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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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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팩트보다 '음모론'을 더 좋아하는 이유...서울대 정신과 교수가 말하는 '뇌피셜'의 과학

2026.04.24 14:00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뭔지 아세요? '기본설정 네트워크'의 발견이에요. 기존의 뇌과학 연구는 뇌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를 연구한 거예요.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뇌도 가만히 쉬고 있을 거라고 봤으니까요.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뇌가 더 팽팽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 때 뇌는 대체 뭘 하고 있을까요. 주로 나, 그리고 내 주변과의 관계를 회상하거나 계획하는 일을 해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기본설정 네트워크, 혹은 디폴트 네트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겁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 뇌는 공백이 생기면 공백이 생긴데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별 생각, 별 행동 없이 가만히 있으면 그 아무 것도 없음을 메우려 스멀스멀 뭔가를 한다는 얘기다. 정 없으면 뭔가를 지어내서라도 채워넣기도 한다. 기본설정 네트워크는 그럴 때 작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걸 '마음이론'이라고도 한다. 기본설정 네크워크가 돌아갈 땐 대뇌 안쪽 부위가 활성화되는데, 이는 마음이론이 주목하는 부위와 일치한다.

마음이론이란 '마음에 대한 이론'이란 뜻이 아니다. '마음은 제 나름의 이론을 세우는데 특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한 회사에서 만난 이가 평소 별 말이 없다. 그는 자신이 집중할 때 말 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상대가 일할 땐 말 붙이지 않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공백을 참아내지 못하는 나의 뇌는, 어느 순간 불쑥 한가지 이론을 세운다. "저 사람은 나를 중시하지 않는군." 좀 더 지나면 살이 붙는다. "저 사람은 나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군. 아니면 나를 깔보는 건가." 괜스레 미워 보이기 시작하면 이 감정은 더더욱 증폭된다. "네 놈은 뭐가 그렇게 잘났냐."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회의실에서 만난 홍순범 교수. 우리 사회 각종 차별 혐오를 넘어서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


마음이론이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이 이론을 세운다는 의미다. 당연히 이 마음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 상대의 마음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때에 따라 손쉽게 가짜를 만들어내고 손쉽게 가짜를 믿는다. 오해하고 오해받는 인간사 모든 일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러니 이해받지 못했다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다. 그게 인간의 기본 조건임을 알고 조금 더 노력하면 될 일이다.

마음이론의 가장 최악의 사례는 스스로를 파고들 때다. 자존감이 높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산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에 맞는 나름의 대응책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제 중심을 못잡고 흔들리는 사람은 '저 사람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러지?',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 같은 생각에 꽂히기 십상이고, 이게 일상화되면 답이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데 제 혼자 온갖 공상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의 가장 비근한 예로는 악뮤의 이수현 사례를 들 수 있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고 또 십분 발휘하고 있으면서도 오빠 이찬혁이 군대에 간 뒤 스스로에 대한 비하와 경멸에 빠져들어 2년간 폐인처럼 살았다고 고백했다.

악뮤의 이수현이 슬럼프를 겪을 당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vN 영상 캡처


개인적 차원에선 우울증이라면 사회적 차원에서는 증오와 혐오다. 왜 그런가, 라는 질문에 다양하고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보다는 가장 손쉬운 대답을 찾고서는 거기에 안주해버린다. 그런 헛된 스토리텔링의 결과는 혐오, 증오, 음모론과 가짜뉴스 범람 같은 것들이다.

홍순범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타인이라는 세계'라는 책을 써낸 이유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올바르게 접근하고 있는가. 기본설정 네트워크라는 뇌과학을 이용해 답을 내놓으려는 시도다.

기본설정 네트워크는 왜 생겼나


뇌는 '사실'이 아니라 '설명'을 원한다.

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다.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려면 주변 상황을 거기에 유리한 쪽으로 재빨리 해석해내서 대응해야 한다. 그 때문에 뇌는 진지한 사실관계보다 자극적 스토리텔링에 더 쉽게 반응하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사실은 의외로 쉽게 변형된다.

