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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운동회가 사라진 진짜 이유, '극성 학부모' 탓 아닙니다

2026.04.24 15:11

교사 개인에 쏠린 형사책임, 학교 행사 위축시켜...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사라지는 운동회
ⓒ AI 이미지 제작

5월이 가까워 오면 학교는 운동회 준비로 분주해진다. 종목을 짜고, 줄을 긋고, 안내장을 보내는 일보다 훨씬 무겁게 책상 위에 얹히는 것이 있다. 혹시 소음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혹시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혹시 사진 한 장이 SNS에 잘못 올라가 민감한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이 '혹시'의 목록은 길어진다. 운동회를 앞둔 학교의 공기는 잔치 준비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가까워졌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담벼락에 아이들이 직접 쓴 '소음 양해문'이 붙어 화제가 되었다. 체육대회 날 시끄러울 수 있어 죄송하다는 어린 글씨 앞에서 많은 이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운동장에서 뛰고 웃는 소리가 언제부터 아이들이 먼저 사과해야 하는 소음이 되었는지, 우리는 잠시 멈춰 물어야 한다. 이 장면을 그저 유난한 어른 몇 사람 탓으로 넘기고 지나간다면, 내년 5월에도 같은 양해문이 같은 담벼락에 붙을 것이다.

요즘의 운동회는 예전과 같지 않다. 전교생이 청군 백군으로 모여 만국기 아래에서 하루를 보내는 대운동회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많은 학교가 학년별로 시간을 쪼개고,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누고, 학부모 초청을 줄이거나 아예 받지 않는다.

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치러지는 '작은 운동회'가 표준이 되고 있다. 현장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숙박형은 급격히 줄었고, 당일치기로 겨우 유지하거나 아예 교내 활동으로 대체하는 학교가 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 분회장 798명을 대상으로 한 '2026 현장체험학습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열에 아홉이 체험학습 중 사고가 나면 개인이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위축'이 아니라 '후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론은 종종 이 후퇴를 '일부 극성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정리한다. 자녀의 종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항의, 경쟁을 시키지 말라는 요구, 응원석 자리 배치에 대한 불만, 사진 초상권 문제까지, 학교에 접수되는 민원의 결은 다양하다. 그런 민원이 현장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은 학교 안에서 일해 본 누구나 안다.

그러나 오랫동안 현장에 있어 본 입장에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민원은 현상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학교에 든든한 법적·제도적 보호막이 있다면, 어떤 요구가 들어와도 교육적 판단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 지금 문제는 그 보호막이 얇아도 너무 얇다는 데 있다.

필연적 사고와 개인 책임의 구조

구조는 이렇게 돌아간다. 수십 명의 미성년 아이들을 인솔해 단체 활동을 하면 사고는 확률적으로 반드시 일어난다. 성인 단체 여행에서도 사고가 나는데, 흥분한 초등학생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사전 교육을 하고, 준비운동을 시키고, 질서를 잡아도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부딪힌다.

그런데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그 필연이 일어나는 순간 법적 책임은 인솔 교사 개인에게로 수렴한다. 몇 해 전 체험학습 중 학생이 목숨을 잃은 사고에서 담임교사가 금고형을 선고받은 이후, 전국 학교의 교무실 공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점점 더 무거워진 것이다.

국회와 정부도 움직였다. 교사의 면책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며 학교안전법이 개정되었고, 교권 보호 관련 법들이 잇달아 통과되었다. 그러나 현장의 한숨은 줄지 않았다. 면책의 기준이 '사고 이후의 조치'에만 집중되어 있어, 실제 분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고 이전의 예방조치'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현장은 여전히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학교 시설을 지역사회에 개방하려 할 때도 비슷한 장벽이 있다. 개방 자체에 반대하는 관리자는 거의 없다. 다만 사고가 났을 때 학교장이 어디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해석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누구도 선뜻 문을 열기 어려울 뿐이다. 이처럼 입법은 있는데 보호는 없는, 의도는 좋으나 결을 놓친 법들이 학교 위에 쌓여 간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운동회 파행의 책임을 '일부 극성 학부모'에게 돌리는 언어는 편리하지만,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가린다. 학교에 보호막이 없을수록 민원의 파급력은 커지고, 교사가 감당할 법적 위험이 클수록 학교는 방어적으로 움츠러든다.

학부모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증폭되어 보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서 학교를 떠받쳐 줄 제도의 기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도를 넘는 민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바꿔야 할 진짜 구조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문제의 뿌리는 입법에 있다고 본다. 예산은 동결되거나 줄었지만 학교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해마다 늘어왔다. 아동학대 관련 법, 안전 관련 법, 시설물 관리 규정, 각종 의무 연수, 개인정보와 초상권을 둘러싼 규정들은 하나하나 취지가 선하지만, 현장에 내려앉는 순간 교사를 잠재적 피의자로, 교장을 잠재적 책임자로 만든다.

법이 요구하는 수준은 계속 올라가는데, 그 법을 감당할 인력과 예산, 법적 권한과 보호장치는 같은 속도로 확충되지 않았다. 책임은 폭증했고, 관리 수단은 제자리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운동회가 쪼그라들고, 체험학습이 멈추고, 운동장에서 축구 소리가 줄어든 진짜 원인이다.

입법부는 학교 현장을 걱정한다고 자주 말하지만, 정작 학교를 짓누르는 법들을 꾸준히 만들어 온 곳이 바로 입법부라는 사실은 잘 말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통상적인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형사책임을 묻지 않도록, 면책의 범위를 '사고 이후'에서 '사고 이전의 예방조치'까지 확장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 교사가 예측 불가능한 사고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한, 어떤 구호도 현장에 닿지 않는다.

둘째, 대규모 교육 행사와 현장체험학습의 안전 인력과 예산은 학교 단독이 아니라 교육 당국과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학교 시설 개방에 따르는 법적 책임의 주체를 학교장에게서 지방자치단체와 전문관리기관으로 옮겨, 학교가 교육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특이 민원은 개별 학교와 개별 교사가 홀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함께 대응하는 공동 시스템으로 흡수되어야 한다.

다시 운동장으로

5월의 운동장 이야기는 한 해 치를 행사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회가 쪼그라들고 체험학습이 멈추는 동안, 아이들이 함께 달리고, 함께 지고, 함께 이기며,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 보는 공동체의 경험이 공교육에서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다.

그 경험은 결국 사교육과 사적 공간으로 옮겨가고, 비용은 각 가정이 떠맡게 된다. 놀이와 경험의 양극화는 이렇게 소리 없이 깊어진다. 해마다 5월이면 '사라지는 운동회'가 언론의 한 줄 기사로 소비되고, 정치권의 의례적 논평이 뒤따르다가 다시 잊힌다. 그 소모가 반복되는 동안 현장의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이 장면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너머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운동회 파행을 일부 학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자. 일회성 이벤트의 안타까움으로 소비하지 말자. 5월의 담벼락에 붙은 아이들의 양해문을 현장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자.

교사가 아이들 곁에서 마음 놓고 호루라기를 불 수 있도록 법적 방패를 먼저 쥐여주자. 그 방패를 설계할 책임은 분명하다. 입법부와 행정부에 있다. 운동장의 함성이 다시 5월의 하늘에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별의별 교육연구소장이자 상인천초등학교 교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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