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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9일짜리 주주가 기업 미래에 관심 있겠나, 단타가 기업 성장 막아”

2026.04.23 23:36

증시 호황인데 기업 자금조달 경색
안동현 서울대 교수의 진단



주식시장은 투자자 간 매매가 이뤄지는 유통시장과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인 발행시장으로 나뉜다.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면 부채비율이 상승하지만, 기업공개(IPO)나 유상 증자로 주식을 발행하면 자본금이 늘어나 재무건전성이 개선된다.

코스피 6000선 돌파에도 불구하고 발행시장은 침체를 겪고 있다. 지난해 신규 상장과 유상 증자로 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13조7000억원인 반면, 자사주 취득과 배당에 기업이 쓴 돈은 71조원으로 5배 이상 많았다. 올해 1~2월 주식 발행은 1년 전보다 62% 급감했다. 유상 증자 소식에 주가가 급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증시 활황 속에서도 기업으로 돈이 흐르지 않는 원인과 해법을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들어봤다.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지낸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소버린이나 엘리어트 같은 행동주의펀드를 기업사냥꾼으로 비판한 핵심 논리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없고 단기 차익만 노린다는 것”이라며 “주식 단타가 기업의 장기 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막는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유상 증자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미국에서도 유상 증자 이후 약 2년간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대개 기업들은 주가가 많이 올랐을 때 증자를 해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거나 반대로 자금 사정이 매우 악화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증자를 선택한다. 어느 경우이든 투자자들은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에 유상 증자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한국처럼 큰 폭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미국 주주들은 유상 증자에 잘 응하는 편 아닌가.

“미국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이유는 주주들이 대부분 기관 투자자로 장기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미 기업들도 증자에 앞서 기관들과 충분히 소통한다. 증자 직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조달한 자금으로 재무 구조를 개선하거나 신규 투자를 해서 중장기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반면 한국은 개인 투자자 비율이 높고 투자 기간이 매우 짧다. 투자자들이 단타 매매에 치중하니 당장 눈앞의 주가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고질적 단타를 장기 투자로 전환하는 것은 한국 증시의 오랜 과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어려운 문제다. 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개인이 투자금을 기관에 맡겨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다. 미국 다우평균이나 나스닥지수, S&P500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단 한 번을 빼고는 10년 이상 보유 시 손실을 본 사례가 없다. 연평균 10% 내외의 수익률을 보장하니 단타를 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보니 장기 투자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단타가 유리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픽=이진영

-미국 이외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가.

“증시의 박스권 정체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장기간 우상향을 지속한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 지수도 지난 20년간 박스권에 갇히면서 2000년대 초 고점을 회복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전 고점을 탈환하는 데 30년 이상 걸렸다.”

-주식 유통시장은 호황인데 발행시장은 침체 상태다.

“정부 정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 정부는 지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유통시장 정상화에 집중하고 있다. 발행시장 쪽은 중복 상장 규제로 막혀 있다. 불공정 거래 개선이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유통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방향성은 타당하나, 이것이 발행시장으로 어떻게 연결될지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기업들이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유통 시장 선진화 이후의 발행시장 활성화 계획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발행시장 침체가 이어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현재 한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성장해 온 제조업(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은 중국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제 AI(인공지능) 등 지식 기반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과거 제조업 경쟁력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생산 효율성 싸움이었다면, 신산업은 ‘혁신’과 ‘거대 자본’의 결합이 필수적인 승자 독식의 구조다. 투자 위험성이 매우 높은 데다 회임 기간도 길어졌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모험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유상 증자가 막히면 자금 조달을 어떻게 하나.”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세제 개편도 필요하지 않나.

“증권거래세 위주의 세제를 양도소득세 중심으로 개편하고 장기 보유 시 파격적인 세액 공제를 제공해야 한다. 주식으로 번 돈(양도 차익)에 과세하지 않고 거래세로 세금을 확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은 장기 보유할 경우 양도세를 깎아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장기 보유에 대한 세금 혜택이 없으니 단타에 치중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주식 양도 차익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려고 했다가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철회한 적이 있다.

