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도 무시한 에너지 전쟁이 시작됐다
2026.04.22 06:57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괴하겠다고 한 ‘문명’은 곧 ‘에너지 인프라’다. 이번 전쟁은 익숙한 ‘에너지 무기화’ 공식을 넘어서는 몇 가지 특이점을 보였다. 국제법이 보호하는 에너지 관련 인프라와 시설이 전쟁 도구가 되는 전례 없는 양상이 펼쳐졌다. 물론 여기에는 고전적인 전략도 혼재되어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가 대표적인 예다.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공동 공습을 감행하자 이란은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약 20%가 매일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폐쇄하면서 글로벌 에너지·경제 위기를 야기했다. 분쟁 발생 후 브렌트유는 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도 63%가량 급등했다. 석유의 98%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필리핀은 세계 최초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호르무즈 해협 폐쇄에 따른 에너지 공급 차질이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두 합친 것보다 심각한,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안보 위기’라고 경고했다.
제이슨 보르도프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정책 센터 설립소장과 메건 L. 오설리번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국제관계 석좌교수는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 4월 기고문에서 ‘에너지 무기화’는 처음 보는 풍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1973년, OPEC(오펙) 아랍 회원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미국 휘발유 가격이 300%가량 폭등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한 측근은 ‘에너지 진주만 공격’이라는 말로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석유 통제는 승자 없는 치킨 게임으로 이어졌고 1974년 IEA가 창설되는 계기가 됐다. 각 나라가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것은 비싸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은 점차 서로의 자원에 의존해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그 공급망 위에서 각국은 나름대로 ‘에너지 안보’를 지켜나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안정기에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정학적 위협이 고조되고, 강대국 간 경쟁과 전력 소비가 많은 인공지능 분야의 주도권 경쟁, 기후변화와 높은 에너지 요금(제이슨 보르도프·메건 L. 오설리번)” 등은 에너지 시장에 경제적 분열을 초래했다.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대륙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대폭 삭감했다.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중국은 배터리·군사 장비에 필수인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수출을 제한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이란에서 석유를 구매하는 국가들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검토했다. 에너지를 통제해 경제적 고통을 가하는 ‘에너지 무기화 시대’가 귀환한 것이다.
전쟁의 금기, 원전까지 위협
이런 고전적인 에너지 공급 무기화는 그나마 당사국 간 협상을 통해 회복이 가능한 편이다. 휴전 협상이 원만히 이루어진다면 그 즉시 석유와 LNG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전 세계로 운반될 수 있다. 누적된 경제적 충격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긍정적 신호’만으로도 시장 정상화에 속도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공격은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이 된다. 예컨대 원자력발전소 같은, 국제법이 보호하고 있는 ‘위험한 힘을 내포하는 시설물(제네바 협약 제1추가의정서)’에 대한 타격이 그런 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3월17일부터 4월4일까지 이란의 유일한 민간 상업 원자력발전소인 부셰르 원전 부지와 주변 시설을 반복 타격하면서 국제법 및 IEA 지침이 정한 ‘전쟁의 금기’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다. 이에 러시아는 자국 기술자 198명을 대피시켰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 안전의 최종 한계선(Reddest line)을 넘을 위험이 있다”라며,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실질적 위험이 목전에 도달했음을 경고했다.
유사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2025년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의 나탄즈·포르도 핵농축 시설을 타격했다. 하지만 이곳들은 부셰르 원전처럼 전기를 만드는 곳이 아닌,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60%까지 농축하는 시설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제거하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명분이 적용됐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던 사건과도 비교된다. 두 사례 모두 핵 안전 규범을 위협하는 행위이지만 차이도 있다. 러시아는 지상군을 원전 내부에 투입해 군사 점령한 다음, 원전의 운영권을 강탈하고 내부에 군을 주둔시켜 원자력발전소를 ‘핵 인질’로 만들었다. 반면 이번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원거리 정밀 공격으로 부셰르 원전 부지와 주변 보조 시설을 직접, 반복 타격했다. ‘점령’과 ‘타격’은 성격이 다르다.
