인 우리는 당신네 직원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괴롭힐 것이다.’”
부당한 일에는 끝까지 싸워 보상을 받아내는 DNA가 자기 안에 있노라고 했다. 사직을 각오하고 상부에 보고한 뒤 홀린 듯 레터를 써내려 갔다고. “일주일 후에 깎은 금액의 70%를 되돌려주겠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성품이 물 같기도 칼 같기도 합니다.
“단호할 땐 단호해요. 하지만 자주 쓰진 않아요. 기본은 ‘함께 다 잘됐으면’이에요. 열정, 팀워크가 핵심인데, 다만 저는 좀 매사 철저했어요. 철저하면서 따뜻할 수 있어요. 단호함은 좀 다른데, 글로벌 전쟁터에서 싸우면서 배웠어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내 DNA 중에 단호한 결단력이 개발됐어요. 그런데 결단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결단력보다 중요한 게 뭐지요?
“간절함이에요. 나는 간절함의 힘을 믿어요. 단호함과 절실함은 연결돼 있어서, 단호한 결정을 내릴 때 간절함을 통해 얻었다면 그건 정답일 가능성이 높아요. 반대로 절실함이 떨어지면 정답이 아닐 수 있어요. 그렇게 결단의 힘과 절실함은 비례합니다.”
-절실함과 욕망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령 리더나 능력자들은 ‘1등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을 구성원들의 간절함으로 어떻게 치환할 수 있을까요?
“LG디스플레이에서 수율 100%로 세계 1등을 했을 때와 이차전지에서 ‘싹쓸이’로 수주 잔고 세계 1위를 했을 때는 상황이 좀 달랐어요. 전자는 불량률을 없애는 게 핵심이고 후자는 제품력을 높이는 게 핵심이에요, 일단 배터리 사업 본부에서 폭스바겐과 미팅하면서 우리 제품의 문제점을 들었을 땐 절망 그 자체였어요. 직원들이 다 울상이었어요. 절실한 마음으로 제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 방식대로 가자. 경쟁사의 알루미늄 포장재 따라 하지 말고 얇은 파우치형 배터리 그대로 가자. 대신 우리 제품의 단점을 상쇄할 만큼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자. 공격받는 것보다 공격하는 게 낫다.”
그렇게 동의를 구한 후 엔지니어 드림팀을 꾸렸어요. 그 팀에 100% 자율성을 줬고, 결정적인 순간에 ‘양극재’라는 최적의 재료를 공수해 줬어요. 경쟁사의 단단한 쇳덩이 포장재에 비해 우리는 얇은 라면 봉지 포장재였지만, 그 대신 내장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30%나 높였어요.”
-절실함과 운의 결합상품이었군요!
“그렇죠. 반면 디스플레이 시절의 ‘세계 1등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의 문제였어요. 파주 공장 직원들의 마음이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로 바뀌는 게 중요했어요. 그 생각이 어떻게 들겠어요? 즐거워야 듭니다. 그래서 ‘즐거운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예요. 아침 식사를 챙기고, 밤길 조명등을 챙기고, 탁구장을 만들고, 복장을 자율화하고…
그랬더니 직원들 얼굴이 점점 밝아졌어요. 공장에 활기가 넘치니 노조가 “1등 한번 해보자”고 먼저 나섰어요. 생산 부사장도 신이 나서 “저희가 수율 100%로 수익성을 올려보겠다.” 그래요. 저도 청바지 입고 연말엔 임원 밴드 만들어서 신나게 드럼 치며 응원 공연을 다녔어요(웃음). 마당을 걸어가면 직원들이 ‘커피 한잔하자, 사진 같이 찍자’고 멀리서 달려왔어요. 그 기세가 세계 1등으로 이어졌어요.”
기술 1등과 제조 1등을 끌어내는 리더십의 근본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은 마음을 얻는 것. 남 잘난 맛에 사는 것.
-영국 공장 부지를 선정할 때 ‘겸손해지니 방법이 보였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요?
“영국 현지에서 전자레인지 공장을 지을 땅을 찾아야 했어요. 엔지니어 한 명과 히스로 공항에서 만나서 서쪽 웨일스 지역부터 무작정 돌았어요. 영국은 처음이고, 영어도 잘하지는 못했고, 전자레인지도 몰랐어요. 처음엔 대접 잘 받으니 희희낙락 다녔는데, 점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감도 없고 초조함이 확 밀려왔어요.
그런데 초조하다가 절실해지는 순간, 질문이 하나 떠올랐어요. 영국에 공장 짓는 게 우리가 처음일까? NO! 그렇다면 이전의 훌륭한 회사들은 어디에 공장을 지었을까? 조사해 보니 도요타와 삼성의 공장이 한 장소에 있었어요. 여기다! 그곳을 찾아가서 좋은 땅을 보고 일사천리로 계약을 했어요. 회사에서는 ‘영국에 처음 가본 권영수가 천혜의 요지를 찾았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웃음).