“그때는 코스피가 2500일 때로 주식시장이 워낙 안 좋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코스피가 6000을 넘었으니까 금투세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거래세는 손해를 봐도 내는 반면, 금투세는 이익에 대해서만 과세하니까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에도 맞는다. 대신 장기 보유에 대해서는 금투세도 깎아줘야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단타에 치중하는 투자자도 주식을 갖고 있으면 주주 아닌가.

“국내 개인 투자자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9일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거 소버린이나 엘리어트 같은 외국 행동주의 펀드를 기업 사냥꾼으로 비판한 핵심 논리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이 없고 단기 차익만 노린다는 것이었다. 9일짜리 투자자가 기업의 장기 비전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주식시장도 부동산시장처럼 단기 투기 세력과 장기 투자자를 차별화하고 장기 투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프랑스 등에서 시행하는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 주식을 일정 기간 이상 장기 보유한 주주에게 의결권을 가중하여 부여하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2년 이상 보유 주식에 의결권을 2배로 준다.

-상법 개정안 등 정부의 적극적 증시 부양 정책으로 코스피는 급등했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왜 그런가.

“코스닥 시장의 지배 구조가 기형적이다. 한국거래소(KRX) 산하에 있지만, 상장 심사를 주관하는 코스닥 위원회가 별도로 존재하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다. 벤처 육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목표가 상충하기 때문에 기형적 지배 구조를 낳은 것이다. 미국은 벤처 기업 90%가 M&A(인수·합병)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10%만 상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90%가 상장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상장 문턱이 낮아지고 정보 비대칭성이 심화돼 결과적으로 코스닥 거래의 80%를 차지하는 개미들이 손실을 독박 쓰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코스닥 상장을 엄격히 하자는 것인가.

“코스피는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지만, 코스닥은 벤처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코스닥도 코스피처럼 ‘다산다사(多産多死)’ 정책을 소산다사로 바꿔 우량 기업만 들어올 수 있게 하고 부실 기업은 빠르게 퇴출시켜야 한다.”

“쿠팡이 상장기업이었으면 로켓배송 실패했을 것”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 후 중복 상장은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유상증자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내 현실에서 배터리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중복 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무조건 금지보다는 기존 모회사 주주에 대한 정교한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모회사부터 자회사, 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주회사 체제에서 중복 상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중복 상장이 많아진 것은 정부가 순환출자를 막기 위해 2007년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한 결과물이다. 지주회사가 신규 사업을 진행하려면 유상증자나 자회사 중복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데 투자자 반발 때문에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상장 기업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비상장 기업의 경우 소액 주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쿠팡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년간 막대한 적자를 내면서도 지속적으로 신규 투자를 받아 ‘로켓 배송’이라는 혁신을 완성했다. 만약 쿠팡이 국내 상장된 대기업이었다면 주주들의 증자 반대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장사인 이마트나 롯데가 대규모 유상증자를 한다면 주주들이 좋아했겠는가. 현재 우리 기업에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통로가 막혀 있다는 점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의 장기 성장이란 가치가 충돌할 때 해법은 무엇인가.

“물적 분할을 통한 중복 상장은 기존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고, 지금은 시장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물적 분할과 상관없는 중복 상장은 다른 문제다. 국익이나 기업의 사활이 걸린 대규모 투자를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면 허용해야 한다. 다만 중복 정도나 기존 모기업 주주에 대한 정교한 보상 체계 설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모회사에서 차지하는 자산과 영업이익 비율이 크지 않은 자회사 상장은 허용해야 한다. 또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들에게 신주 인수권을 우선 배정하거나 할인된 가격에 살 기회를 줘야 한다. 상장으로 발생한 차익을 기존 주주들에게 특별 배당 형태로 직접 환원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안동현 교수는 누구?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 최고의 자본시장 전문가로 꼽힌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고려대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6년부터 3년간 국내 자본시장 최고의 싱크탱크인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과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정부 위원회에 참여해 이론을 정책에 접목하는 역할을 했다.

☞발행시장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해 투자자에게 처음 파는 시장으로 자금 조달의 창구 역할을 한다.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가 대표적이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과 달리 자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유통시장

이미 발행된 증권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매매되는 시장이다.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이 대표적이다. 유통시장이 호황이면 신규 상장이나 유상증자 같은 발행시장도 활성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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