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걱정, 왜 안 해요? 석유 탱크가 비어가는데 [딥다이브]
2026.04.23 10:01
*이 기사는 4월 22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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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열려도 석유가 부족하다
배럴당 99달러. 21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월 말과 비교하면 15% 넘게 떨어졌습니다. 아직 불확실성은 크지만, 적어도 이란전쟁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고 종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 거죠.그런데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요. “이번 주에 전쟁이 끝나더라도 전 세계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는 6월 말까지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씨티은행이 20일 내놓은 분석입니다. 이미 전쟁 전보다 전 세계 석유류 재고량이 5억 배럴 줄었는데, 6월 말까지 추가로 4억 배럴이나 더 감소할 거란 전망이죠. 전쟁은 끝나도 에너지 쇼크는 최소 두 달 이상 더 이어질 거란 뜻인데요.
도대체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당장 열린다 해도, 배가 있어야 석유를 실어 나를 수 있으니까요.
만약 모두의 희망대로 미국-이란의 2차 종전 협상이 조만간 성공적으로 이뤄져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열린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해상운송 세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일단 지금 중동 항구에 정박 중인 유조선들이 서둘러 출항하겠죠. 여기 실린 원유(약 1억6000만 배럴)가 목적지인 아시아 국가에 도착해 하역을 마치기까지 25일쯤 걸릴 겁니다. 그럼 그때부턴 아시아 국가의 지상 재고량이 쭉쭉 늘어나기만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죠. 빈 유조선이 다시 중동에 가는 데 16일, 기름 싣고 오는 데 25일이 또 걸리니까요. 그 사이엔 각국이 보유한 재고를 소진하며 계속 버텨야 합니다.
급하니까 다른 지역에 있는 빈 유조선을 중동에 투입하자고요? 현재 미국산 원유를 아시아로 실어 나르려고 미국 항구로 향하고 있는 초대형 유조선이 70척쯤 되는데요. 운임을 엄청 높게 부른다면 이 배들이 유턴해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이 배들이 미국산 원유를 싣고 아시아에 하역해 준 다음,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서 중동 항구에 도착하려면? 최소 80일쯤 걸릴 겁니다. 빨라야 7월에나 가능하겠네요.
왜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도 최소 두 달 이상 공급부족이 이어지는지 아시겠죠? 게다가 한번 생산을 중단한 유전은 스위치 켜듯이 곧바로 재가동이 안 됩니다. 유정에 주입한 물과 가스의 압력 균형을 맞추는 데 보통 몇주가 걸리고요. 특히 쿠웨이트·이라크의 중질 유전은 4~5개월까지 걸린다고 해요. 또 미사일 공격 받은 시설 수리도 해야 하는데요. 이란이나 카타르의 일부 석유·LNG 생산시설은 피해가 심해서, 복구에 몇 년이 걸릴 겁니다.
돌아보면 지난 3월 이란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급등했지만,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왜 이것밖에 안 뛰지?’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세계 석유 공급량 감소가 역사상 최대(하루 1100만~1300만 배럴 추정)였던 것 치고는 그동안 유가가 꽤 선방했는데요. 리스타드에너지는 이게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전쟁 전 쌓아뒀던 과잉 재고, 전쟁 직전 유조선에 실린 채 운송 중이었던 원유, 그리고 대대적인 비축유 방출. 이 세 가지 덕분에 한동안은 버틴 거죠.
하지만 그 단계는 이미 지나갔고요. 이제 전 세계가 육상 석유 재고량을 빠르게 소진하고 있습니다. 이란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적은 나라로 꼽히는 미국조차 지난주 예측(210만 배럴 증가를 예상)을 깨고 재고량이 감소세(실제론 91만 배럴 감소)로 돌아섰고요. 이번 주부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줄어들겠죠. 미국 에너지정보청이 매주 수요일 발표하는 미국 석유 재고량 통계는 석유 선물 시장 투자자들이 예의주시하는 중요한 정보인데요. 재고가 급감한 게 수치로 확인된다면 시장이 화들짝 놀랄지 모릅니다.
참고로 한국의 현재 석유 재고량은 공개되진 않았는데요. 민간 정유사의 재고 고갈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 ‘비축유 스와프(교환)’입니다. 기업이 새로 물량을 구하긴 했지만 배가 들여오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석유가 선적된 것만 증명하면 정부가 비축유를 빌려주는 거죠. 현재까지 국내 4대 정유사의 비축유 스와프 신청 물량은 3200만 배럴에 달합니다. 그만큼 재고 압박이 심하단 얘기죠.
