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커지는 ‘재정 인플레’ 우려…신중한 경제 정책 조합 필요
2026.04.24 00:12
‘4고(高)’ 시대 한국 경제의 해법은
미국 금리 또한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 전에는 유가가 안정되고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 따른 금리 인하 전망이 우세했지만 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정책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전쟁으로 미국 국가 부채가 많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면서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미국 금리 상승이 전망된다.
‘4고’와 미국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금융 부실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를 위축시키고 대출 연체율을 높여 금융 부실을 확산할 가능성이 있으며 수출도 세계 경기 침체로 감소할 것이 우려된다. 여기에 미국 금리 인상은 자본 유출을 불러와 환율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정책 당국은 고유가에 대해서는 최고가격제 실시와 유류세 인하로 대응하고, 내수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금융 부실과 자본 유출 그리고 물가와 환율 상승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정책 과제로 남아 있다.
우선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미시건전성 감독이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규제와 같이 개별 금융회사의 재무 구조를 감독하는 데에 비해, 거시건전성 감독은 거시 금융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금융시스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이다. 거시건전성 감독은 헬렌 레이(Helene Rey)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가 주장하는 ‘글로벌 금융 사이클(Global Financial Cycle)’ 이론에서 제시하는 해법이다. 국가 간 자본 이동과 연관 있는 글로벌 은행의 신용 공급은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와 연관 있으며 VIX는 미국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 사이클’ 이론은 국제 금융 이론에서의 트릴레마(trilemma), 즉 고정 환율 제도와 자본 자유화 그리고 독립적인 통화 정책 중에서 2개만 선택할 수 있다는 이론을 부정한다. 그리고 환율 제도의 선택과 상관없이 자본 자유화와 독립적 통화 정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dilemma) 모형’을 통해 자본 자유화된 경제에서는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증권사 해외 영업 감독 강화 필요
실제로 과거 우리도 수출 증대로 환율이 지나치게 하락하던 시기에 은행의 과도한 외화 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킨 적이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내국인의 대미 주식 투자 증가로 합법적인 자본 유출이 늘면서 환율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은행의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했지만 이번에는 증권사의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책 당국도 해외 증권 투자 증가로 인한 금융시스템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상장지수펀드(ETF) 제도 개편과 증권사의 해외 영업 감독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 유출 부를 환율 상승 경계해야
확장 재정으로 인한 ‘재정적 인플레이션’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내수 회복과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확대 재정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과도한 재정 지출은 재정 적자를 증가시키고 이는 시중 유동성을 늘려서 물가와 환율을 높이게 된다. 재정적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또한 시중 유동성을 줄여서 거시건전성을 강화하려는 통화 당국과 엇박자 정책 조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내수를 진작하는 동시에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환율 안정을 위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 사이클’ 이론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서 환율이라는 가격 변수보다 외화 유동성이라는 물량 변수를 더 중시한다. 비록 고환율이 유지되더라도 외화 유동성이 충분하면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환율은 올랐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나고 있고 대외 순채권국인 만큼 외화 유동성 부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환율 상승은 환차익을 기대한 내국인 투자자와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 유출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입 물가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환율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외 채권의 대부분을 민간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환차익에 대한 기대 때문에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국내로 유입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도 안정적인 외화 유동성 공급원이 될 수 있지만 국제통화가 아닌 원화의 경우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123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대미 주식투자가 늘어나며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자산)는 1402억 달러로 증가했다. 여기에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까지 고려하면 외환의 수급 측면에서 환율은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환율 상승이 자본 유출을 늘리고 이는 다시 환율을 높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은 성장률을 높이고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 해외 투자가 국내 투자로 전환되도록 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가계 부채 연착륙하도록 규제 관리해야
마지막으로 가계 부채가 연착륙하도록 대출 규제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강력한 대출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출 규제는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 부채는 줄이고 주택 가격도 안정시킬 수 있지만 금융 부실도 확산시킨다. 대부분의 금융 부실과 부채 위기는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발생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기업 대출을 규제하면서 시작됐음을 고려하면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출 규제를 관리해 금융시스템을 안정시켜야 한다.
중동전쟁 이후 경제 구조는 크게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인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며 시중 유동성 증가로 물가와 환율 또한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시중 유동성 증가의 주체도 과거에는 저금리와 양적완화(QE) 등을 시행한 중앙은행이었지만 중동전쟁 이후에는 확대 재정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로 바뀌면서 ‘재정적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는 ‘4고’ 충격에다 미국 금리 인상 기대로 인한 자본 유출까지 겹치면서 내수 진작과 환율·물가 안정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으며 사용할 정책 수단도 제약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 이후 최근까지 7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정책 당국의 신중한 정책 선택과 효과적인 거시경제 정책 조합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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