핵심은 이거예요. 막막할 땐 모른다고 인정하고 그 일을 먼저 한 사람을 찾아 베끼면 됩니다.”
이쯤 되면 겸손도 간절함도 사용자의 초능력이 아닌가 싶었다.
-겸손이 정적인 수동태가 아니라 이렇게 극적인 능동태라는 걸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 쥐어짜는 거죠. 불현듯 떠오르는 해법은 다 절실함이 주는 선물이었어요. 그런데 절실하다고 다 주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말처럼 ‘옳은 일을 해라’가 기준이에요. 남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에 절실함이 더해질 때, 시야가 선명해져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억울한 좌천도 이해 못 할 영전도 겪으셨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습니까?
“이해가 되는 억울함이 있고 안되는 억울함이 있어요. 될 때는 참았고 안될 때는 싸웠어요. 가령 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세계 1등을 하고 있는데 배터리 사업 본부장으로 발령이 났을 땐, 충격이 컸어요. 지위도 떨어지고 대접도 달라져서 내 비서가 울 정도였어요. 이틀을 고민하다 받아들였어요. 내 해석은 이랬어요. ‘회장님이 애지중지하던 사업이라 나를 믿고 맡긴 거구나!’ 이런 종류의 억울함은 참으면 미래에 적금으로 돌아와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도움, 간절함, 배려, 겸손이라는 탈경쟁적 단어가 경쟁사회에 이토록 잘 어울린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잠재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는 진정한 경영 고수. 간간이 그와 빅테크 업계의 스카우트 전쟁과 반도체만 호황인 한국의 주식 시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때때로 상상을 넘어서는 슈퍼사이클을 몰고 오지만, 타인을 돕기 위해 ‘일하는 마음’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휘둘리지 않고 오래가는 사람의 비법이 있을까요?
“개인도 기업도 다르지 않아요. 제 경영 철학이 이청득실입니다. 남의 얘길 잘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오래 갑니다. 마음을 얻지 않고 빨리 가면 지쳐요. 스타트만 빠르면 뭐 합니까? 마음이 따라오지 않으면 중간에 쉬어갈 수밖에 없어요. 반면 시동 거는 데 시간이 좀 걸려도 마음을 얻으면 금방 가속도가 붙고 결국 이겨요. 창업 1세대들은 그걸 아는데, 2세대 CEO들은 불안하니까 빨리만 가려고 해서 안타까워요.”
빠른 시스템으로 업을 주도하는 삼성, 실행력으로 선 굵게 치고 가는 현대, 인간다운 대접으로 마음을 얻는 인화력의 LG… 한국을 대표하는 이들 대기업에 깃든 문화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권영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일은 내가 처음’이라는 천재의 선방뿐 아니라 ‘이 일은 누군가 먼저 해봤을 것’이라는 추격자의 겸손으로도 충분히 승리가 가능할 것만 같았다.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때때로 상상을 넘어서는 슈퍼사이클을 몰고오지만, 타인을 돕기 위해 ‘일하는 마음’만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즈음에서 어린이집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LG에너지솔루션에서 회사의 기운을 밝게 바꿨다던 그 사건이요.
“(미소 지으며)직원들이 어린이집이 꼭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법률상 어린이집은 5층 이하에 지어야 하는데 5층까지 빌딩 자리가 꽉 차 있었어요. 포기하는 게 맞는데 젊은 직원들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빌딩 관리 대표를 만나서 그랬어요.
“안되는 거 알아요. 그런데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직원들이 너무 간절해서 그래요. 한 번만 더 고민해 주세요. 기다릴게요.”
잊고 있었는데 한 달쯤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3층에 있던 관리회사가 자기들이 자리를 옮기겠대요.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안되는 걸 만들어준 거예요. 정말 고마웠어요. 제 간절함을 지나치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누구에게 가장 많이 배웠습니까?
“구자학 회장님이요. 냉철하고 강인한 사업가 정신을 가진 분이었어요. 구본무 회장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배웠어요. 마음을 얻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마지막으로 AI 초격차 시대에 보통 사람은 일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복잡하지 않아요. 일이란 안되는 것을 되도록 만드는 행위예요. 가만히 있어도 되면 일하는 게 아니죠. 안되면 포기하지 말고 ‘그게 당연하구나’ 생각하고 하나씩 풀어가면 보람이 올 거예요. 너무 쉽게 쉽게 해버리면 그건 천직이 아니라 잡일이에요.
어떻게든 해내려면, 사회가 정해주는 일보다 내가 익사이팅한 일을 찾는게 중요해요. 그리고 그 일을 할 때는 혼자 열심히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세요. 결국 내가 얻은 마음들이 불가능해보이는 큰 일을 해냅니다. 건투를 빕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삼성전자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