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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서울제대로도서전

2026.04.20 20:04

|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2026년 볼로냐 도서전에서 제39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작가 수상자로 영국의 마이클 로젠이 호명됐다. 우리에게는 <곰 사냥을 떠나자>의 글쓴이로 큰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 시, 논픽션, 그림책 글을 골고루 쓰면서 계관시인이 될 정도로 어린이책 작가의 대표 자리에 올라 있는 그에게는 깊은 아픔이 있다. 갓 스물 된 아들 에디가 감기인지 몸이 안 좋다고 침실로 들어가더니 다음날 아침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급성뇌수막염이었다. 그때의 심정은 <내가 가장 슬플 때>라는 그림책에 들어 있다.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일 터이지만, 마이클 로젠은 거기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자기와 같은 일을 겪는 부모가 또 나오지 않도록 뇌수막염 연구소를 세우는 데 앞장선 것이다.

어려서 독일로 이주한 예비 일러스트레이터 민들레씨는 볼로냐 도서전의 한 한국출판사 부스에서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선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낸 그는 자기 책이라며 가슴에 품어 안고 눈물을 떨구었다. <나의 속도>는 앞길이 아득해 주저앉은 자신을 도닥이며 일으켜 세우는 듯하다면서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이금이의 청소년소설 <유진과 유진>은 알려져 있다시피 작가 딸의 어릴 적 일화가 모티프이다. 아빠는 눈에 불을 켠 채 범인을 찾아다녔고, 엄마는 놈이 파출소에 잡혀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단다.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들고 놈을 연성 후려쳤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파리채였더란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파안대소한다. 그래, 그런 것들은 윙윙거리는 성가신 파리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어린이책의 본질이 그래서인지, 이 동네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탄성 좋은 회복력이다. 책 속의 인물이건 현실의 인물이건, 우리는 잘도 다시 일어선다. 상처가 작고 얕아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음을 알고 힘도 없기에 우선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짐 들기 귀찮은 이모가 있는 대로 옷을 껴입히는 바람에 눈사람 같아진 하이디가 땀을 흘리며 뒤뚱뒤뚱 산길을 걸어 올라가듯. 그러다 우리는 때가 되면 화산처럼 폭발한다. 석판이 뚫어질 정도로 길버트의 머리를 내리치는 앤처럼. 현실이 요지부동일 때에는 판타지 안에서 자기 왕국을 세운다. 싸늘한 밤 공원 벤치에 앉아 머나먼 나라의 왕인 아빠를 부르고, 병 속 거인을 따라 아빠의 나라로 가서 왕자가 되는 미오처럼.

그런 뒤 우리는 결국 자신을 치유하고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밝힌다. 삭막한 도시로 끌려가 알프스를 그리워하다 몽유병까지 얻은 하이디는 돌아와 병이 낫고 클라라까지 걷게 만들지 않는가. 앤과 길버트가 결혼해서 아이도 여럿 낳으며 알콩달콩 사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 미오는 머나먼 나라를 위협하는 악의 화신 카토와 목숨 건 결투 끝에 그를 제거하고, 끌려가 돌이 된 아이들까지 되살려내 함께 돌아온다. 그런 이야기 속 아이들이 대견하고, 그런 아이들을 사랑하며 품는 이야기 밖 어른들은 믿음직하다는 것이 이번에 볼로냐에 다녀온 나의 소견이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작은 어린이책 출판사들이 거의 대부분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낙담이 이만저만 아닌데, 어쩔 수가 없다. 힘이 없으니. 하지만 그들은 주저앉지 않고 일어섰다. 일어서서 ‘서울제대로도서전’을 만들었다. 노들섬 작은 공간에 신청하는 모두에게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 좁으면 좁은 대로 복닥거리며 제대로 독자들과 만나 제대로 책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어린 한 시절 눈사람 하이디가, 석판 내리치는 앤이, 머나먼 나라 왕자를 꿈꾸는 미오가 아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모여 벌이는 책잔치는 얼마나 흥겨울 것인가. 낙담은 잠시, 모두 웃고 떠드는 제대로도서전을 기다려본다.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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