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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잠실은 동대문과 달라야 한다

2026.04.24 23:38

실내체육관 철거 후 본격 재개발
잘 지은 경기장이 도시를 바꾼다
명승부의 감동, 팬들의 추억 같은
스포츠 유산까지 허물어선 안 돼



20여 년 전 미국 시카고에 처음 갔을 때 가장 가슴이 뛰었던 곳은 마천루의 전망대나 유명 박물관이 아니었다. NBA(미 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 유나이티드센터였다. 역동적인 덩크슛 자세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서야 ‘시카고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 경기장이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미국 뉴욕에서 양키스타디움을 찾고, 스페인 여행 때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노우에 들르는 것은 단지 크고 멋진 건축물이라서가 아니다. 전설적인 스타들의 활약, 팬들의 눈물과 환희를 자아낸 수많은 명승부의 기록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수도 서울은 어떤가. 단박에 떠오르는 스포츠 랜드마크를 꼽기 어려운 현실이 못내 아쉽다. 그나마 1988년 서울올림픽 주무대였던 올림픽주경기장과 야구장, 실내체육관, 학생체육관, 수영장 등이 모인 잠실 종합운동장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가난한 분단국가 이미지를 벗고 ‘한강의 기적’을 알린 곳이다.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잠실 실내체육관은 이 경기를 끝으로 문을 닫고 재개발에 들어간다. /연합뉴스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가 변화의 바람으로 꿈틀대고 있다. 1979년 개관한 실내체육관은 지난 8일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한국가스공사의 경기를 끝으로 47년 만에 문을 닫았다. 1만1000여 석을 갖춘 서울에서 가장 큰 체육관으로 숱한 농구 경기뿐만 아니라 제5공화국 대통령 취임식 같은 현대사의 기록이 스쳐간 장소다. 이제 실내체육관 철거를 시작으로 야구장과 학생체육관 등이 차례로 재개발에 들어간다.

낡은 경기장을 정비하고 현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 지은 경기장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손흥민이 몸담았던 영국 프로축구(EPL) 토트넘의 홈구장이다. 토트넘은 1899년부터 무려 118년간 사용한 ‘화이트 하트 레인’을 허물고, 약 10억파운드를 들여 6만2000여 석 규모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지었다. 2019년 이 축구장이 문을 열자 낙후된 구도심이던 런던 북부 지역의 위상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축구 관람뿐만 아니라 경기장 투어와 체험 시설 등에 연간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런던의 명물이 됐다. 축구장 하나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만 연 3억 파운드(약 6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전경. 낙후된 런던 북부 지역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EPA 연합뉴스

오래된 경기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게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한 도시의 스포츠 유산(Legacy)까지 모조리 허물어 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서울을 대표하는 스포츠 랜드마크를 잃은 전례가 있다. 1925년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스포츠 시설 동대문운동장을 2007년 철거한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자랑이던 손기정의 역주, 한반도 최고의 도시 라이벌전 ‘경평 축구’의 열기, 6분 동안 3골을 몰아치며 전 국민을 흥분시킨 차범근의 전설, 이제 1200만 관중을 동원하는 프로야구의 모태인 고교 야구의 인기와 추억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우주선 같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지만, 80년 넘게 축적된 한국 스포츠의 감동적인 서사가 흔적을 잃은 것은 두고두고 속상한 일이다.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자본으로 가능하지만, 랜드마크를 만들려면 철학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는 한국 스포츠가 처음으로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친 곳이다. 잠실벌을 거친 영웅들의 스토리, 관중석에서 울고 웃은 팬들의 추억과 자부심을 새 경기장에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서울도 이제 시민의 자랑거리가 되는 세계적인 스포츠 랜드마크를 하나쯤 가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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