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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1호기 10년 만에 원전 8개로… ‘정전 없는 한국’ 기틀 마련

2026.04.22 02:22

[대한민국 에너지 이야기] ③ 한국, 원전을 돌리다

2011년 9월 15일은 현대 한국사에선 드물게 대정전(블랙 아웃)을 경험했던 날이다. 전력거래소가 예측한 이 날 전력 피크 시간 때 예상 수요는 6400만 킬로와트(㎾). 하지만 실제 수요는 이를 326만㎾나 상회했고 이날 오후 3시11분부터 지역별 순환 정전이 시작됐다.

엘리베이터가 수 시간 멈추고, 병원도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다. 접수된 피해 건수는 8962건, 신고 피해액은 610억원으로 집계됐다. 숫자로 본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예고도 없이 전기 공급이 끊긴 이유가 설비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월에 보기 힘들던 고온에 냉방 수요가 폭발한 게 원인이었다. 전력 주무 부처였던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부)를 이끌던 최중경 장관은 장관직을 내려놔야만 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다만 결론적으로 이는 기우로 끝났다. 우리 뇌리에 이전이나 이후에도 이같은 대규모 정전의 기억은 없다시피 하다. 현재도 수시로 정전을 경험하는 타국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한국의 특성을 아는 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전 없는 한국’은 어떻게 성립했을까.

원전이 일군 24시간 전력

1971년 한국전력에 입사한 이중재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회고는 주목할 만하다. 부산시 소재 감천화력발전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이 전 사장은 73년에 본사로 발령이 났다. 첫 본사 근무의 기억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본사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던 회사 목표”였다고 한다. 대국민 양질의 전력 공급과 함께 ‘정전 없는 전기 공급’ 두 가지가 최우선이었다. 한국은 감천화력발전이 상업 운전을 시작한 64년부터 제한 송전을 해제하고 무제한 송전을 시작했다. 이후 10년가량 지난 시점이지만 정전 우려가 여전했다는 증언이다. 연탄 파동 사태를 계기로 67년 6월부터 1년 2개월간 제한 송전을 재개했던 점도 이런 우려를 방증한다.


매번 정전을 걱정했던 상황이 획기적으로 바뀐 시점을 정확하게 산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료들을 살펴보면 원자력발전의 태동이 적지 않은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원전은 현재의 전력수급기본계획 격인 ‘전원 개발 10개년 계획’에서 처음 등장한다. 58년 자료를 보면 미국의 원자로 제공을 전제로 삼은 원전 건설 방침이 정책에 반영됐다. 이후 20년이 지난 78년에 설비용량 58만7000㎾인 고리1호기가 상업 운전을 개시했다. 2026년 현재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300~400㎾h)을 고려해도 100만 가구 이상에 전력 공급이 가능한 설비가 들어선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속도다. 동력자원부 기록물 중 하나인 ‘동력자원행정10년사’를 보면 고리1호기는 71년 착공해 78년 준공하며 8년 만에 위용을 갖췄다. 83년 준공한 고리2호기와 85년 준공한 고리3호기는 7년 만에 완공했다. 한 기의 대형 원전을 건설하는 데 10~15년이 걸리는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88년 기준 가동 중인 원전 수는 불과 10년 만에 8개로 늘어났다.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설비 용량이 짧은 기간에 급증하면서 정전 우려가 걷혔을 공산이 높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집계 기록을 시작한 86년만 해도 가구당 연간 정전 시간은 454분이나 됐다. 하지만 정전 시간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고 95년엔 39분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분을 밑돌았다. 이 시기는 국내 주도로 건설한 설비용량 100만㎾의 한빛3호기가 준공과 함께 가동 원전 수가 10개로 늘어났던 시점이다.

한전 주도의 송·변전망 확충, 그리고 110볼트(V)에서 220V로 전환한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아무리 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전력을 실어 나르고 배분하는 송·변전망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한전의 88년도 경영통계에 따르면 77년 23만8232㎞였던 배전선로는 불과 10년 후인 87년에 47만6942㎞로 배가량 급증했다. 전압을 높여 송전 손실을 낮추고 전력 설비 가격도 떨어뜨리는 220v화도 착착 진행됐다. 동력자원행정10년사를 보면 87년 기준 220V를 쓰는 가구는 이미 58.2%에 달했다. 주석에는 “90년대 후반 220V 승압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는 목표가 덧붙었다.

