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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 터진 조선소, 정작 배 만들 숙련공이 없다 [기자수첩-산업]

2026.04.23 07:00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한화오션

현재 울산과 거제에 있는 국내 주요 조선소 야드에는 약 200조원에 달하는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수치상으로는 10년 만의 ‘슈퍼 사이클’이다. 하지만 축배를 들어야 할 현장의 공기는 기묘하게 차갑다. 수주 잭팟이라는 화려한 불꽃 뒤에서 한국 조선업의 고용 엔진은 심각한 과부하 상태에 빠져 있다. 거대한 배를 이어 붙일 ‘우리 곁의 숙련공들’은 현장을 떠난 지 오래다.

통계는 이 위기를 증명한다. 2015년 8만명에 달하던 거제 조선업 종사자가 불과 5만명 수준에 머무는 사이, 그 빈자리는 20%를 훌쩍 넘어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다. 문제는 이 인력의 공백이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배를 만드는 일은 규격화된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정과 다르다. 수십 년 간 쌓인 숙련공들의 손끝 감각이 필수적이지만, 지금의 현장은 단기 교육을 받은 외국인 인력을 투입하는 응급처치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는 결국 공정 지연과 품질 저하, 나아가 안전사고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을 안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외국인 수혈’이라는 긴급 처방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비자 확대가 내국인 청년의 자리를 잠식하고 호황의 온기가 지역 경제로 흐르는 길목을 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와 주무 부처 장관이 잇따라 내국인 직고용 확대를 주문하고 나선 배경이다. 하지만 10년의 불황 동안 숙련공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산업 구조는 그대로인 채, 이미 배달 가방을 메거나 건설 현장으로 떠난 ‘김 씨’들을 불러들이는 원론적인 방침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조선소와의 가성비 싸움이라는 현실 역시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의 압박과 현장의 절박함 사이에서 기업들도 부랴부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HD현대중공업이 내국인 채용과 육성을 확대하기로 한 데 이어, 최근 한화오션이 지역 교육기관과 손잡고 직접 인재 양성에 나선 것은 고무적인 신호다. 지난 2년간 거제 양대 조선소에 취업한 거제공고 졸업생은 단 1명뿐이었다. 5년 전 조선업 호황이 다시 시작됐음에도 굳게 닫혀있던 채용의 문이 이제야 비로소 열린 셈이다. 이번 조치는 숙련의 맥이 끊길 뻔한 현장에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거대한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14.7%에 달하는 조선업종 미충원율은 이 산업이 여전히 청년들에게 ‘미래 없는 3D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조선소를 외면하는 건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기술의 가치를 헐값에 매겨온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간파한 탓이다. AI와 스마트 야드라는 기술적 돌파구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중요하겠으나 “당장 용접봉 잡을 손이 없는데 자율운항이 무슨 소용이냐”는 현장의 냉소를 달래기엔 시차가 너무 크다.

결국 지금 우리 조선소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주 액수나 장밋빛 기술 지표가 아니다. 배는 한국산인데 만드는 손은 국적 불명인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다. 도면 위에서는 세계 1위일지 모르나, 현장에서 사람을 잃은 산업은 지속될 수 없다. 거함(巨艦)을 띄우는 마지막 힘은 설계도나 최첨단 기계가 아닌, 현장 노동자의 거친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텅 빈 독(Dock)보다 무서운 것은 기술의 영혼이 사라진 독이다. 지금 우리 조선소에는 배보다 사람이 먼저 필요하다.

데일리안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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