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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중동 위기, 아세안 경제 시험대

2026.04.21 19:01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동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아세안(ASEAN) 경제가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번 충격은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에너지, 물류, 금융, 통상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위기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세계은행은 동아시아·태평양 신흥국 성장률이 2025년 4.9%에서 2026년 4.1%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대외충격에 취약한 동남아시아의 경우 유가가 약 30%, 가스 가격이 최대 90% 상승할 경우 다수 아세안 국가에서 물가 상승과 실질소득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역내 성장둔화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글로벌 수요와 중국 경제의 둔화, 지정학적 긴장까지 겹치며 수출동력은 크게 약화되고 있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태국·필리핀·베트남 등 에너지 순수입국은 2025년 5%대 성장에서 금년 4%대로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국들이 유류세 인하와 연료보조금 확대로 단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재정부담이 커지면서 충격 완화에는 역부족이다. 중동 긴장으로 해상운송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운임·보험료가 상승함에 따라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편입된 아세안 경제는 원자재·중간재 조달비용 증가로 수출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충격이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아세안 주요국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민간투자 회복이 더딘 가운데, 제조업 고도화 대신 저부가가치 서비스로의 노동 이동이 확대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조기 탈산업화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의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기술격차 문제가 새로운 제약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이 새로운 성장 기회로 논의되지만 아세안의 AI 활용률은 여전히 낮고 인프라와 인력, 혁신 생태계 부족으로 기술 확산이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논의는 여전히 '위기 대응'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가격을 관리하고 단기 충격을 완화하는 데 집중하는 접근만으로는 반복되는 외부충격을 막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충격 완화를 넘어 구조적 전환을 모색하는 전략이다. 한·아세안 협력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아세안 협력은 생산기지 이전과 노동집약적 제조업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술·인력·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한 협력으로 전환하고, 지역공급망 내에서 현지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일례로 말레이시아 정부가 디지털 인프라 및 첨단산업 투자를 가속화하기 위해 도입한 행정절차 간소화 패스트트랙인 '그린 레인 패스웨이'와 같은 행정 효율화 모델에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역량을 결합한다면 아세안 기업들이 글로벌 가치사슬의 핵심 일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열릴 것이다.

중동 위기는 외부 변수이지만, 그 영향의 크기는 내부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아세안과 한국 모두 이번 위기를 단순한 경기 변수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성장전략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활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번 위기를 단순한 경기 변수가 아닌 성장전략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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