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구의 전력투구] "코로나와 디지털 팬데믹이 융단폭격, 가장 외롭고 불안한 세대 만들었다"
2026.04.22 18:16
지난달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제15차 국가손상종합통계’에 따르면 2014년 자해ㆍ자살을 시도한 소아ㆍ청소년(10~19세)은 인구 10만 명당 1.96명이었다. 2023년에는 12.8명이 됐다. 10년 사이에 6.5배 증가한 것이다. 2020년부터는 매년 300명이 넘는 어린이ㆍ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을 했던 당시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한 해다. 코로나 팬데믹 3년을 겪은 세대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들었는데, 이때 관계 단절과 사회성 발달 지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후일 이 아이들에게 우울, 불안, 단절감과 같은 정신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당시 정신건강전문가들의 경고는 안타깝게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음 터놓을 친구 한 명 없는 고립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93명이었던 자살 학생은 2023년 221명으로 증가했다.
평교사 시절(1992년 임용)부터 장학관(서울시교육청 상담마음건강팀)을 거쳐 학교장이 된 지금까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큰 관심을 쏟아온 신선호(58) 서울 신원중 교장을 지난 9일 양천구에 있는 학교 교장실에서 만났다. 신 교장은 역사교사 출신이지만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따는 등 일찍부터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주목했다. 그는 최근 펴낸 '조용한 붕괴'에서 디지털기기에 대한 몰입과 코로나 사태 등으로 정신건강이 크게 취약해진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학생인권과 교권의 갈등 속에서 열정을 잃어가는 교사들, 위기학생을 포착하지 못하고 적시에 개입하지 못하는 학생마음건강정책 문제 등을 끄집어 내며 지금 학교는 소리 없이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장은 “코로나가 가속페달을 밟았다. 아이들이 관계를 맺고 공감능력을 키워야 할 결정적 시기를 잃어버린 건 굉장히 큰 문제”라며 말문을 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이들 정서를 어떻게 무너뜨렸나.
“현재 중·고등학교 자살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 이미 예견됐던 거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갈등을 조정하며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할 황금 같은 시간을 마스크 뒤에 숨어 고립된 채 보냈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로 코로나 3년을 보낸 아이들은 상대방이 화가 났는지 슬픈지 읽어내지 못하는 ‘표정 문맹’이 됐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오해에도 폭력적으로 대응하거나 극단적인 우울에 빠지게 된다. 학폭이 늘고 자살률이 치솟는 근본 배경에 ‘잃어버린 3년’의 정서적 빈곤이 있다. 구글코리아가 협업 능력이 떨어지는 엔지니어들을 먼저 정리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공감 능력이 없는 천재는 미래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지 않았나.
"우리는 코로나 이후 기초학력 저하 문제 해결에 집중했는데, 핀란드 같은 나라는 마음건강을 국가적 어젠다로 삼았다. 영국은 ‘마음챙김의 나라, 영국(Mindful Nation UK)’을 선언하고 의회가 교사 교육 센터와 마음챙김 센터를 만들었다. 예산도 우선해 쏟아부었다. 호주 초등학교에서는 입학하면 가장 먼저 '내 감정 알아채기' 수업을 한다. 내가 지금 흥분했는지, 우울한지, 기쁜지 먼저 알고, 그 다음에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도 실질적인 ‘마음 스킬’을 가르치는 혁명이 일어나야 아이들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교대와 사대의 커리큘럼부터 바꿔야 한다. 교과를 3분의 2로 줄이고, 심리·정서적 부분과 생활지도가 적어도 3분의 1은 돼야 한다.”
-요즘 아이들의 행동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갈등 상황을 피하려고만 한다. 아이들은 의견이 다르면 부딪히고 충돌하고 조정하고 타협하고 이렇게 하면서 성장해가야 하는데 아쉽다. 사실은 학교폭력이라는 것도 그렇다. 당연히 애들 사이에선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가끔은 물리적 충돌도 일어난다. 그런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해 나가고 화해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가 성장하게끔 해야 되는데 학교폭력예방법이 그걸 가로막는다. 독선적인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다른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자기만의 주장을 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렇게 비슷한 아이들끼리 편을 모아가지고 집단 따돌림을 하거나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무시하거나, 조금 다르거나 부족한 아이를 따돌림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모둠수업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모둠수업은 기본적으로 협업을 해야 하는데, 갈등이 생겼을 때 그걸 조정해 나가는 능력 자체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문해력도 문제지만 협력적 인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회성을 키울 수 없었던 코로나 시기의 직격탄이라고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교육비를 투입하고 가장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가장 안전하게 키운 아이들이 역설적으로 사회성도 갖추지 못하고 협업도 못하고 심리적으로 가장 외롭고 불안한 세대가 돼버렸다. 요즘에는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학원 뺑뺑이를 돌리느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놀 시간이 없는 거다. 온갖 세균에 노출되면서 항체가 형성되는 것처럼 심리적 면역력도 똑같다. 요즘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갈 때 선생님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것이 방 배정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이 늘어난 거다.”
