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오르반식 포퓰리즘’에서 한국은 자유로운가
2026.04.24 00:40
오르반 16년 독재 막을 내려
극우 패배로만 규정은 단견
'비자유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민심 가렸지만 경제 피폐 야기
헝가리와 韓, 정치 환경 유사
양극화 극복, 관용·협력 시급
극우 패배로만 규정은 단견
'비자유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민심 가렸지만 경제 피폐 야기
헝가리와 韓, 정치 환경 유사
양극화 극복, 관용·협력 시급
이란 전쟁 와중인 지난 7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장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총선을 닷새 앞둔 오르반 빅토르 총리 지지 유세에 나서기 위함이다. 전쟁 재개냐 휴전이냐로 전세계가 긴장할 때 정작 트럼프의 시선은 유럽 소국의 총선으로 향했다. 반이민, 민족주의 성향 오르반 총리와 미 마가 우파 세력들의 끈끈한 관계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오르반 총리는 총선에서 대패했다. 16년 장기집권의 막이 내렸다. 트럼프의 일방주의 행태에 많은 이들, 특히 진보층이 질려 있던 차다. 헝가리 총선 결과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트럼프=오르반=극우’ 프레임이 작동했다. ‘우파 퇴조의 시작’, ‘박살난 극우’ ‘시민혁명’ 등의 타이틀이 진보 매체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2찍(기호 2번 보수야당 지지자 비하 용어)들 어떡하냐” “윤석열, 오르반, 다음은 트럼프”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하지만 단견이다. ‘공무원에 연 500만원 상당의 주택 보조금 제공’ ‘자녀 있는 부모에 소득세 환급’ ‘휘발유 가격 상한제’. 오르반 집권 내내 나온 경제 정책들이다. ‘퍼주기’ 포퓰리즘의 진수였다. 사회 분야 정책은 어떤가. 법원을 물갈이하고 헌법재판관 정원을 확대해 친정부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여당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했다. 가짜뉴스를 근절한다며 언론사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친여 인사들을 언론 유관기관에 꽂아 넣었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쯤되면 2찍을 조롱한 ‘1찍(진보·여당 지지자들)’들이 뻘쭘해 하지 않을까. 오르반은 우파와 거리가 먼 권력욕 가득한 포퓰리스트일 뿐이다.
문제는 헝가리에선 오르반이 몰락했지만 한국엔 ‘오르바니즘’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그의 노선인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이 땅에서 강고해지고 있다. 비자유 민주주의는 선거 등 민주주의 절차를 따를 뿐 견제 장치를 약화하고 권력을 집중하는 행태를 말한다. ‘합법 독재’로도 불린다. 선출된 권력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극우(윤석열)’의 퇴장을 알린 탈법적·노골적 폭력(계엄)이 지나가자 합법성의 외피를 두른 ‘비자유 민주주의’가 잠식해 오고 있다.
이재명 정권은 선거를 통해 입법과 행정, 나아가 사법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했다.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재판소원, 검찰 해체 등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작업을 ‘합법적’으로 강행했다. 검찰의 공소 취소를 압박하는 국정조사가 열렸다.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대통령 측근이 당당히 여당의 전략공천을 요구한다. 삼권 분립은 형해화한 지 오래다. 권력에 대한 언론·야당의 비판과 견제가 있을라치면 인기 높은 대통령의 SNS가 조준사격한다. ‘법대로’ ‘국민 뜻대로’ 진행된다. 16년간 헝가리에서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오르반 독주는 빼어난 견제세력이 아닌 시장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퍼주기와 권력통제가 민심은 오도했지만 민생을 잡지는 못했다. 오르반의 마지막 임기 중 현금 살포 부작용이 터져나왔다. 자국 통화가치는 30% 넘게 하락했고 물가상승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지난 10여년간 부동산 가격은 4배가량 뛰었다.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 등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민주주의 붕괴 사례 중 하나로 헝가리를 들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인 신호들로 6가지를 꼽았다. ①정당·정치인들이 포퓰리스트(유튜버)와 손잡는다. ②정치인들이 경쟁자에게 반국가세력(혹은 매국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③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결과에 불복한다. ④대통령이 국회를 우회해 행정명령(시행령)을 남발한다. ⑤국회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다. ⑥정부가 국가기관을 여당 인사로 채우고 명예훼손 소송으로 비판 언론의 입을 막는다.
2018년 출간된 책이 2020년 이후 한국의 정치 상황을 예견한 듯해 뒷골이 서늘하다. 책에선 위기 원인을 정치 양극화라 보고 정당들 중심의 상호 관용, 연합, 선거구 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우리 현실에서 과한 요구로 보이지만 손 놓고 있을 때는 아니다. 어제의 헝가리가 내일의 한국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개정판에 한국이 사례로 추가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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