‘항공유 대란’이란 폭풍의 눈
결국 호르무즈 해협이 당장 열리더라도, 석유 시장의 ‘보릿고개’는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궁핍의 고통을 견뎌야 한단 뜻이죠. 물론 부자나라는 타격을 덜 입긴 하겠지만,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현장이 바로 ‘항공유 대란’이죠.항공권에 붙는 유류할증료가 몇 배씩 폭등해서 난리라고요? 어쩌면 그 가격을 주고라도 휴가철에 비행기를 탈 수 있으면 다행일지 모릅니다. 최근 각국 항공사들이 폭등한 항공유 가격 때문에 항공편을 속속 취소한다는 소식이 마구 쏟아져나오고 있거든요.
스웨덴의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은 4월에만 1000편의 항공편을 취소했고요. 아일랜드 에어링구스는 올여름 500편을 감축합니다. 에어캐나다는 토론토-뉴욕을 포함한 6개 노선 운항을 중단했고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도 전체 항공편 5%를 취소한다고 밝혔죠. 태국 타이항공은 5월부터 대폭 감축해서 서울-인천 노선도 하루 3편에서 1편으로 줄이고요. 에어 뉴질랜드는 두 달간 1100편 항공편을 감축했어요. 독일 루프트한자는 21일 “10월까지 총 2만 편의 단거리 항공편을 운항 스케줄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죠.
유류할증료를 올리면 되지, 아예 취소하면 어쩌냐고요? 국제 항공유 가격이 두배 넘게 폭등하면서, 유류 할증료를 최대로 올린다 해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거죠. 일부 노선은 비행기를 띄울수록 손해가 날 판이니까요. 유나이티드항공의 스콧 커비 CEO는 “연료비조차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손해 보는 항공편을 운항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합니다.
또 비용 문제와 별개로 정말 ‘연료가 없어서 날 수 없는’ 상황도 코앞으로 닥쳤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의 항공유 재고량이 6주 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는데요. S&P 글로벌에너지의 펠리페 페레스 이사는 “그것(6주)도 후한 추정치”라며 항공유가 이번 위기의 “폭풍의 눈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래 가능한 항공유가 46% 줄었습니다. 설령 지금 해협이 개방된다고 해도 항공사와 공항이 정상화하는 데는 몇 달이 걸릴 겁니다.”
항공유 대란은 단순히 여름철 해외여행을 못 가서 아쉬운 차원의 문제가 아니죠. 항공사는 수익 급감을 피하기 어렵고요. 특히 재정구조가 취약한 일부 저가 항공사는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또 항공 화물료가 아주 무섭게 뛰고 있죠. 특히 인도-유럽 노선은 운송료가 두배로 올랐다는데요. 이게 전부 제품 원가에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게 뻔합니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해요. 특히 유럽은 항공 여행이 연간 8510억 유로(1482조원)의 GDP와 1400만명의 일자리를 지탱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인데요. 최대 성수기 여름 휴가철을 이대로 놓친다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유럽연합(EU)이 27개 회원국과 ‘항공유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대응에 나선 이유죠.
고유가가 쏘아 올린 금리인상
이렇게 석유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면서 시장이 예의주시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인데요.최근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이 4년 만에 처음으로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했어요. “중동의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세계 에너지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죠.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나선 겁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가 가장 취약한 상황이니까요.
다른 에너지 수입국 역시 금리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죠. 최근 IMF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거라 전망했고요. 일본은행 역시 당장 이번 달엔 동결하더라도 6월엔 기준금리를 인상할 거란 전망이 대세를 이룹니다.
그럼, 한국은행은? 이제 막 새로운 총재가 취임한 직후라서 아직 힌트가 많진 않은데요. 시장에선 ‘연내 동결’과 ‘하반기 한 차례 인상’ 전망이 팽팽히 맞서고 있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우,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달 “이란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 충격은 일시적”이라고 언급한 적 있죠. 당분간은 이런 ‘관망 모드’가 이어질 걸로 예상됩니다. 주요 IB들은 연준이 다시 금리 인하에 나설 시점을 점점 뒤로 미루고 있어요. IB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9월에 금리 인하를 재개해서 연말까지 두 차례 인하할 거란 전망인데요. 금리인하 기대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단 뜻입니다. 탄탄한 미국 경제도 유가 불안에선 자유롭지 않은 거죠.
이란이 2차 협상에 응하지 않자,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 연장”을 발표했습니다. 이거 어째 쉽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인데요. 이 에너지 보릿고개를 전 세계가 슬기롭게 버틸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4월 22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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