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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신뢰가 부른 주식시장 광풍… 100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다

2026.04.24 09:00

[책과 세상] 앤드루 로스 소킨
'1929: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대폭락 직후 뉴욕증권거래소 밖에 군중이 모여든 모습.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란 기대가 넘친다. 월급쟁이부터 자영업자까지 빚을 내서 기업에 투자한다. 기술산업에 대한 낙관론이 넘치면서 주식시장은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다. 투자 거품에 대한 경고는 가볍게 무시된다. 2026년 대한민국과 비슷한 이 풍경, 1929년 10월 대폭락 직전의 미국 월스트리트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앤드루 로스 소킨이 검은 월요일로 불린 1929년 주식시장 대폭락 전후의 풍경을 당시 기사와 이사회 회의록, 법원 기록물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공격적 투자를 주도한 내셔널시티은행의 수장 찰스 미첼, 월스트리트의 막후 실세였던 JP모건 회장 토머스 러몬트,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대통령 허버트 후버 등 파국에 일조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소설처럼 그린다.

100년 전 미국인들은 자동차, 세탁기 등 생활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제품들을 처음 경험했다. 특히 인류의 소통 방식을 바꿀 라디오에 열광했다. 이런 소비를 가능케 한 건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 '신용'이란 상품의 발명이다. 1919년 제너럴모터스(GM)가 자동차 구매 대출을 시작하며 신용대출 시장이 열렸다.

미첼이 이끈 내셔널시티은행은 여기에 더해 일반 고객에게 주식 투자를 위한 대출(마진 거래)을 허용하며 '1달러로 10달러를 투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투자에 눈 뜬 대중은 이 마진 거래로 요즘의 인공지능(AI)에 버금갈, 첨단기술을 가진 무선 전자기기 회사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에 투자했다. 미국 다우지수는 1928년 한 해에만 62% 폭등했다. GM 경영진인 존 라스콥은 한술 더 떠 "누구나 여러 주식을 묶은 바스켓(basket)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구상했고, "투자 전문가가 선별한 주식 그룹을 일반 사람도 살 수 있게 하고 독특하게 부채를 이용해 수익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29년 대폭락 이후 영업을 중단한 뱅크 오브 유나이티드 스테이프 브루킬린 지점 밖에 군중이 모여든 모습. 당시 뱅크런으로 미국 내 1만1,000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당시 시장 과열과 후폭풍을 우려한 사람도 분명 있었다. 대폭락 직전 미국의 황금기를 이끈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1928년 돌연 은퇴를 발표했는데, 그의 아내 그레이스는 이 결정을 두고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이가 말하더군요. 곧 불황이 온대요."

실제 후버 대통령이 취임한 1929년 미국 실물 경제는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철강 생산량과 철도 화물 운송량이 여름부터 줄기 시작했고, 6월에 최고점을 찍었던 연방준비제도의 월간 생산지수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경제학자 로저 뱁슨은 "지난 1년(1928년) 동안 40개 주요 종목이 42% 상승한 반면 하락 종목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며 "조만간 주식시장 붐은 플로리다 부동산 붐처럼 붕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러몬트 회장과 후버 대통령에게 줄 경제 보고서를 작성했던 레핑웰은 이렇게 지적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강세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하는 대신 투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점입니다."

대출을 통해 몸집을 키운 증권사와 덩달아 천문학적인 돈을 쥐게 된 월스트리트 거물들은 주식시장 상승이 계속될 거란 믿음을 부여했다. 그해 8월 내셔널시티은행 영업사원들은 고객에게 애너콘다 구리 회사 주식을 강력하게 권했지만, 그 회사 이사이기도 했던 은행 수장 미첼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하고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 소장 리처드 휘트니는 대중 앞에서 시장의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고객 자산을 횡령해 개인적 투기를 일삼았다. JP모건 창립자인 존 피어몬트 모건의 아들 잭 모건은 정계 인사들에게 뇌물성 주식을 상납하며 규제를 피했다. 연방준비제도와 후버 정부는 이렇게 투기 억제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주식시장 대폭락 이후 제기된 탈세 혐의에 대해 1933년 무죄 판결을 받고 브로드웨이를 걷고 있는 찰스 미첼(왼쪽 다섯 번째 줄무늬 넥타이).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1929년 급락과 급등을 반복한 주식 시장은 10월 들어서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증권사의 계좌 청산과 주가 급락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더 맹렬한 매도 주문이 시장을 덮쳤다. 10월 28일 월요일, 시장은 하루에만 13% 폭락했다. 1932년까지 주가는 1929년 정점 대비 80% 이상 주저 앉았다. 현금이 절실해진 사람들은 은행으로 몰려들었고, 뱅크런으로 은행 1만1,000여 개가 문을 닫았다. 경제적 타격은 나라 곳곳으로 퍼졌고 불황은 이후 10여 년간 많은 미국인에게 큰 고통을 줬다. 약 1,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참담한 대가 후에야 정부는 제도를 뜯어고쳤다. 페코라 청문회를 통해 불법과 탈법을 오간 금융권의 관행이 드러났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한 '글라스 스티걸 법'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탄생했다.

주가 하락을 막고 탈세도 하려고 자신의 은행 보유 주식을 아내에게 '비공개 매도'했던 미첼이 연방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지금의 풍경과 1929년의 모습이 닮았다고 경고한다.

"결국 1929년의 이야기는 금리나 규제에 대한 것도 아니고 공매도군의 영리함이나 은행가의 실패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영속적인 것, 즉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많은 경고가 발령되고 아무리 많은 법이 제정되더라도, 사람들은 좋은 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사람들은 희망을 확신이라는 옷으로 갈아입힐 것이다. 그리고 그 집단적인 열기 속에 인류는 반복해서 이성을 잃을 것이다."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조용빈 옮김·웅진지식하우스 발행·632쪽·3만2,000원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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