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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급 대신 호흡을 택한 김어준의 '겸손한' 역습…대구 '겸공 LIVE 콘서트' 투어 참관기 [더게이트 현장]

2026.04.21 14:24

4월 18일 대구에서 열린 '겸공은힘들다 LIVE 콘서트'(사진=더게이트)

[더게이트=대구]

4월 18일, 대구의 공기는 차분했다. 그러나 대구 엑스코(EXCO) 내부 온도는 임계점을 넘어선 듯 뜨거웠다. '보수의 심장부'라 불리는 대구, 그리고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격랑이 한창 시작되는 시점.

이 척박한 환경에서 2,500명이 넘는 인파가 '겸손은힘들다 LIVE TOUR' 콘서트장에 모이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5시, 조명이 꺼지고 막이 오르자 객석은 빈틈없이 메워졌다. 그곳엔 단순한 관람객이 아닌 '동지적 유대'를 갈구하는 뜨거운 갈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축귀(逐鬼)의 몸짓으로 문을 열다>

콘서트장으로 입장하는 관객들(사진=더게이트)

공연의 포문은 기획자 탁현민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사자춤'이 열었다. 전통적인 사자춤의 형식을 빌려왔으나, 그 이면은 지극히 도발적이었다.

탁현민은 '겸손은힘들다' 진행자 김어준의 얼굴을 형상화한 탈을 쓴 사자를 무대 위에 세워, 현시대의 부정(不淨)한 기운을 밟아 누르고 관객들의 억눌린 답답함을 해소하는 정화의 의식을 치렀다. 사자가 관객석을 휘저을 때마다 객석은 들썩였고, 이는 곧이어 등장할 주인공을 위한 가장 완벽한 예우였다.

김어준은 객석을 메운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김어준은 거대 담론보단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고뇌와 일상의 파편들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김어준은 서울대에 가려고 삼수했던 시절, 대기업 포스코를 입사 8개월 만에 퇴사하고 나왔을 때 일화를 들려주며 "그때마다 어머니가 간섭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어준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심어준 덕분에 사회로 진출했을 때 회사든, 권력이든, 누구 앞에서든 싫으면 싫다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며 "그 자유야말로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소탈한 김어준의 이야기에 관객들은 때론 웃고, 때론 손뼉을 치며 김어준과의 정서적 밀착을 이어갔다.

<'더 파워풀'과 '겸공 라이브 투어': 체급의 차이가 아닌, 호흡의 차이>

올해 진행 중인 ‘겸손은힘들다 LIVE TOUR’와 지난해 6월 인천에서 열린 '더파워풀' 공연은 기획 취지와 성격이 애초부터 다른 무대다(사진=더게이트)

여기서 일각의 지적 아닌 지적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올해 진행하는 '겸손은힘들다 LIVE TOUR'와 지난해 6월 인천에서 열린 '더 파워풀'과의 비교다. 일각에선 '겸손은힘들다 LIVE TOUR' 투어의 관객수와 '더파워풀'의 관객수를 단순 비교하며 김어준의 영향력을 재단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클래식 독주회와 대형 록 페스티벌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오류와 같다.

지난해 6월 27일부터 29일 사흘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 공연장에서 열린 '더파워풀' 콘서트는 토크쇼와 각종 음악 공연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전국구' 이벤트였다. 공연마다 전국에서 몰린 1만 5,000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번 '겸손은힘들다 LIVE TOUR'는 전국 각지의 골목으로 파고드는 '찾아가는 극장'이다. 대전, 대구, 고양, 부산, 전주, 광주를 차례로 찾는 순회 투어다. '더파워풀'처럼 전국에서 모여든 관객을 대상으로 한 대형 이벤트가 애초부터 아니었다. 거대한 군중이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친밀함을 제공하려고 만들어진 무대가 바로 '겸손은힘들다 LIVE TOUR'다.

그래서일까. '보수의 심장부' 대구에서 2,500명이 보여준 응집력은 '더파워풀' 공연에 참가한 1만 5,000명만큼이나 무겁고 단단했다.

<홍사훈의 화양연화(花樣年華)와 오래된 추억의 교차>

홍사훈 기자(사진 검은색 자켓)가 가수 강산에(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의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를 열창하는 장면(사진=더게이트)

탁현민의 노련한 사회 아래 진행된 2부 토크쇼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앙상블 드라마 같았다. 'KBS'라는 견고한 시스템을 박차고 나온 '홍사훈쇼' 진행자 홍사훈 기자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며 활짝 웃었다. 조직의 논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재의 자유가, 거대 방송사의 간판보다 값지다는 고백은 현장 언론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주진우 기자는 대구와의 지독하고도 유머러스한 인연을 복기했다. 과거 대구에서 김어준을 바로 옆에 두고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채 "김어준 그놈이 문제야"라며 욕을 퍼붓던 시민과, 그 욕에 능청스럽게 맞장구를 쳤던 김어준의 일화는 대구라는 공간이 지닌 복합적인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대한민국 최고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인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사진 왼쪽부터)와 김어준의 토크 장면(사진=더게이트)

이어진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김어준의 대담은, 철학이 정치의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고, 시민 개개인의 존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창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이 공연이 단순한 토크 콘서트가 아닌,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지적 성찬임을 제대로 보여줬다.

공연의 정점은 가수 강산에와 홍사훈의 협연이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의 2절이 시작되자 홍사훈이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고운 목소리가 아닌, 삶의 굴곡을 견뎌온 이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노래는 대구 엑스코를 거대한 울림통으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노래 한 곡의 감동을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을 향한 따뜻한 격려였다.

대전과 대구 공연을 연이어 찾은 관객의 후기는 이 투어의 본질을 꿰뚫는다. "고립된 섬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오니 내가 거대한 대륙의 일부임을 확인했다"거나 "탁현민의 기획력이 김어준이라는 원석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했다"는 평가는 이 공연이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삶의 관점이 함께하는 이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말해준다.

<위로와 확인의 과정이었던 '겸공 라이브 투어'>

기획자 탁현민의 사회로 진행한 김어준과 겸공 출연자들과의 토크쇼(사진=더게이트)

'겸손은힘들다 LIVE TOUR'는 15년 전 '나꼼수' 시절의 투어와는 결이 다르다. 당시가 정권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면, 지금은 '위로'와 '확인'의 과정이다. 탁현민의 정교한 연출력은 자칫 정치적일 수 있는 메시지를 고품격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켰고, 김어준은 그 무대 위에서 흩어져 있던 시민들을 '시대의 주인공'이자 '연대의 주체'로 묶어 세웠다.

보수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는 이제 고양과 부산 그리고 전주와 광주로 향한다. 각 도시가 지닌 고유한 서사와 김어준의 스토리가 만날 때마다, 한국 정치의 지도는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 것이다.

대구의 밤은 깊었지만, 그곳을 떠나는 2,500명의 가슴 속엔 '더는 외롭지 않다'는 믿음의 불꽃이 이식돼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됐는지 모른다.

기획자 탁현민(사진 왼쪽)과 '겸공' 진행자 김어준(사진 오른쪽)이 무대 뒤편에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사진=더게이트)

'겸손은힘들다 LIVE TOUR'는 4월 25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제1전시장, 5월 2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5월 9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 공연장, 5월 16일 광주여대 시립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서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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