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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송은석]우주로 간 구닥다리 디지털 카메라

2026.04.22 22:34

아르테미스 2호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이 이달 2일(현지 시간) 오리온 캡슐 내부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 NASA 제공
송은석 사진부 기자
솔직히 말하겠다. 기자는 이번에 인류가 달에 다시 ‘착륙’하는 줄 알았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4년 만의 달 탐사라는 말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르테미스 2호는 달 뒤편을 돌아 지구로 귀환하는 임무였다. 물론 지구에서 40만 km 이상 날아가 아폴로 13호가 세운 기록을 넘어섰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심우주에서 처음으로 보내온 사진의 주인공은 달이 아닌 지구였다. 사진의 제목은 개발자들이 코딩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입력하는 명령어인 ‘헬로, 월드(Hello, World)’였다. 이 문구는 심우주로 향하는 인류가 건네는 첫인사로 안성맞춤이었다.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이 지구 궤도를 벗어난 직후 촬영한 이 사진 속에서 지구는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동그랗게 떠 있다. 고도 400km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농구공에 코를 맞대고 바라본 것처럼 지구의 일부만 보여준다면, 이번 사진은 아폴로 17호 이후 인류가 지구 전체를 온전히 한 프레임에 담아낸 보기 드문 장면이다.

사진기자의 직업병이 도졌다. 대체 어떤 카메라로 찍었을까. 답은 의외였다. 출시된 지 10년이 다 된 디지털일안반사식카메라(DSLR)인 니콘 D5였다. 미러리스가 표준이 된 시대에 웬 구닥다리 장비인가 싶었다. 사진 결과물도 실망스러웠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하고 선명도도 한참 떨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선 “지구가 아파 보인다”는 반응도 있었다. 1972년 아폴로 17호의 승무원 해리슨 슈밋이 하셀블라드로 지구를 촬영한 ‘푸른 조약돌(Blue Marble)’ 사진이 훨씬 예쁘고 선명했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이 숨어 있었다. ‘푸른 조약돌’ 사진은 지구가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은 낮 사진이었고, 이번엔 ‘밤 사진’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사진 속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위아래 테두리를 따라서 초록빛 오로라가 피어 있고 오른쪽 하단에는 행성 간 먼지에 햇빛이 반사되며 생기는 황도광이 희미하게 뻗어 있었다. 그 끝에 금성도 보였다.

한정된 크기의 센서에 더 많은 화소(픽셀)를 쪼개 넣다 보면, 개별 픽셀의 크기가 작아져 빛을 담는 그릇(수광량)도 덩달아 작아진다. 그래서 우주와 같은 극저조도 환경에서 고화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D5는 널찍한 픽셀 면적으로 고감도 성능만큼은 여전히 니콘 카메라 중 최상급으로 꼽힌다. 최신 고화소 미러리스 카메라가 밝은 대낮에 ‘매의 눈’처럼 디테일을 촘촘히 낚아챈다면, D5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한껏 끌어모으는 ‘부엉이의 눈’에 가깝다. 덕분에 와이즈먼은 태양빛의 40만 분의 1 수준인 달빛에만 의지해 감도 5만1200에 셔터 속도 4분의 1초라는 극한의 세팅으로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1970년대 필름 카메라였다면 수 분의 노출을 줘야만 했을 것이다.

분명 카메라 역사에서 미러리스 시스템은 혁신이었다. 미러 쇼크가 없고 무음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그러나 빠른 배터리 소모와 발열 같은 약점도 있다. 무엇보다 초기 모델들은 사용 중 작동이 멈추는 프리징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DSLR이 험지에서도 시동이 걸리는 구형 지프차라면, 미러리스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펌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한 전기차에 가깝다. 무엇보다 D5는 우주 환경에서 이미 성능을 입증한 베테랑 기기다. 니콘의 신형 미러리스 카메라인 Z9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시험적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심우주 환경에서의 운용 경험은 아직 제한적이다. 최신 장비보다 ‘확실한 장비’를 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NASA는 이미 니콘 장비를 대량으로 운용해 왔다. 이를 통째로 교체하는 건 비용과 적응 문제가 있다. 이는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번 사진에는 명백한 ‘옥에 티’가 있다. 우주선 내부 조명이 두꺼운 유리창에 반사돼 사진 정중앙 바다 위에 주황색 빛 번짐이 생겼다. 반면 NASA의 심우주 기후관측위성 DSCOVR이 150만 km 밖에서 매일 자동으로 찍어 보내는 지구의 사진엔 노이즈도, 빛 번짐도 거의 없다. 기술적으로는 흠잡기 어려운 결과물이다.

그러나 와이즈먼 사령관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관제센터의 조작으로 우주선의 방향이 바뀌며 태양이 지구 뒤로 숨는 순간, 그는 스스로 판단하고 렌즈를 창문에 바짝 붙인 채 셔터를 눌렀다. 빛 번짐은 사진기자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 ‘NG’ 컷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이 개입해 남긴 생생한 흔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오로라와 황도광이 한 장에 공존하는 지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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