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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압력솥이 아니라…슬로 쿠커로 익혀야 깊은 맛"

2026.04.23 17:24

조민선의 아티스트룸
강동석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예술감독

일흔 넘은 K클래식 원조 아이돌
13세 뉴욕 건너가 콩쿠르 휩쓸어
프랑스인 아내와 파리서 여생

21년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올해는 12세 김연아까지 합류
"어리더라도 자기 철학 있어야"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이라는 초대형 스타가 등장하기 반세기 전. 한국 클래식계에는 최초의 ‘오빠 부대’를 만든 원조가 있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바이올린 실력을 겸비한 강동석은 당대 인기의 척도인 책받침을 장식한 클래식계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1960년대 초 김영욱을 필두로 정경화로 이어지는 클래식 유학 1세대의 흐름 속에서 그는 동양의 변방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넌 영재 중 하나였다.

그 시절 ‘소년’은 지금 71세가 됐다. 그는 여전히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료와 후배들이 모여 있는 리허설 룸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 뉴욕으로 홀로 떠났고, 40년 넘는 세월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21년째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서울을 찾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예술감독으로 실내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를 지난 19일 서울 인사동 리허설 룸에서 만났다. 강동석을 음악가로 존재하게 하는 서울, 뉴욕, 파리의 세 공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9일 아르떼와 인터뷰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문덕관 사진작가
제21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 개막 공연을 앞둔 마지막 주말 아침. 인사동의 한 호텔 2층 리허설 룸엔 한국 클래식의 오늘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있었다. 21년째 축제를 함께 지켜온 비올리스트 김상진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박재홍, 파리에서 날아온 피아니스트 문지영, 첼리스트 김가은 등이 프랑크의 ‘피아노와 현악을 위한 5중주 F단조’ 선율을 다듬고 있었다.

편안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부분, 조금 더 세게 연주해볼까?” 강동석의 조곤조곤하지만 명확한 한마디에 연주자들의 활과 건반이 즉각 반응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다 찾아내 지적한다’는 건 연주자 사이에서 이미 정평이 났다.

매년 봄, 파리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어떤 마음일까. “솔직히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요. 21년을 해왔지만 매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걱정은 설렘으로 바뀐다. “악기 소리가 들리고 동료들의 얼굴이 보일 때 비로소 축제가 실감 납니다.”

서울 인사동 리허설 룸에서 호흡을 맞추는 연주자들. 왼쪽부터 강동석, 문지영, 박재홍, 김상진, 김가은. 문덕관 사진작가
올해 주제는 ‘모차르트와 영재들’. 4월 21일부터 5월 3일까지 13회 공연이 펼쳐지며, 역대 최다인 82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12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부터 60~70대 대선배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앙상블의 시작점이 바로 이 리허설 룸이다. “실내악이 어렵다는 건 오해예요. 언어를 배울 때 문법부터 익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노출되듯, 음악도 그저 공간의 공기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독주보다 훨씬 재밌을 수 있어요.”

매일 공연이 끝난 밤, 리허설 룸의 긴장은 인사동 단골 식당에서 풀어낸다. 사장님이 매일 다르게 내주는 오마카세 같은 음식을 먹으며 1년간 못 본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그게 서울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축제가 끝나면 강동석은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파리의 집은 고요하다. 프랑스인 피아니스트 부인과 함께 사는 이 공간에는 묘한 이질감과 조화가 공존한다. 통창 너머로 프랑스식 중앙 정원이 환하게 펼쳐지지만, 집 내부는 전혀 다른 세계다. 한국의 고가구, 고미술 작품, 장식품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정원은 파리, 실내는 서울인 셈이다. “한국풍 인테리어는 프랑스인 아내의 취향이에요. 한국 골동품에 마음을 빼앗긴 아내가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물건으로 집 전체를 채웠습니다.”

한국풍 인테리어로 꾸며진 강동석의 파리 집. 아티스트 제공
그 안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은 부부가 함께 쓰는 음악 연습실이다. 그랜드피아노와 악보 더미, 서적이 가득한 이 공간은 서울의 리허설 룸과 결이 다르다. “테크닉을 연마하는 공간이 아니에요. 스케줄을 짜놓고 연습하지는 않고 유연하게 해요. 음악가로 홀로 몰입하는 곳이죠.”

파리에서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영감이 충만하다. 아내와 매일 한 시간씩 파리 시내를 산책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파리는 인구 200만 명이 안 되는 아기자기한 도시예요. 골목마다 숨어 있는 갤러리와 골동품 가게를 들여다보는 걸 즐기죠. 거대한 루브르보다 작은 공간에서 작품을 하나씩 천천히 보는 게 좋아요.” 파리의 거리를 누비며 얻은 에너지는 그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에게 아티스트룸은 연습실 한 칸이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 전체였다.강동석의 현재를 만든 밑바탕은 훨씬 더 멀리, 반세기 전 뉴욕에 닿아 있다. 8세에 첫 연주회, 12세에 동아음악콩쿠르 대상. ‘더 이상 한국에서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소년은 1967년 13세의 나이에 홀로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 그곳에서 바이올린의 거장 이반 갈라미언을 만났다.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우리도 큰 소리로 말해야 했는데, 제자의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틀린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셨어요.” 스승은 보통 2주에 한 번인 레슨을 그에게만 매주 해줬다. 제자가 참가하는 콩쿠르 심사는 평생 거절했다. “내 학생이 참가하는데 내가 심사하면 안 된다”는 소신으로. 그 고결한 뒷모습은 강동석이 평생 지켜온 예술가의 잣대가 됐다. “제자를 가르치는 데만 평생 전념하셨어요. 인간으로서 굉장히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17세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고, 카네기홀에 데뷔한 뒤 한국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에 오르는 등 그의 모든 화려한 성취는 뉴욕의 고독했던 레슨실에서 결실을 이뤘다. 고단한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해준 건 동료들과의 연대였다. “고(故) 김남윤 선생님이 누나뻘이어서 유학생들을 모아 만둣국과 라면을 끓여 먹이곤 하셨어요.”연세대 음대에서 20여 년간 후학을 양성한 강동석은 후배들에게 늘 같은 말을 한다. “테크닉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됩니다.” 한국 클래식계의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이 ‘A’라고 해도 그게 맞는지 스스로 따져보고 자기 철학을 키워야 합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요.” 임윤찬처럼 개성 있는 연주자의 등장을 ‘좋은 현상’이라고 반기는 그는 후배들이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는 자신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꺼낸 비유 하나. “음악은 압력솥이 아니라 슬로 쿠커여야 합니다. 지름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꾸준히 나아가야 해요.” 빠른 성과보다 깊은 맛이 우러날 때까지 시간을 들여 숙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의 의미를 묻자 일흔의 소년 같은 웃음이 돌아왔다. “저는 솔직히 좀 게으른 편이에요. 기계적으로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는 건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음악 자체가 좋으니까 계속할 수 있었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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