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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받아 기름 탱크 채워야 할 판”…출구 막힌 최고가격제

2026.04.24 17:48

[주유소 83곳 2주째 휴업]
정부 고강도 압박에 가격 못올려
15년 영업하던 곳도 보름전 문닫아
공급은 줄었는데 재정으로 억눌러
시장 왜곡에 수급 꼬임도 만만찮아
전문가 “시점 정해 과감히 중단해야”
경유가격은 4년만에 2000원 넘어
24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약 4년 만에 ℓ당 처음으로 2000원을 돌파한 가운데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태형 기자
16일 찾아간 충남 부여군의 한 주유소. 이 주유소 입구에는 기름 값 대신 ‘정기 휴일’이라고 적힌 낡은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먼지가 쌓인 주유기 앞에는 ‘휴업 중’ 세 글자를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쓴 판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유소 뒤편에는 선풍기·의자·빨랫대 등 사무실 안에 있어야 할 집기들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다. 주유소 인근을 지나던 주민 A 씨는 “15년을 넘게 영업한 곳인데 장사가 잘 안 되니 보름 전에 결국 휴업한다고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 주유소의 가격 정보는 지난달 29일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오피넷이 공시하는 전국 주유소별 판매 가격 정보 중 약 85%는 카드 결제 내역을 통해 자동 입력되고 15%가량은 자영업자가 직접 가격을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 주유소는 한 달째 어떤 식으로도 가격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것이다.

이곳처럼 휴·폐업을 선택하는 주유소들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최근 휴업이 잦아진 경남 지역의 한 주유소 사장 B 씨는 “정부에서 공급 가격을 정해놓고 주유소들에는 ‘그러니 싸게 팔아라’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식으로 압박하니 다들 가격을 쉽게 올리기 어렵다”며 “그런데 싸게 팔고 나면 그 다음 기름 탱크는 무슨 돈으로 채우냐”고 호소했다.

1000만 원어치의 기름을 사 한 달 동안 쓸 기름 탱크를 가득 채워뒀는데 이후 공급 가격이 오르면 그 뒤에는 같은 값에 주유 탱크를 다 채우지 못하니 손님이 몰려드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B 씨는 “값을 싸게 해 물량이 금세 바닥나면 이후 다시 탱크를 가득 채우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며 “차라리 상황을 봐가며 휴무를 하고 주유소들의 자산인 탱크를 지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홍보하는 일명 ‘착한 주유소’ 간판을 내려놓고 싶다는 웃지 못할 촌극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착한 주유소는 시민단체 ‘에너지·석유 감시단’이 저렴한 가격에 유류를 판매하면서 불법행위 실적이 없는 주유소에 부여한 명칭이다. 최근 착한 주유소로 지정된 경남의 한 주유소 사장 C 씨는 “장사가 안 돼 몇 년 전부터 영업을 관둔 채 폐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돌연 착한 주유소가 됐다”며 “폐업 비용이 많이 들어 폐업을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 선정을 취소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국주유소협회의 한 관계자는 “주유소를 폐업하려면 철거 비용 6000만~7000만 원, 토양 오염 보상 비용 최소 7000만 원 등 최소 1억 5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폐업은 하지 못하고 방치된 주유소들이 전국에 1000~1500개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유소 시장 왜곡뿐 아니라 시장 전반의 수급 꼬임 현상도 만만치 않다. 공급은 줄어들고 있는데 정부가 재정으로 가격을 억눌러 수요가 유지되면서 도리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약 1만 2100㎾h로 캐나다와 미국에 이어 3위이고 일본(약 8200㎾h)의 1.5배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석유 최고 가격제를 어느 시점에서 과감히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고 가격제 같은 가격 상한 정책은 영업 시간 축소, 서비스 품질 저하 등 다양한 비가격적 배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에너지의 경우 필수재 성격이 강한 만큼 가격 급등 국면에서 정부의 한시적 개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명확한 종료 조건이 있어야 설득력이 확보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 같은 딜레마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재정과 복지는 주기는 쉬워도 다시 뺏기는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산업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중동 상황이 불안정하고 고유가가 지속되고 있어 폐지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향후 미국과 이란 간 휴전 협상이 진전되고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풀려 국제유가가 안정됐다고 판단되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폐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영난에 견디다 못한 주유소들은 속속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오피넷에 따르면 4차 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 첫날인 이날 오후 4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 값은 ℓ당 2006.47원으로 전날보다 0.71원, 2차 최고 가격제 시행 첫날(3월 27일)보다 171.91원 상승했다. 정부는 휘발유·경유의 2차 공급 최고 가격을 1차보다 각각 210원씩 올린 뒤 3·4차 때는 가격을 동결했는데 주유소 판매 가격은 계속 오른 모습이다. 전국 평균 경유 값이 2000원을 넘긴 것은 2022년 7월 말 이후 약 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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