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전쟁 이후: ‘통항의 자유’ 확보 없이 다자주의 미래 없다
2026.04.24 00:18
호르무즈해협의 가치는 이번에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핵무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는데 정작 모든 관심은 해협에 가 있다.
바다에 대한 규율은 400년전 근대 국제법의 출발점이었다. 국가끼리 거래와 접촉이 거진 바닷길을 통한 까닭이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누구나 자유로이 항행한다는 원칙이 자리잡았다. 1982년 유엔 해양법협약을 거쳐 이는 지금도 바다의 질서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배타적 경제수역 등 해양, 해저 자원 이용에는 새로운 규범이 들어왔어도 뱃길을 다루는 ‘통항’에선 변함없이 굳건하다. 이 주춧돌이 지금 흔들린다. 선박에 대한 위협에서 통행료로 넘어가더니 급기야 봉쇄로 이어졌다. 바닷길 통행료도 생뚱맞지만 전쟁을 하는 두 나라가 동시에 같은 해역 봉쇄에 나선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해양법을 대놓고 무시하긴 부담되니 고육지책이 따랐다. 해양법은 해협에서 통행료 부과를 금한다. 파나마, 수에즈 운하처럼 사람이 만든 물길은 통행료를 낸다. 하지만 자연 물길은 아니다. 예외가 있긴 하다. 지나가는 배에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여기엔 돈을 낸다. 이란은 여기 착안했다. “호르무즈 배들에 안전, 환경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니 돈을 내라.” 배럴당 1달러, 큰 유조선은 200만달러다. 아무리 봐도 통행료처럼 보인다.
미국의 설명도 정교하다. ‘해협’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이란 ‘항구’ 출입 선박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항구는 막지만 해협은 열려 있단 설명이다. 국제해협 봉쇄가 법적 문제를 초래하니 나름의 장치를 단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해협 봉쇄와 본질적 차이가 무언가 싶다.
어쨌든 지금은 전쟁 중이다. 통행료든 봉쇄든 일단 전쟁 중이니 그렇다 치자. 사활을 건 충돌 속 온갖 긴급 수단이 동원된다고 일단 이해해 보자.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다. 지금 분위기론 전쟁이 끝나도 이 해협에 대한 통제가 슬금슬금 자리잡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 정도 지정학적 가치의 해협을 주변국이나 패권국이 과연 그냥 둘까. 보는 눈을 의식해 통행료나 봉쇄 같은 직접적인 통제는 아니더라도 안전, 안보, 환경, 자원, 건강 등 여러 명목의 ‘관리형 장벽’을 세울 가능성은 적지 않다. 종당에는 선별적 통항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번 둑이 무너지면 이런 흐름이 다른 바닷길목에 전파되는 건 시간 문제지 싶다. 지금도 세계 교역 80%는 바다를 통한다. 대부분 8개 주요 바닷길목을 지난다.
자원의 무기화는 오랜 이야기다. 이제 바닷길마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자원의 무기화는 자기가 가진 걸 휘두르지만 바닷길 무기화는 모두가 소유하는 공공재를 쥐락펴락하니 차원이 다르다. 자원의 무기화는 특정 품목, 원자재를 막지만 바닷길 무기화는 모든 교역을 흔드니 진폭과 강도도 다르다. 그래서 이를 단순히 공급망 교란의 새로운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이 길로 들어서면 국제사회엔 치명타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일각에선 대안 항로를 찾자는 제안도 있다.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를 늘리자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주변국 입김과 외부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결국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통항의 자유’를 거듭 확인,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다. 앞으로 어떻게든 유사 상황 재발 차단이 관건이다.
최근 유엔과 국제해사기구 수장들이 잇따라 통항의 자유를 역설한다. 영국, 프랑스 주도로 지난 주 열린 회의엔 우리나라를 비롯 47개국이 호응했다. 반가운 움직임이다. 허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전후(戰後) 논의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단지 원칙 확인과 선언에만 그친다면 규범의 빈틈을 헤집는 다양한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말이 아닌 실천적 공조를 위한 자세한 그림이 나와야 한다. 새로운 방식과 기술로 배와 뱃길을 통제하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 잣대가 필요하다. 정보 교환과 공동 대응을 하자면 체계적인 협력 체제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
일단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모두가 숨을 고르는 게 급선무다. 그 다음, 전쟁 이후가 중요하다. 이번 일로 만약 통항의 자유가 서서히 무너지는 길로 들어선다면 이미 허우적거리는 다자주의의 미래는 정말 암울하다. 그간 80년 유엔 체제 이전 세계로 회귀하는 이야기만 했다. 이러다간 자칫 더 이전으로 흘러가지 말란 법도 없다.
아르테미스 2호, 먼 우주길을 여는 시대에 정작 바로 앞 바닷길을 막는다면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400년 풀뿌리 규범이 흔들린다면 AI든 디지털이든 새로운 규범을 제대로 만들고 지킬 수 있을까.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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