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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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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세상 영화를 마음껏 누려보니

2026.04.22 15:18

조현이 제미나이에 임락경 목사의 사진을 업로드한 뒤 대학 대강당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모습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인공지능으로 합성해 만든 이미지.

“우리 희망 무엔가 뜬 세상 영화/ 분토 같이 버리고 주님 모시고/ 천국 낙원 영광 중 평화의 세계/ 영원무궁하도록 누림이로다” (허사가)

지금까지 소개했던 허사가는 내가 10 살 때 , 3 학년 때 외워두었던 노래다 . 어릴 적에 허사가를 불렀던 탓에 우리 희망이 아니고 내 희망은 무척 작았다 . 헛된 것은 일찍이 알았기에 , 종교적으로는 집사도 하지 말자 , 정치적으로는 반장도 하지 말자 , 교육은 중학교도 가지 말자 , 재산은 산골짜기 논밭은 있어야 한다 , 살 집은 내가 짓고 살아야 한다 , 좋은 옷 입어보고 싶거나 맛난 것 먹어본다거나 고대광실 높고 넓은 집 살아보고 싶은 생각일랑 , 안 해보았다 . 편히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 그래도 희망은 빨리 커서 이현필 선생님이나 유영모 선생님은 찾아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내 희망은 뜬 세상 영화가 아니었다 . 인생 100년이라면 3만6500일이라는 짧은 인생이다 . 내 개인을 위해서 살지 말고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 살자 .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주를 위해서 살자 .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든 내 죽음을 보고 순교자라는 결론이 나도록 보람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살자는 큰 희망을 가져보았다 ( 그렇게 살지는 못했어도 ) .

희망은 결코 뜬 세상의 영화는 아니었다 . 이현필님의 가르침은 학교 가지 말자 , 병원 가지 말자 , 약 쓰지 말자 , 원조물자 먹지 말자는 것이었다 . 이현필님은 모두 지키시면서 사신 것이 아니고 , 지키시다가 52 세에 돌아가셨다 . 나는 지키지 못하고 80 세 넘도록 살고 있다 .

우선 학교 가지 말자는 가르침을 자기 합리화시키면서 잘도 어겼다 . 그래도 중학교, 고등학교는 안 갔다 . 그리고 폐결핵 환자들과 장애인들과 젊음을 살고 있었다 . 우선 10 대 때 중학교를 안 가니 중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를 않는다 . 어설픈 영어단어 쓰면서 나 못 알아 듣는다며 나 생각해주는 듯하면서 나 있을 때는 오케이 , 헬로 찾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 그럼에도 그때 희망이 있었다 . 대학생들과 머리 맞대고 토론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 희망이었다 .

희망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 내 첫번째 강의 요청이 이화여자대학교였고 , 대강당에서였다 . 대중 앞에 서본 경험이 없을 때였다 . 사회를 맡은 교수님께서 “ 강사 소개를 뭐라고 할까요 ?” 하신다 . 한가지도 없었다 . 학력은 국졸 , 경력은 농사짓는 일 , 직함은 전무였다 . “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 “ 내가 강사 소개를 어떻게 할까요 하니 , 직접 하신다고 합니다 . 들어봅시다 .” “ 나는 중학교에 안 갔고 , 16 살 때 버스 처음 타보았고 , 19 살에 기차 처음 타보았고 , 22 살에 서울 처음 와봤고 , 그나마도 군에서 휴가 나올 때이고 , 27 살에 바다를 처음 보았고 , 30 살에 공중목욕탕에 처음 가보았어요 .” “ 야 ∼ !” 하고 환성과 함께 박수가 터진다 . “ 중학교에 안 가니 중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놀아주지를 않아요 . 그때 내 희망은 대학 다니는 학생들과 머리 맞대고 토론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 희망이었는데 , 오늘은 명문대에 강사로 왔으니 , 오늘이 제 희망이 이루어진 날이에요 .” “ 야 ∼ !” 이제는 더 큰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 그렇게 내 첫 강의는 거침없이 어색함도 없이 끝이 났다 . 그 후로 이화여대에서 여러 차례 강의 요청이 왔다 . 그 정도가 아니었다 . 덕성여대, 숙명여대, 이제는 숭실대 강의까지 요청이 늘어난다 . 한동안 이대 앞에 지나가면 나에게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 선생님 강의가 무식하고 재미있고 진지했다고 한다 . 그 정도가 아니었다 . 그 학생들이 단체로, 개인적으로 내 집을 찾아왔고 , 자고도 가고 , 며칠씩 토론회 장소로도 쓰고 , 내 강의도 들으려고 왔다 . 학생들이 너무나 많이 드나드니 철원군 장흥파출소 경찰이 내 집에 찾아온 학생들을 연행해서 의정부경찰서로 넘겼다 . 내 집에 먼저 왔던 학생 중 경찰학교 교장 딸이 있어서 같이 가서 데리고 나왔다 .