뇌는 부분적 사실보다 전체적 맥락을 중시한다. 전체적 스토리텔링이 그런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면 거기에 약간이라도 부합하는 사실은 과대 포장되고 조금 빗나가는 건 사라진다. 이 과정이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쉽게 일어난다.

작은 암시, 고정관념, 선입관도 우리의 기억을 바꾼다.

그 때문에 약간의 힌트나 암시만 줘도 기억은 쉽게 바뀐다. 여러 실험결과를 보면 A라는 사람이 범인이라 생각되는 순간, 우리는 A를 둘러싼 모든 정황을 그렇게 해석하고 단정해버린다. 심지어 A 본인 스스로도 내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라 생각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기본설정 네트워크를 자극하는 현대사회


너무 커져버린 주변 환경

사실이 아니라 설명을 원하는 뇌는 주변 환경과의 교감을 위한 장치였다. 지금은 주변 환경 자체가 거대해졌다. 우리 동네, 우리 이웃 수십 수백 명 정도를 넘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와도 접속이 가능해진 시대다. 낯선 상황에서 낯선 사람을 수시로 만나야 한다.

높아진 과학 문명의 비율

현대문명 사회에선 논리, 과학, 로직, 추론에 의존하는 범위가 크게 늘었다. 예전과 달리 대략적인 감으로 설명하고 이해하고 행동해선 안되는 시대다. 한걸음 더 물러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거꾸로 단순한 설명이 더 각광받는다.

디지털 세상은 엄청난 증폭기다.

이런 경향을 최대한 증폭하는 게 온라인 세상이다. 온라인 세상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가장 단순하고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전면에 내세운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실제 사람을 접하기보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익숙해지면 편견과 선입관은 점점 더 강화된다.

기본설정 네트워크에 대응하는 방법


섣부른 상상으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

정 이해가 안되고 모르겠으면 나 혼자 상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고 그냥 대놓고 물어보라. 그렇게까진 못한다면 최소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또 내 머리가 저절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구나'라는 자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상대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를 판단할 땐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할 게 아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판단하는게 좋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낸다 해봤자 대개 그건 상대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선입관, 편견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남자, 여자, 보수, 진보, 무슨 세대, 무슨 족, 같은 표지를 무시하라

상대를 가장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표지를 붙이는 것이다. 표지 붙이기는 상대의 여러 디테일들을 가장 많이 생략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개별적인 특징은 모두 다 다르다. 일률적으로 표지를 부여하는 작업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이다.

상대 마음에 대한 상상이 곧 마음이론


홍순범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는 '공감'도 경계했다. 상대의 처지와 입장에 대한 공감 자체는 장려할만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마음이론 차원에서 보자면 공감이야 말로 가장 큰 오해이자 착각일 수 있다. 어제 오후 5시의 나를, 오늘 오후 6시의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가능한가. 나에게도 안되는 걸 남에게 한다는 게 가능한가. 한 번쯤 거리를 두고 되물어볼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거꾸로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감이 잘 안된다? 이해 못하겠다? 포기할 일은 아니다. 우린 어쩌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사 쉬운 게 없다.

-마음이론, 최근 관심사이긴 하다.

"보통 마음에 대한 이론이다, 생각하시더라. 그래서 조금 더 대중적으로 설명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 마음이론은 대략 1970년대부터 쭉 연구가 축적되어 온 분야다."

-마음이론이 말하는 '상대의 마음에 대해 상상하는 나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참 흥미롭다.

"간단하게 말해 타인의 마음에 대해 내 마음 속으로 내 나름의 이론을 만드는, 가설을 세우는 작업이다. 상상한다, 지어낸다는 것과도 비슷한 얘기다. 요즘 시대는 타인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더 많아진 시대가 아닌가 싶었다. 나름의 가설을 세운 뒤 내가 이해했다고 믿을 뿐, 이게 상상이니까 오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 나의 상상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술 더 떠서 자신과 비슷한 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면서 그 상상을 확정지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말씀하신대로 진영 싸움에 대한 우려가 많다. 보수 진보, 남자 여자, 젠지 꼰대, 이런 식으로. 마음이론이 그런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나.

