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신분증? 필요없어"…약물 오남용 부추기는 창고형 약국
2026.04.21 11:09
'극단적 선택' 시도 약품도 손쉽게 구매
10대 약물중독 환자 5년간 35% 늘어"한두 팩만 빼고 가져가요. 그럼 연락처 따로 안 받을게요."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의 한 창고형 약국. 해외에서 10대가 복용하고 숨졌다는 디펜히드라민 성분의 수면유도제 10팩(100정)을 계산대에 쏟아붓자, 약사는 "원칙적으로 10팩부턴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받고 있긴 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두 팩을 빼겠다고 하자 신분증 확인이나 최소한의 복약 지도 없이 곧바로 결제가 진행됐다. 기호식품을 사는 것과 다름없는 과정이었다.
국내외 10대 사이에서 '약물 과다복용(OD·Overdose) 파티'가 유행처럼 번져 논란인 가운데 별다른 제재 없이 약물을 대량 구매할 수 있는 창고형 약국이 사각지대로 지목되고 있다. 일반 약국처럼 증상에 따라 약사가 의약품을 추천·제안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골라담는 구조인 데다 대량 구매에도 별다른 규제가 없어 약물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의약계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은 전국적으로 30곳 이상, 서울에만 최소 9곳이 들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취재진이 서울 시내 창고형 약국 5곳을 상대로 OD 파티 주요 의약품으로 지목된 수면유도제와 감기약의 대량 구매 가능 여부를 확인한 결과, 모두 신분증 확인 절차나 구매 제한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약국은 "수면유도제는 20~30팩 수준이 아니면 문제없다"고 했고, 또 다른 약국은 "창고에서 물량을 꺼내야 하니 미리 연락하고 오라"고 안내했다.
창고형 약국은 일반 약국보다 최대 30% 저렴한 가격에 약을 판매한다. 저가 공세까지 더해지다 보니 10대 사이에선 눈치 보지 않고 약을 쇼핑할 수 있는 장소로 통한다.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몽롱한 환각 상태를 목적으로 특정 의약품 수십정을 고카페인 음료와 배합해 마시는 제조 레시피까지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기적으로 OD 파티를 벌인다는 A군(18)은 "동네 약국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아 구매가 편하다"고 귀띔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2025년) 의약품 중독 환자는 1만5789명에서 1만5894명으로 0.7%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이 기간 10대 환자는 1619명에서 2185명으로 35.0% 급증했다. 전체 대비 증가세가 50배 넘는 수준이다. 특히 남성 청소년 환자가 295명에서 408명으로 증가할 동안 여성 청소년 환자는 1324명에서 1777명으로 증가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창고형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OD 파티 약물은 대한약사회가 지정한 청소년 주의 일반의약품에 해당한다. 수면유도제에 담긴 디펜히드라민·독시라민 등 성분은 과다 복용할 경우 뇌 신경 전달체계를 마비시켜 섬망이나 환각을 유발한다. 평생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영구 손상을 남기기도 한다. 해열진통제 속 아세트아미노펜은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 시도에 주로 쓰이는 성분으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 밖에도 20여가지 성분이 위험 물질로 분류돼 있다.
치사량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별다른 제재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10대 약물중독은 물론, 사회 전반의 약물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품은 질병 치료를 위해 필요한 순간에만 복용해야 하는데, 창고형 약국은 기호품처럼 대량 구매하게 만드는 구조라 병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청소년 오남용 우려가 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약 먹이는 사회'를 종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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