이제부터는 초청 강의가 늘어나면서 서울대 농대에서까지 강의 요청이 왔다 . 이 강의는 학생들 초청이 아니고 , 교수가 자기 시간을 빼주면서 허락한 강의였다 . 강의 주제는 ‘ 불한당 ( 不汗黨 ) , 땀을 흘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 이다 . “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이 있는데 , 육체 노동만이 노동이고 , 정신 노동은 있을 수가 없는 단어다 . 정신은 그냥 정신만 쓰는 것이지 노동이 아니다 . 마치 아이스크림을 불에 구워 먹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한 학생이 질문한다 . “ 우리가 머리 쓰는 노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셔요 ?” “ 나는 한평생 노동을 해왔다 . 다만 군대 생활할 때 사무실에서 3 년간 있어 봤는데 , 그냥 머리만 쓰고 지냈다 . 그러나 농사일 할 때는 낫질할 때마다 손 다칠까 봐 , 도끼질할 때 발등 찍을까 봐 , 높은 집 지을 때 떨어질까 봐 … , 이 모든 것이 정신 노동이었다 . 또 정신 쓰는 일 , 정신 쓰고 땀 흘리는 일과 가치를 따지면 땀 흘린 값이 더 비싸다 . 앞으로는 땀 흘린 값이 더 비싼 시대가 올 것이다 .” “ 우리가 그럼 미쳤다고 공부만 하고 있어요 ?” 이때 뒷자리 학생이 “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 교수님 강의가 공산 사회주의 이론 같아요 .” 하고 , 또 다른 학생이 “ 맞습니다 . 이것은 공산주의 이론이에요 .” 맞장구친다 . 그때 담당 교수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분위기가 심각했다 . “ 죄송합니다만 내가 요구한 강의 주제에서 빗나갔는데 , 이 질문 취소할 수 없어요 ?” 교수가 학생에게 말하자마자 , 내가 나서서 말했다 . “ 아니 , 취소하지 말아요 . 전두환 대통령 취임사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이들이 기어코 잘사는 사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하셨는데 , 그러면 학생들은 전두환 대통령께서 우리나라를 공산 사회주의로 건설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학생들 신분 좀 검토해 보아야겠는데 …. ”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 학생들이 “ 죄송합니다 . 질문 취소하겠습니다 ” 하고서 위기를 넘겼다 . 내가 미쳤다고 전두환 대통령 취임사를 읽어보았겠나 ! 텔레비전도 없었고 , 있었다 해도 볼 시간도 없었고 , 보고 싶지도 않았다 .

그 당시 학교마다 교수들 몰래 경찰 정보과나 중앙정보부에서 심어 놓은 학생들이 있었다 . 교수들 몰래 들어와 수업하고 있었는데 , 그 교수는 그 학생들을 알고 있었다 . 얼마나 심각했으면 자기 반 학생들에게 반말도 못 하고 ‘ 죄송합니다 . 질문 취소할 수 없습니까 ?’ 한 것이다 . 그 교수님은 그 학생들이 무전기 가지고 수업 듣는 것도 알았다 . 이제 수업 끝나기 전에 두 사람은 끌려가고 , 간첩 둘이 잡혔고 , 그들은 승진하고 , 나와 교수는 고문당하고 교수직 박탈당하고 ,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 되고 … 2 ∼ 3 분간의 생각이었는데 , 황당하고 창백한 얼굴에 떨리는 말투를 상상만 해보시라 . 그 위기를 순간적으로 넘겼었다 .

세월은 흘러 네월도 흘러 우리 앞집에서 큰 여자아이 결혼식이 있었다 . 예식장은 서울대학교 예식장이었고 , 주례 선생은 옛날에 당황했던 그 교수님이셨다 . 검은머리였던 머리카락이 흰머리이다 . 나는 마을 사람들과 관광버스 타고 가서 참석했다 . 결혼식 끝나고 사진 찍기 전에 “ 저 임락경입니다 .” “ 잘 모르겠는데요 ?” “ 옛날에 전두환 대통령 취임사요 .” “ 아 , 내가 당신을 얼마나 찾았는데 . 지금 어디 계셔요 ?” “ 신부 윗집에 살고 있어요 .” “ 끝나고 술 마십시다 .” 교수님은 사진 찍고 나는 마을 사람들과 점심 먹고 나니 나를 30 분간 찾으러 다니셨다고 한다 . 그날 교수님께 붙들려서 관광버스 타고 오지 못하고 밤새도록 놀다 자고 왔다 .

내 강의는 신학교마다 부탁이 왔고 , 신학교마다 안 가본 신학교가 거의 없었다 . 지방 신학교까지 보수 · 진보 상관없이 다녔다 . 대학마다 거의 다 갔었다 . 내가 실력 있고 잘나서가 아니라 무식하기로 유명했다 . 학교 정식 졸업장은 국민학교 졸업장이 다였고 , 신학교는 인가 없는 야간 신학이었으니 , 정부에서 인정해준 학력이 아니다 . 실은 내가 신학교 다닐 때 , 우리나라 신학교에 대학 인가는 없었다 . 자기들이 다녔던 신학교가 후에 대학 인가가 났던 것뿐이다 . 한때 나의 공식적인 직함은 상지대학교 초빙교수였다 . 학교 가지 말자는 희망 실천하다가 교수까지 되었으나 , 지금은 역시 뜬 세상 영화다 .

임락경 목사(전북 정읍 사랑방)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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