"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현실은 현실대로 있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 상상의 세계를 하나 더 구축하는구나, 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뇌가 대상과 표상을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 출발점을 잊지 말자고 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편협한 이해 가능성을 고민하자


-예를 든다면.

"가령 누군가 무슨 얘기를 했는데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 저렇게 말하는군, 이라고 해버리는 건 부분적인 결론일 뿐이다. 여자이면서 혹은 남자이면서 동시에 지역, 세대, 학력, 국적 등 온갖 요인들이 다 개입하는 복합적 존재가 인간이다. 내가 생각한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직 순수한 여자, 오직 순수한 남자란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남자라서 저래, 여자라서 그래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23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한 고용노동부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흔히 말하는 인지적 편안함 아닌가. 상대의 복잡한 심사를 헤아리기보다 간단한 공식이나 틀에 맞춰 넣으면 내 마음이 편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먹고 살만해지니까 굳이 고민을 안하고 싶어하는 그런 기제가 작동하는 측면도 있다. 상대에 대해 품을 들여 고민하는 것보다 내 본능대로 사는 게 더 편하다는 말로도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이론을 안다면 그냥 내 편한대로 상상하고 그대로 믿고 살다가는 사회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좀 떠올려봤으면 한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존재일까. 애써 일부러 찾아보고 고민하고 성찰할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작은 출발점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마음이론의 깊은 것까지는 다 몰라도 '아, 그래 그 생각은 나의 상상일 수 있어, 그러니 섣부른 오해나 편견은 조심해야지'라고만 해도 세상이 꽤 괜찮게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에선 자극적 메시지가 범람한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 이목을 끌기에는 선정적이고 극단적이며 단순한 뭔가를 끄집어내는게 편하다. 하지만 그 대목에서도 그런 표현이 있긴 하지만 그 안에는 더 다양한 의견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극과 극의 충돌보다는 낫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한번은 제3자가 보듯 보자


-기본설정 네트워크는 어떻게 알게 된건가.

"원래 뇌과학은 과제수행할 때 뇌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할 때도 뇌가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냥 가만히 계셔보세요' 했는데 뇌가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처음엔 데이터 오류 정도로 간주했는데 더 지켜보니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럼 그 때 뭘 하는지 연구해보니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한 정보와 기억을 떠올리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또 조금 더 오래 연구해보니 이 작업이 지나치게 활발하면 우울증에 빠져들더라는 거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빠져드는 건가.

"이게 불교와도 일정 부분 통한다. 불교에서 제일 처음 강조하는 게 '알아차림'이다. 내 머릿 속에 피어나는 여러 생각과 감정을 제3자의 시선으로,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고 있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아무 저항없이 이끌려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들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다른 생각을 해보는 거다. 저 사람은 보수니까, 저 사람은 여자니까, 저 사람은 중국인이니까, 내가 무의식 중에 전제했던 어떤 가정 같은 게 있다면 떠올려보고, 그 가정이 실은 그저 내 마음 속에서 피어난 나의 가설일 뿐이라는 것만 알아도 다른 가능성을 알아볼 여유가 생긴다."

지난 2월 열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보수 유튜버 전한길(본명 전유관) 씨의 부정선거 토론회. 개혁신당 제공


-다른 게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해봐야 한다?

"그렇다. 다른 걸 상상해보고, 한걸음 더 나가면 조사해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맞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 한번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쉽게 바뀌지 않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내 마음이 상상이라는 걸 알게 되면 함부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이미 편 갈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제 타깃은 사실 젊은 분들이긴 하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쉽게 바뀌기 어려우니까. 다만 저는 비유가 좀 그럴지 몰라도 사이코패스 사례를 얘기하고 싶다. 우리가 그들에게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뇌에서 이미 문제있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적인 행위를 이해는 하지 않나. 그런 이해가 우선이라 하고 싶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뇌피셜'로 살고 있다


-윤어게인의 부정선거 음모론 같은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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