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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입담 좋은’ ‘칭찬대장’ ‘잘 생긴’...‘교인 바보’ 목사가 적은 120명의 특별한 부고

2026.04.22 06:01

순천 대대교회 공학섭 원로목사, 세상 떠난 교인의 삶 정리한 ‘하늘에 새겨진 이름들’ 펴내
순천만 대대교회 전경. /공학섭 목사 페이스북

지난주 ‘귀한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하늘에 새겨진 이름들’(도서출판 토라)이라는 책입니다. 전남 순천 대대교회 공학섭 원로목사가 세상을 떠난 교인 120명의 삶을 정리한 책입니다. 4년 전 ‘오마이갓’을 통해 공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기억의 공간’이란 코너를 만들어 돌아가신 교인들의 사연을 정리하는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공 목사는 작년 말 담임목사직에서 정년 퇴임하면서 그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공 목사는 ‘마을 바보’를 자처한 분입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순천만 옆 대대마을의 꽃과 나무, 석양 등 자연 풍경은 물론 골목길과 버스 정류장 사진까지 그득합니다. 그의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니 그는 ‘교인 바보’이기도 했네요.

책에선 공 목사의 교인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차만 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접하기를 즐겨하신 김흥예 권사님’ ‘입담 좋은 서평엽 권사님’ ‘느린 걸음이지만 멈추지 않았던 김응기 집사님’ ‘예상을 깨고 주 앞에 나온 김순엽 집사님’ ‘칭찬 대장 진희정 집사님’ ‘항상 웃는 미녀 허봉애 집사님’ ‘KBS 노래자랑에 나간 마음전 집사님’ ’잘생긴 이화춘 성도님’…

어찌 흠 없는 인생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는 교인들의 삶 가운데 본받을 만한 점, 장점을 찾아내 1인당 200자 원고지 7~8매 분량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책은 ‘칭찬의 전당’입니다. 교인들 이름 옆에는 생몰 연대가 적혀 있는데 무려 32명이 90세 이상 장수한 분들이더군요. 믿음이 좋은 분들이라 장수한 것일까요.

대대교회 공학섭 원로목사가 지난 4월 11일 은퇴식 후 가족과 기념촬영했다. /본인 제공

공 목사가 교인들의 부고를 이렇게 정리하게 된 것은 뉴욕타임스의 특별판이 계기가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5월 24일 코로나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서자 일요일 자 1면에 희생자 1000명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늘 웃어주던 ○○○’ ‘우리 집의 반항아 ○○○’ 식으로 짧으면서도 고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식을 붙였답니다.

공 목사는 1988년 담임목사로 부임해 작년 말까지 38년 동안 시무하면서 교인 140명 임종을 지켰고, 장례를 집전했습니다. 그에게 뉴욕타임스 기사는 남다르게 다가왔고, 성도들의 흔적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심방이 줄었고, 공 목사는 그 시간을 아껴 글을 정리했습니다.

공학섭 목사가 세상 떠난 교인 120명의 삶을 정리한 책 '하늘에 새겨진 이름들' 표지.

책엔 소위 ‘상투적 표현’은 거의 없습니다. 직접 겪은 고인에 얽힌 추억과 공 목사가 주변을 ‘취재’해 수집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에피소드가 넘쳐납니다.

가령 ‘큰손을 가진 여장부 반잔옥 권사님’에는 항상 손해 보는 쪽을 택하고 명절 때면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셨던 고인을 추억하며 “권사님이 떠나시고 나니, 정월 대보름도, 동짓날도 예전 같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논 팔아 예배당 지은 김재철 장로님’에선 “마을 사람들은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김재철 장로는 논을 팔았다네, 땡’ 하며 빈정거렸다”는 에피소드를 적었습니다.

공학섭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순천만 풍경 사진.

<보람, 기쁨, 고마움>

목회자로서 보람, 신앙의 기쁨, 그리고 고마움을 적은 부분이 가장 많습니다.

이런 내용이지요. 김덕심 권사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부부는 교회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럴 때 김덕심 권사님이 계셨더라면 춤추며 기뻐하셨을 텐데…’라며 습관처럼 말한다”고 회고하고, 당회록에 남은 김영호 장로님의 한문체 글씨를 보면서 “명필 중의 명필”이라고 감탄합니다. 또 문득 “어깨를 들썩이며 부르시던 구성진 판소리 가락이 문득 그리워진다”며 서정인 장로님을 그리워하고 조성귀 장로님에 대해선 “68세 때 전국 장로연합회 수양회에서 즉석에서 로마서를 암송하신 분”으로 칭송합니다. 김형태 장로님에 대해선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던 시절 마을 골목길 확장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조율”하던 리더십을 회고합니다.

그 밖에도 “지팡이는 효자보다 낫다” 등 귀에 착착 감기는 표현을 구사한 서평엽 권사님, “메이커 있는 대대교회를 두고 왜 시내로 가느냐”며 교회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신 김옥순 집사님. 김 집사님은 골반이 상하는 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불치’ 진단을 받았는데 ‘죽더라도 예배드리다가 죽자’는 마음으로 목발 짚고 교회당에 출석했답니다. 어느 날부터 목발 두 개가 하나가 되고, 다음엔 지팡이, 그마저도 내려놓게 됐다고 하지요. 그래서 천국 가시기까지 두 발로 걷는 은혜를 누렸다고 합니다.

