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야, 내 사주 봐줘" '내 손 안의 AI 점집' 만든 MZ세대
2026.04.21 09:00
저렴한 가격·높은 접근성에 AI 사주 확산
전문가 "재미 수단일 뿐 과몰입 경계해야"경기 이천시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이채원(24)씨는 중요한 선택을 앞둘 때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구글 제미나이에 자신의 사주를 묻는다. 이씨는 "인턴 지원을 두고 고민이 많았을 때 제미나이가 사주를 풀이하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해줬다"며 "사주를 통해 내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아 믿음이 가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사주에 빠진 MZ, 점술 서비스 청년층 일상 문화로
한때 MBTI를 통해 자신을 탐색하던 청년층의 관심이 'AI 사주'로 향하고 있다. 사주와 운세 등 점술 서비스를 즐기고 공유하는 일은 이제 청년층의 일상적인 문화가 됐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4월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주·타로 및 주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점술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대 68.0%, 30대 67.5%로 나타났다. 실제 이용 경험 역시 20대 58.0%, 30대 66.0%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점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다. 과거 이들의 부모 세대가 소위 '용하다'는 철학관과 점집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면, MZ세대는 챗GPT·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와 사주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월 전국의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새해 계획 및 운세 서비스 이용 관련 조사'에서도 AI를 이용한다는 응답은 40.7%에 달했다. 반면 유명 점집을 직접 찾는다는 응답은 18.5%에 그쳤다.
이씨는 "철학관이나 점집은 비용도 부담스럽고 직접 방문하기 번거롭지만, AI는 무료이거나 저렴한 데다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여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해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객관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챗GPT에서 출시한 '운세박사 GPT'는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GPT 스토어 라이프스타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서사로 풀어주니 믿음이 가요"… AI 사주, 청년층 자기 이해 도구로
MZ세대가 AI 사주에 끌리는 이유는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MBTI가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도구였다면, 사주는 인간의 타고난 기질과 관계의 흐름, 오행 중 부족한 요소, 앞으로의 방향을 긴 서사로 풀어낸다. 특히 생성형 AI는 질문을 거듭할수록 더 길고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운세풀이를 넘어 '나에 대한 해설'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전문가는 이 같은 흐름을 외부의 언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청년층의 경향과 연결지어 설명했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혈액형, MBTI, 사주와 같이 '나를 설명해주는 외부의 언어'를 찾는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돼 왔다"며 "청년 세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감각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타인의 의견 등 외부의 판단을 참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용자들도 AI 사주를 자기 이해의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유은빈(23)씨는 "사주 풀이를 읽다 보면 지금까지의 행동과 경험에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며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AI 사주는 나와 내 삶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느껴진다"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내 사주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K팝 팬 사이 '캐릭터 해석' 도구된 사주
AI 사주는 자기 이해를 넘어 타인의 성향과 관계를 해석하는 도구로도 기능한다. 사주가 더 이상 개인의 운세를 점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읽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K팝 팬덤 문화에서 두드러진다. 팬들 사이에서 AI 사주는 단순한 점술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성격과 멤버 간 관계를 읽어내는 이른바 '캐해(캐릭터 해석)'의 도구로 활용된다. 실제로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이돌 멤버의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사주를 분석하거나, 팬 본인과의 궁합을 해석해 공유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특정 멤버를 두고 '불 기운이 강한 타입',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성향'처럼 직접 AI 사주로 멤버를 해석하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런 수요를 반영하듯 유튜브 등 온라인 영상 콘텐츠에서도 사주를 소재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 멤버들의 사주를 AI로 풀이하는 이른바 '덕질 사주' 관련 영상이 팬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팬들은 사주를 통해 멤버별 성향은 물론 멤버 간 궁합과 관계를 해석한다. 사주가 '입덕 필수 정보'가 된 셈이다.
위안과 재미 사이…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AI 사주가 청년들의 상담 창구이자 일상적인 놀이로 기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나 교수는 "혈액형, MBTI, AI를 활용한 사주 모두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자료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자기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서 찾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유행일 수는 있지만, 타당성이 부족한 외부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용자들 역시 재미와 위안 차원에서 사주를 소비하면서도 과도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는 "취업이나 학업처럼 앞날이 불안할 때 사주를 보는 것이 위안이 된다"면서도 "접근이 쉬운 만큼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어 AI 사주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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