북한 원전 건설 실험

미국·프랑스 등 수입산에 의존하던 원전의 국산화가 진행된 것도 이 시기다. 원자력위원회는 85년 7월 ‘원전기술자립계획’을 의결하며 기술 자립화의 길을 터줬다. 정부는 계획 승인 이후 처음으로 착공한 한빛3호기부터 기술 자립도를 급격히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전은 이때만 해도 53.5%였던 원전 자재 국산화율을 다음 원전부턴 95% 이상으로 올려잡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현실이 됐다.

이는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 원전을 지어주는 사업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수립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미국과 북한의 합의에 따라 95년 발족한 KEDO는 한국이 70%의 자금을 대는 구조였다. 건설할 노형도 한국형 경수로를 채택했고 한전이 사업에 투입됐다.

유일한 남북 합작 에너지 사업 실험이라 할 수 있는 이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로 다른 지향점이 문제였다. 이때 KEDO 원전사업처장을 맡았던 이 전 사장은 “북한은 경제적인 이익보다 체제 유지가 제일 우선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회자할만한 현장 이야기가 적지 않다. 건설 인력을 제공하겠다던 북한은 약 200명을 투입했던 인부를 100명 선으로 줄였다. 2004년까지 4년간 현장을 총괄했던 이영일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 원장은 “별수 없이 우즈베키스탄 인력을 1000명 가까이 수배해왔다”며 “남한 인사들과의 접촉 영향이 부정적이라고 봤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국 측 근로자가 1면에 김정일 위원장 사진이 실려 있는 북한 로동신문을 본 뒤에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유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반면 당시 국정원 소속으로 KEDO를 담당했던 서훈 전 국정원장이 현장에 등장했을 땐 선망의 눈길을 받았다고 한다. 이 전 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과 찍은 사진 뒤에 서 전 원장이 찍혔었다”며 “여성 종업원들이 유명한 사람이냐고 묻고는 했다”고 전했다.

‘평화’를 목표로 했던 이 사업은 결국 06년 종료를 선언하며 실패로 끝맺었다. 이 원장에 따르면 당시 공정률은 33.6%에 그쳤다. 이 전 사장은 “지나고 보니 강릉 잠수함 사건 등도 있었지만, 끝까지 가기에는 힘들었던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미완에 그친 발전자회사 분리

같은 시기, 대내적으로는 외환위기 여파로 ‘공공기관 민영화’ 바람이 불었다. 발전과 송·배전까지 모든 전력 산업을 아우르던 공기업 한전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전 덩치가 너무 커졌다는 판단과 영국을 필두로 전력 산업을 민영화하는 국가들이 등장했다는 점이 기화였다. 정부는 99년 1월 전력사업구조개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법 통과 이후인 2001년 초부터 분리 작업에 속도를 냈다. 한전의 발전 부문은 같은 해 4월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자회사로 분리된다. 전기위원회와 전력거래소도 이때 만들어졌다. 민영화의 밑작업이다. 당시 업무 담당이던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은 “이후 송·배전 분야도 민영화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노무현정부가 들어오면서 멈춰 섰다. 김 전 2차관은 “대통령 인수위원회로 파견을 갔는데, 경쟁과 효율보단 형평성을 더 중시한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봤을 때 민영화와 정부 관리 사이에 정답은 없다는 게 김 전 2차관의 판단이다. 다만 장단은 존재한다. 민영화할 경우 적정 전기요금이 적용된다. 연료가 비쌀 때는 비싼 전기, 반대는 싼 전기를 쓰는 구조다. 반면 정부 주도 시에는 전기요금은 빚을 내서라도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연료가 싸도 가격이 안 떨어지는 게 흠이다. 그 대신 정전 가능성은 줄어든다.

어느 쪽이 옳은지의 문제는 20여년 후인 2026년까지 넘어왔다. 이재명정부 들어 발전 자회사 통폐합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 전 2차관은 “어느 방향이든 전기요금이 미래 부담으로 전가되는 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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