서울 딸집에 다녀오실 때마다 과자를 선물하시며 “서울 과자인데 맛이 좋아서 목사님 생각이 나서 사 왔어요”라고 하시던 조길엽 집사님. 그 과자는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평범한 과자였지만 목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하네요.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영산홍 나무가 있던 집에 사신” 조복남 집사님, 103세로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면회에서 산소 마스크 너머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남긴 박애심 집사님 이야기도 실제 경험이 아니면 적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설을 앞둔 대목 장날, 인파가 북적이는 시장 한가운데 계셔도 얼른 눈에 띌 만큼 돋보이셨다.”(항상 웃는 미녀 허봉애 집사님) 같은 표현은 고인이 읽는다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순천만 대대마을의 버스 정류장 풍경. /공학섭 목사 페이스북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부분도 많습니다.

박화봉 성도님은 ‘중매의 달인’이었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뒤로는 중매 성과가 부진해졌답니다. 왜냐하면 중매란 ‘흠’도 적당히 미화해서 소개해야 성사되는 법인데 신앙을 가진 후로는 ‘하얀 거짓말’조차 용납할 수 없게 되면서 중매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김흥예 권사님에 대해선 ‘이불 속 아이스크림’ 에피소드를 꺼냅니다. 구역 모임에 방문하는 목사님과 신도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가 ‘너무 차가울까 봐’ 이불 속에 넣어두는 바람에 다 녹아버렸다는 이야기이지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신앙을 갖기로 한 서본엽 성도님 사연도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할머니가 교리 공부를 마치고 마지막 문답을 앞두고 있었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며느리가 “목사님이 ‘예수님이 왜 죽으셨느냐’고 묻거든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대답하세요”라고 모범 답안을 알려주자 할머니는 정색을 했다지요. “뭐라고? 예수가 뭣 때문에 나를 위해 죽었다냐?”라고요. 버스 안이 웃음바다가 됐답니다.

<전도하기 어려운 분>

전도가 어렵기는 시골 교회도 마찬가지이지요. 열심히 설득하면 ‘모내기 마치면 나가겠다’고 한답니다. 그렇지만 모내기는커녕 추수 이후에도, 열 번 넘게 모내기철이 지나도 끝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랍니다.

그는 ‘스스로 잘 살아온 분들이 전도하기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합니다.

“남을 해코지한 일도 없고, 이웃의 재산을 탐한 적도 없는데,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으라 하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 “흔히 똑똑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온 분들은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한다. 지나친 자신감이 신앙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란 얘기죠. 또 ‘우리나라에서 예수 믿기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종갓집 맏며느리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교회에 나왔을 때 더욱 기뻤답니다. 또 “○○○가 교회에 나갔다”는 소문에 동네가 깜짝 놀랄 정도의 인물들도 여럿 등장합니다.

심지어 그는 ‘술과 친구였던 교인’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술을 멀리하면서도 하나님께 무관심한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술과 친구면서 예배당에 나오고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불편한 말을 할 때 교회 편을 들어 주셨으니 고맙지 않은가”라는 거지요. “‘교회에서 키우던 토끼에게 자주 풀을 가져다주심으로 자신이 교인임을 조용히 증명하신” 교인에게도 고마워합니다. 토끼풀 가져다준 것이 교인임을 증명한 것이라니 엄청난 이심전심입니다.

그는 “교인 가정이 교회와 가까워야 더 자주 찾아보고 믿음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마을 교회는 교인 몇 명만 남아 있더라도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목회 현장 단상>

“목사는 예수님 다음으로 장로님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대대마을은 공 목사의 고향이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 이곳 교회에 부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텃세를 염려한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장로님들은 물론 성도님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답니다. ‘담임 목사를 예수님 다음으로 여기는’ 정덕업 권사님 같은 분들도 많았고요.

공 목사는 다리가 불편해도 예배에 참석했다나 ‘돌아갈 힘이 없다’는 할머니 성도님을 등에 업어 귀가시켜 드리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즐거움을 다 누리면서 그 위에 예배 하나만 더함이 신자의 보편적 삶이 된’ 세태에 실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심리학 공부를 더했다면 신자들의 개인적 고민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허물을 덮는 것도 아닙니다. ‘막내아들 ○○○님도 더디지만,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 ‘아들도 비록 부족한 면이 있으나 믿음의 대를 이었다’ 등의 표현도 등장합니다.

공 목사님은 “세례 명부를 들여다보면, 감사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함께 밀려온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떠난 자들의 이름 때문이지요. 그는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몹시 민감해지고, 건강을 잃으면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낙심한다. 그러나 믿음을 잃는 일에는 너무 태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교인들의 부음을 정리하면서 3개월 동안 두문불출했다고 합니다. 손목과 어깨 통증까지 생겨서 고생했다지요. 쉬엄쉬엄하면 될 일을 서두른 이유는 “기억력이 멈추게 될까” 걱정돼서랍니다. 저자 후기에 그는 “이 책이 선배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을 배우는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기록해 주는 목사님을 만난 대대교회 교인들은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대대교회 100년 은혜의 이야기' 표지.

공 목사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대대교회의 100년사를 정리해 ‘대대교회 100년-은혜의 이야기’(도서출판 토라)도 펴냈습니다. ‘여명에서 세계 선교까지’라는 부제처럼 시골 교회가 뿌리 내리고 성장하고 뻗어가는 과정을 쉽게 읽히도록 서술했습니다.

공 목사는 은퇴 1년 전 안식년을 얻었습니다. 2024년 말 순천을 떠나 경기 용인으로 이사했습니다. 순천을 떠나던 날 그가 페이스북에 ‘순천을 떠납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여기엔 200건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나같이 멋진 피날레를 축하하고 은퇴 후의 인생을 응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다른 곳에서 살더라도 계속 행복하고 싶다. 내가 누린 행복을 다른 이에게 계속 전해주고 싶어서다”라고 했습니다. 공 목사가 앞으로는 어떤 행복을 전하실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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