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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들이 나서야 하는 나라, 이제 바꿉시다

2026.04.25 07:00

[정보라의 월간데모]
생명안전기본법 6년째 표류
그 사이 비슷한 참사 계속돼
대통령의 세월호 기억식 참석은
희망의 신호탄...입법으로 이어져야
4월에는 언제나 세월호 시민대회와 기억식에 간다. 올해는 국회 앞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촉구 1인시위에도 참여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명문화한 법안으로 2020년에 발의됐는데 벌써 6년째 제정이 안 되고 있다. 그 사이에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2023년 7월 15일 오송 궁평지하차도 침수 참사, 2024년 6월 24일 아리셀 화재참사,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 2026년 3월 20일 대전 안전공업 참사 등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화재참사의 책임자 박순관은 얼마 전 항소심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1심의 15년형이 거의 4분의 1로 줄어든 판결이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에서 이런 판결은 대한민국 사회도 정부도 사람 목숨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잔혹한 선언과도 같다. 

4월 10일과 15일 두 번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했는데, 10일에는 고(故) 이한빛 PD의 부모님이 오셨다. 이 PD님은 방송현장의 노동착취에 맞서 싸우다 2016년 세상을 등졌다. 그 부모님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해 방송현장에서 불안정노동, 착취, 갑질, 부조리한 관행에 시달리는 방송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PD 아버님을 2020년 겨울에 아주 잠깐 뵌 적이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가 아니고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기업을 처벌하자는 법이다) 제정을 위해 오체투지를 했을 때였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님과 이 PD 아버님이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계셨다. 참사는 계속 일어나고 법과 제도는 그대로인데 자식 잃고 투쟁하시는 부모님을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만 뵙게 되는 것이 굉장히 죄송했다. 1인시위가 끝나고 이 PD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 "한빛엄마"라고 적혀 있어서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둔 지난 11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 진실과 생명안전은 기본이지'가 열렸다. ⓒ정보라 작가 제공


다음날인 4월 1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세월호 시민대회가 있었다. 작년에는 비가 왔는데 올해는 날이 맑았다. 참가자 숫자는 작년보다 적어진 느낌이지만 날이 좋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서 부스 돌아다니기는 편했다. 4.16희망목공소 부스에 2학년 1반 이수연 아버님이 오셔서 오랜만에 인사드렸다. 수연이는 국어를 잘했고 예쁜 펜 모으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예전에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들 생일 동영상을 만드는 '광화문TV' 작업을 했을 때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오신 수연이 아버님께 들은 이야기다. 수연이 방 서랍 속에서 펜이 많이 나왔다고 하셨을 때 아버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예쁜 펜은 학창 시절의 소소하지만 중요한 즐거움인데, 수연이는 그 펜을 다 써보지도 못했다. 

올해 세월호 시민대회에서는 4.16연대가 당시 정권의 대국민 사찰 사건을 알리기 위해 인증샷 찍는 부스를 운영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당일부터 정부에 사찰당했다.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가 세월호 농성장 문화제에 와서 검찰이 자신의 메신저를 '털어' 지인 3000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던 것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4.16연대와 가족협의회는 정부의 불법적인 사찰 사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부스 앞에 깔아놓고 "반정부세력? 나잖아?" 등의 풍자적인 말풍선을 만들어 참가자들이 들고 사진 찍을 수 있게 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둔 지난 11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 진실과 생명안전은 기본이지'에 참가한 정보라 작가. ⓒ정보라 작가 제공


15일에는 국회 앞에서 생명안전기본법 1인시위 후에 문화제도 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님과 이태원참사 유가족 애진 아버님이 오셔서 발언하셨다. 김 이사장님은 김용균님이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하셨다. 용균 어머님도, 애진 아버님도, 자식이 사망한 뒤에 경찰과 정부 관계 부처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셨다. 양쪽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경찰도 정부도 유가족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자녀의 시신을 찾아 유가족이 이 병원 저 병원 헤매 다니게 만들었다. 산업재해의 경우 모든 기록을 회사가 가지고 있으니 피해자 가족이 산업재해임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장벽이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당시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 경호처하고 왜 그렇게 열심히 전화 통화를 했는지, 어째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러니까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한 것이다. 일하다 죽고, 길에서 죽고, 퇴근하다 죽고 여행 가다 죽는 참사 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식 잃은 부모님들이 나서서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세월호참사 당시 대통령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록한 문건의 목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이다. 작년에 안산 기억식에서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위원장 수진 아버님도, 4.16재단 이사장도 '세월호 7시간'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힘주어 발언했다. 올해 4월 10일에 서울고등법원 판결 후 대통령기록관이 상고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문이 조금은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16일 안산 세월호 12주기 기억식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했다. 시민 참석자용 입구와 귀빈용 입구가 따로 나누어졌고 들어갈 때 소지품 검사를 한 것 외에 별다른 점은 없었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공기는 선선했다. 이전에는 기억식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 혹은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이 발언했는데 올해는 단원고 2학년, 그러니까 세월호 희생자들과 띠동갑인 후배 학생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단상에 올라 편지를 읽은 학생에게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학교는 지금의 학생들을 정당하게 존중하고 있을까.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들이 2016년 초에 가족도 모르게 전원 제적 처리됐던 일, 기억교실에서 쫓겨나 아직 정리되지도 않은 창고 같은 공간으로 유품을 모두 옮겨야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 결정을 했던 당시 단원고 교장과 당시 경기도교육감을 아직도 저주한다. 아마 평생 저주할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청에서 가라고 해서 갔던 수학여행이다.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은 명예졸업을 해야 했다. 제적 처리를 당하고 쫓겨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대통령이 성남시장이었을 때 성남시청에 세월호 깃발을 걸었던 일, 당시 정권에 항의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했던 일들도 떠올랐다. 대통령이 기억식에 참석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대통령의 이전 행보를 생각하면 조금은 희망을 갖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안 되는 일만 너무 많았기 때문에 12년의 의혹, 304명 몫의 진실규명을 한 사람에게 기대해도 될지 확신할 수는 없다.

지난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 ⓒ정보라 작가 제공


보통은 기억식이 끝나고 나서도 남아서 부모님들께 인사하거나 가족협의회 사무실에 들르기도 하는데 올해는 식이 끝나고 바로 출국해야 했다. 나는 폴란드에서 도서전에 참여하고 지금은 스페인에 와 있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데모하고 싶다. 생명안전기본법 국회 앞 농성과 1인시위는 법이 제정될 때까지 계속된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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