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사북의 얼어붙은 봄
2026.04.22 18:41
강원 정선군 사북읍엔 2004년 가동을 멈춘 동원탄좌가 있다. 1960년 흥국탄광으로 출발한 이곳은 1970년대 후반 국내 최대 민영탄광으로 성장하며 한국 산업화의 동력 역할을 수행했다. 한때 24갱도에서 수백만t의 석탄을 뿜어냈던 동원탄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거론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산업유산의 화려한 명성 뒤엔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한 국가폭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진 1980년 4월, 사북에선 광부들과 가족 등 5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투쟁이 벌어졌다. 매년 200명이 막장에서 죽는 지옥 같은 노동환경, 저임금과 어용노조의 횡포에 분노한 광부들의 총파업이 나흘간 이어졌다. 노사합의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그 뒤 진짜 비극이 시작됐다. 전두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가 광부와 그 가족 200여명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며 빨갱이와 폭도의 굴레를 씌운 것이다. 살아 돌아온 이들조차 감시와 낙인 속에 평생을 숨죽여 살아야 했다.
사북의 탄광 노동자들이 폭도라는 오명을 벗기까지 25년이 걸렸다. 2005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사북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고, 2008년엔 진실화해위원회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국가폭력 사건으로 규정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당시 무기고 손괴 및 포고령 위반으로 처벌받은 이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에는 ‘사북 사건’을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감독 박봉남)이 개봉되면서 사회적 차원에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사북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이들의 검은 눈물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 의 사과도, 피해자 명예회복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로 예정됐던 46주기 기념식마저 행정적 이유로 연기됐다. 46년 전 공권력이 자행한 인권유린의 근거는 비상계엄이었다. 사북을 짓눌렀던 국가폭력이 박제된 과거가 아님을 우리는 윤석열 내란으로 실감하지 않았던가. 그날 이후 사북 주민들은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국가가 사북의 진실을 인정하고 주민들의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전두환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