금기를 넘어설 때 대가는 혹독하다. 만약 부셰르 원전이 타격되거나 미사일 오발, 파편에 의한 손상 등으로 방사능이 유출된다면 그 피해는 이란을 포함한 걸프 지역 국민의 고통스러운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당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핵물질 수 톤이 보관된 부셰르 원전 시설이 직접 타격될 경우, 대량의 방사능 유출로 이란 국경 너머 수백㎞까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 외 국가까지 대피 명령을 내리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요오드를 투여하며 식량 공급을 제한해야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게다가 식수까지 위협받는다. 물속에 상당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되면 해수담수화가 불가능하다. 걸프 국가 대부분은 지하수가 부족해 해수담수화 시설에 의존하는데 이들 시설은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알자지라〉(3월9일)가 아델 샤디드 이스라엘 문제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이란 국민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봉기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배경에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의도와 반대로 도리어 사회를 단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란 및 중동 분야 연구자인 알리레자 나데르가 〈포린 어페어〉(4월7일)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트럼프는 이란뿐만 아니라 이란인들을 공격하고 있다(Trump Is Attacking Iranians, Not Just Iran)’이다. 이 글에 따르면 이란 정권을 지지하지 않던 이란인들마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란 정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시스템들을 이용해야 하는 ‘이란인’을 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테헤란 주변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도시에 더욱 심각한 오염이 확산됐고, 연료 배급제를 초래했으며, 수백만 명의 테헤란 주민들에게 절망에 갇힌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모든 지옥이 이란에 쏟아질 것’ ‘화요일은 이란에서 발전소와 다리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날이 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SNS에 올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며, 이제 “그의 진정한 의도는 더 이상 이슬람 공화국과 싸우거나, 군사력을 약화시키거나, 정권을 교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알리레자 나데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이란 시민들은 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인간 사슬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교량을 폭격하겠다고 밝힌 4월8일 최후통첩 시간이 임박해오자 시민 수백 명이 전국의 발전소들을 에워싸며 인간 사슬을 만들어 시위를 열었다. 이란 주민들은 분노와 공포 속에서 ‘이 전쟁이 이란 국민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왜 평범한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는 에너지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가?’라고 물었다.
전쟁범죄에 앞장서는 세계 경찰의 추락
이번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패권국의 대통령이 ‘전쟁범죄’를 앞장서 저지르며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전쟁으로도 역사에 남을 예정이다. 트럼프는 민간인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정부를 압박하는 ‘민간인 강압 전략(Civilian Coercion Strategy)’의 일환으로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 폭격을 거친 언어로 예고하고 때로는 실행했다. 발전소, 해수담수화 시설, 유정, 도로, 다리 등은 모두 민간인의 생존을 위한 시설이다. 민간 시설이라도 군사 목적에 사용되어 군사 목표물로 전환됐을 경우에는 보호 지위를 잃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민간인은 공격 목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발전소를 공격하는 명분으로 ‘이중 용도’를 주장한다. 현대 전력망은 민간뿐 아니라 군 레이더·미사일 방어 시스템·군 지휘통제망에도 전력을 공급하기에, 발전소 역시 군사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비례성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민간의 인적·물적 피해가 공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익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현대전은 고도화된 전력 무기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시설은 전쟁 상대국의 급소이자, 쉽게 공격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4월6일, 법률·안보 관련 온라인 저널 〈저스트 시큐리티〉에 미 공군 중령으로 퇴역한 레이철 밴랜딩엄 미국군사사법연구소 소장이 ‘최고 사령관(트럼프)의 위험한 발언이 우리 군인들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기고한 글이 공개됐다. 그는 “베트남전쟁의 만행 이후 미군은 전쟁법 준수에 대한 의지를 강화하며 이를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인도법 준수를 거부해 미국의 정당성과 국제적 위상을 훼손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란 문명을 파괴하라는 트럼프의 명령을 따른다면 군인들은 심각한 도덕적·정신적 상처를 받게 되므로 법을 준수해서 명예롭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발전소 공격 시 피해 대응 지침은 미 국방부 전쟁법 매뉴얼에도 명시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미국 정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요구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4월6일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트럼프에게 ‘대통령의 정신 건강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의견을 묻기도 했다. 〈뉴욕타임스〉(4월5일) 보도에 따르면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군법 변호사들을 해고하고, 다른 부서로 전보시키고, 민간인 관련 시설에 대한 표적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사무실을 해체”했다.
생존에 직결되는 에너지 시설은 민간인에게 광범위한 고통을 안길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레바논, 파키스탄과 아프간 같은 국제분쟁 지역을 포함해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중국과 타이완 등은 미국이 새롭게 써 내려가는 ‘전쟁의 규칙’을 주시 중이다. 트럼프 정권이 세계 전쟁사에서 ‘예외’로 기록될지, 새로운 ‘표준’으로 기록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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