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강남視角] 보수가 이렇게 된 이유
2026.04.21 19:08
미국 독립전쟁 당시인 1775년, 대륙군은 영국 정규군과 치른 벙커힐 전투에서 패했지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급만 충분했다면 이겼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자 대륙회의는 '콘티넨털 화폐'라는 불태환지폐를 찍어냈다. 전쟁물자를 확보하려는 의도였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상인들은 종이돈을 믿지 않았고, 금과 은으로 결제해주는 영국군에 물자를 넘기기까지 했다. 발행액이 급증하자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았다.
궁지에 몰린 대륙회의가 꺼내 든 다음 카드는 가격통제였다. 최고가격에 막힌 생산자들은 더 높은 값을 찾아 상품을 암시장으로 빼돌렸다. 공급은 줄고, 시민과 군대는 생필품을 구하지 못했다. 정직한 거래보다 투기적 거래가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됐고, 채무자들은 화폐 가치가 더 떨어질 때까지 상환을 미뤘다. 경제적 신뢰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결속은 느슨해졌다. 결국 대륙군 총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은 1779년 의회에 "병력을 부양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가장 큰 장애는 통화 상태"라고 토로했다. 어떤 수단으로도 화폐 가치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절망적 판단이었다. 무분별한 통화 발행과 가격통제가 초래한 결과였다. 미국 독립전쟁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패할 뻔했다.
이 사례는 특정 시대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누를 때 반복되는 구조적 실패다. 그럼에도 과거 보수정부는 이 교훈을 외면했다. 우유와 라면, 소주 가격까지 일일이 통제하려 했다. A는 취임 반년 만에 물러났다. 정책은 남았고, 경고는 사라졌다.
지인들에게 '보수를 정의해 달라' 하면 법과 안보, 전통, 자유민주주의 같은 단어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진보라고 해서 법과 안보를 무시하고 전통을 파괴하려 드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장 설득력 있게 보는 보수의 정의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사회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친 유기체이며, 이를 인간의 이성으로 단번에 재설계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살아 움직이는 것의 대표가 바로 가격이다. 가격이 오르면 눌러 죽일 것이 아니라 경쟁과 대체를 통해 풀어야 한다. 이것이 보수의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의 보수는 달랐다. 52개 생필품 가격을 관리한 MB물가, 단말기 보조금 상한을 둔 단통법, 통신요금과 금리 인하 압박까지 개입은 일상이 됐다. 시장을 존중해야 할 보수가 시장을 통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심지어 "정치논리 없는 경제가 가능하냐"는 반문까지 보수 내부에서 나왔다.
보수는 시장과 가격이라는 살아 있는 질서를 존중하는 데서 정당성을 얻는다. 그런데 물가와 금리, 임대료까지 직접 개입하는 순간 이는 단순한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로 바뀐다. 단기 인기에 매달릴수록 보수가 내세워온 자유와 책임, 질서의 원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보수가 처한 위기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다. 자기가 누군지 잊은 채 가격이라는 유기체를 억누르려다 정치적 신뢰를 허물어온 결과다.
그렇다면 반대쪽의 접근은 어떤가. 진보는 가격이 단지 수요와 공급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구조와 힘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그러니 가격 상승이 삶을 위협할 때 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기름값 규제나 세금을 통한 부동산 가격 억제는 이런 시각에서 나온다.
문제는 결과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개입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사례는 적지 않다. 임대차법 이후 임대료 급등, 최저임금 인상 이후 고용 축소, 분양가상한제 이후 공급 위축이 대표적이다.
결국 가격 문제에서는 보수적 접근이 더 나은 결과를 내왔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보수는 그 토양을 스스로 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syhong@fnnews.com 홍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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