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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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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자유무역 실험장 'GTI'…한국의 8개국 거점 전략

2026.04.23 07:00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김성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아직도 오래된 지도 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54개 국가의 느슨한 집합으로 본다. 어떤 나라는 자원의 공급처로, 어떤 나라는 원조의 대상으로, 또 어떤 나라는 미래의 소비시장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개별 국가들의 병렬적 집합이 아니다. 대륙이 하나의 연결된 시장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있다.

2025 미래경제포럼 기조연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주최로 열린 '2025 미래경제포럼'에서 웸켈레 케베츠웨 메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날 포럼은 '아프리카의 재발견, 함께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렸다. ksm7976@yna.co.kr


AfCFTA의 의미는 단순히 역내 무관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아프리카를 '국가별 독립시장'에서 대륙 내 '국가들이 연결된 단일시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자 역내 무역량을 현재 14% 정도에서 60%로 늘려는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나라의 시장 규모가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가 얼마나 연결되고 통합되느냐이다.

시장은 규모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와 물류, 통관과 금융, 생산과 유통의 흐름이 하나의 질서로 묶일 때 비로소 시장은 살아 움직인다. 바로 그 질서의 전환, 가치사슬의 연결이 지금 아프리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변화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 GTI(Guided Trade Initiative)다. 2022년 10월 카메룬, 이집트, 가나, 케냐, 모리셔스, 르완다, 탄자니아, 튀니지 등 8개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GTI는 이름 그대로 '시험 무역'의 성격을 지닌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 거래를 통해 자유무역의 작동 가능성을 검증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물건이 실제로 국경을 넘고, 원산지 규정이 적용되며, 세관 시스템이 반응하고, 통관 절차가 현장에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GTI는 자유무역을 말로 선포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실제 거래의 언어로 번역하는 첫 실험장이다.

이 점에서 GTI는 상징보다 실천에 가깝다. 한국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지만 자유무역은 실질적으로 운영이 어렵다. 관세를 낮추는 것만으로 시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느 상품이 역내산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원산지 규정이 분명해야 하고, 세관 행정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물류와 결제가 뒤따라야 한다. 결국 자유무역의 성패는 제도와 시스템의 정합성에 달려 있다. GTI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프리카는 지금 자유무역을 약속하는 대륙에서 자유무역을 실제로 운영하는 대륙으로 한 걸음 옮겨가고 있다.

이제는 AfCFTA는 더 이상 8개국의 상징적 시범사업에 머물지 않으며 점차 실행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트럼프 2기 들어 미국과 통상조건이 흔들리면서, 한미 FTA의 앞날 역시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나 한미 FTA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현재는 USMCA로 대체)의 체결 과정이 보여주었듯, 국가 간 시장 통합은 언제나 초기 이행단계가 무척 어렵다. 협상 당시에도 미국에서는 자동차와 제조업 일자리,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싼 반발이 작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농업 피해와 산업 주권 약화에 대한 우려가 거셌다. 역시 북미에서도 노동계와 제조업 부문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의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의 성패는 서명 그 자체보다, 각국이 자국의 산업구조와 사회적 갈등을 얼마나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지금 바로 그 어려운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관세양허, 통관, 원산지 규정, 제도적 정비가 축적될수록 아프리카 시장은 더 이상 추상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 흐름을 단순한 멀리서 들려오는 해외 뉴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한국의 대외경제 전략과도 직결되는 변화다. 지금까지 한국은 아프리카를 주로 개별 국가 단위로 접근해 왔다. 특정 자원, 특정 프로젝트, 특정 개발협력사업을 중심으로 나라별 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 접근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아프리카가 스스로 대륙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면, 한국 역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전략의 단위를 바꿔야 한다. 이제 질문은 "어느 나라에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거점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시장 전체로 확장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그 점에서 GTI 8개국은 단순한 참여국이 아니라 전략적 허브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나아가 유럽을 잇는 관문이다. 가나는 AfCFTA 사무국이 자리 잡고 있듯이 서아프리카에서 정치적 안정성과 제도적 상징성을 가진 거점으로 읽을 수 있다.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는 동아프리카의 물류와 제조, 디지털 유통을 연결하는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모리셔스는 금융과 서비스의 허브로, 카메룬은 중앙아프리카 진입의 교두보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북부, 서부, 동부, 중부, 인도양을 잇는 지역핵심 거점망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한국의 전략도 입체성을 갖게 된다.

개별국가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정치경제에서 쓰이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전략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중심 거점을 확보한 뒤, 이를 축으로 여러 주변 시장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산 제품을 나라별로 파는 접근보다는 거점국에 조립·가공·포장·물류 기능을 두고 이를 발판으로 무관세로 인접국과 권역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다.

곧 '대(對)아프리카 수출'에서 '아프리카 내부 생산과 유통 참여'로 전략의 축을 옮겨 아프리카 시장에 가칭 '한국표준화'(KS Standard)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경쟁력은 무엇을 만드느냐만이 아니라, 어디를 거점으로 삼고 어떤 네트워크로 시장을 연결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강점은 뚜렷하다. 식품가공, 냉장유통, 보건의약, 농기계, 배터리와 전력 기자재, 디지털 통관, 전자결제, 스마트 항만, 산업단지 운영 등은 우리가 비교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 아프리카가 필요로 하는 것도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공급망·물류·통관·결제·기술·운영 시스템이 함께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은 아프리카 시장 형성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개별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 시장의 기반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대아프리카 정책의 심화가 요구된다. 원조는 원조대로, 통상은 통상대로, 기업 진출은 또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아프리카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제는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해야 한다. 인프라를 닦고, 제도를 돕고, 금융을 연결하고, 민간 기업의 진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래야만 아프리카 진출이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이자 생태계가 구성된다. 시장은 거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도와 신뢰, 기반시설과 장기 전략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한국 기업 역시 아프리카를 단순한 판매시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부상하는 것은 소비의 확대만이 아니라 지역가치사슬의 형성이다. 따라서 미래의 소비자와 생산자를 만들어 내는 시각이 필요하다. AfCFTA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한 나라에 진출한 기업은 그 나라만이 아니라 인접국과 권역시장으로 진출하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GTI 8개국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단지 먼저 참여한 나라들이 아니라, 앞으로 아프리카의 통관·물류·규정·유통의 표준이 축적될 가능성이 큰 공간이다. 한국이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선점하며 그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다면 대륙 단위 확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시험무역은 단지 몇 개 나라가 먼저 시도하는 통관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아프리카가 스스로를 하나의 시장으로 단계적으로 조직해 가는 역사적 전환의 전주곡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아프리카 시장 질서의 변화다. GTI 8개국을 전략적 대상으로 삼아 대아프리카 생산·물류·금융·통관·기술협력을 결합한 입체적 진출 구조를 구상해보자. 아프리카의 시험무역은 아프리카의 미래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변화 앞에서 한국의 성장과 연계된 전략적 상상력도 함께 시험받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 한국의 아프리카 전략도 바로 그 길 위에 서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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