-'디지털 팬데믹’은 아이들 뇌 구조와 사회성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아이들 뇌가 ‘도파민의 노예’가 되고 있다. 1분 내외의 짧은 쇼트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긴 글을 읽거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왜곡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역사상 가장 외로운 세대다. 면대면 접촉에서 배우는 눈빛, 말투의 미묘한 뉘앙스, 상대방의 체온이 담긴 배려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읽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온라인 익명성 뒤에 숨어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에 공감하는 회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교실 내 집단 따돌림 양상을 더욱 잔인하고 집요하게 만든다. 현실의 친구는 경쟁자이거나 공격 대상이 되고 정서적 유대는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가상 공간에서만 찾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아이들을 ‘함께 있어도 홀로 있는’ 고립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조용한 붕괴’의 가장 큰 동력이 되고 있다.”
- 정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정신적 위기인 학생도 있는가.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으로 있을 때 특목고를 준비하는 전교 학생회장, 스승의날에 유튜브로 기타를 치며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영상을 직접 만들었던, 아이들 표현으로는 '핵인싸'였던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교사들은 ‘우리가 키워낸 가장 완벽한 아이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아이들도 집단 트라우마에 빠졌다. 책에서 설명한 ‘정상군의 역설’이다. 학교의 관심은 전체의 5%인 관심군에 집중돼 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침묵하며 무너지는 나머지 95%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서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 중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정상’에 속했던 학생들의 비중은 2019년 39.1%에서 2022년 83.3%로 급등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니 오히려 낫다. 하지만 속으로 삭이며 순응하는 모범생들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아무런 예고 없이 확 꺾여버린다. 우리가 이 침묵의 다수를 방치한다면, 학교라는 성채는 밑바닥부터 조용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교문에서 아이들을 직접 맞이한다고 들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한다. ‘등교 표정’을 읽기 위해서다. 아침 첫 표정에서 조금 우울해 보이거나 평소와 다른 아이가 있으면 상담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유심히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다. 교문에서 아이 하나하나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 그게 위기 관리의 첫걸음이다. 아이들 위기는 사소한 행동에서 먼저 나타난다. 급식실에서 갑자기 혼자 밥을 먹기 시작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스마트폰에만 몰두하는 모습, 좋아하던 체육 시간에 멍하니 서 있는 모습 등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이의 표정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AI) 시대의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적 감수성이다. 기계는 아이의 성적을 분석할 수 있지만, 아이의 슬픈 눈동자를 알아채는 것은 오직 인간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통계상 자살 요인을 보면 정신건강 문제 33%, 불명 31%, 가정 요인 18%, 성적·진로 10% 정도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이 분류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근본을 파고들면 대부분 가정 문제다. 부부 싸움이나 부모의 이혼을 보면서 아이들은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 죄책감이 우울감으로, 다시 정신건강 문제로 발전한다. 성적이나 진로도 결국 부모와 아이의 기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아이의 공부나 성적만 관심을 갖는 것보다 아이의 표정에서 나타난 감정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 자살을 선택하려는 순간, 단 한 사람의 얼굴만 떠올릴 수 있어도 멈출 수 있다. 그 얼굴이 부모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면에서 7세 고시니 뭐니 하며 유치원 시절부터 문자를 주입하고 경쟁시키는 것은 아이 뇌를 망가뜨리는 학대와 같다. 변연계가 성숙해야 할 결정적 시기에 조기 교육으로 이를 방해하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서적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전두엽의 기능은 기계가 대신한다. 인간만이 가진 공감과 감성이 핵심 경쟁력인데 부모 욕심이 아이의 미래 경쟁력을 싹부터 잘라내고 있는 셈이다. 부모들은 영유 입학에 우쭐해하지만, 뇌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뇌를 서서히 파괴하는 행위다.”
-책에서 학교 내 ‘교육 외주화’와 ‘사법화’가 학교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교가 사법 전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과거에는 선생님 꾸중이 ‘제자를 향한 사랑’으로 해석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교육적 행위가 법전의 잣대 아래 놓인다.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고소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무서워 회피하게 되고, 전문성이 필요한 상담은 상담사에게, 복잡한 학교폭력은 변호사에게 떠넘기는 ‘교육의 외주화’도 만연해졌다. 담임 교사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일상적인 상담과 훈육의 권위가 외주업체와 법률 전문가에게 넘어가면서 교사는 정작 아이들의 영혼을 만질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학생과의 정서적 탯줄은 끊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교사들의 노하우도 ‘아동학대 처벌법’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막혀 빠르게 사장되고 있다. 엄격함 속에 사랑을 담아 지도하던 노련한 방식은 이제 ‘정서적 학대’라는 이름으로 고발 대상이 됐다. 결국 학교의 자생적 상담 역량은 급격히 약화되고,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학부모의 불신은 더 날카로운 민원과 소송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나라 학생 마음건강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정책의 파편화’다. 교육부·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가 각각 나름대로 촘촘히 정책을 펼치지만 협업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부처 간 기본적인 상담 데이터 공유도 안 된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조직은 이미 다 갖춰져 있다. 각 시·군·구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위(Wee)센터가 있으나 협업이 안 된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위기에 처한 아이를 중심에 놓고 협업을 이끌어 내야 한다. 95%의 침묵하는 아이들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에 응답해야 한다. 이 일은 단순히 한 학교의 노력이 아니라 국가적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과제다. 학교가 살아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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