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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아래 수백명…학대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2026.04.21 05:02

소년은 자라서 우리가 된다 ① 양육에 이식된 ‘수용’

국내 최대의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서 자란 세 청년
성인 돼 ‘엄마·선생님’에 손배소
5년 만의 1심 선고 ‘일부 승소’

과거 “정부 부랑아 정책 거점”서
‘잘못하면 맞는 것 당연하다’
알고 자란 그들의 질문과 호소
“문제아가 학대받을 이유인가요?”
1심 판결까지만 5년 걸린 아동학대 사건이 있다. 재판 내내 주목받지 못했고 선고 결과는 기사 한줄 나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드물지 않지만 ‘소년’이 자라 ‘우리’가 되기까지 한국 사회 난제들이 이토록 집약된 사건도 드물다. 아동의 몸을 노린 ‘불의한 정치’와 양육에 이식된 ‘수용’의 유전자, 학교와 낙인, 소년재판 시스템과 자립 지원의 사각, 가해와 피해를 보는 시선 등이 ‘판결문 밖’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당 사건과 현재 시설 거주 아동들은 무관함을 밝힙니다.)

눈은 마음보다 솔직했다.

태연한 척 행동했지만 마음의 불안까지 눈동자가 감춰주진 못했다. 혹시라도 마주칠까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채고 눈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앉을 자리를 찾기도 전에 그들이 앉은 자리부터 확인했다.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안도했고, 어떤 얼굴은 보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숨을 골랐다. “이젠 씩씩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재판 기간 줄곧 반복된 일이었다. 몸은 어른이 됐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년의 것이었다.

“오후 2시 선고 진행하겠습니다.”

지난 1월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3단독 유동균 판사가 출석을 확인했다. 원고 안종표(가명·24)와 손영조(가명·25)가 굳은 표정으로 긴장했다. ‘그들’ 피고들은 전원 불출석했다.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인정하고….”

3분 남짓한 선고였다. 그 3분을 듣는 데 5년이 걸렸다. 환호도 없었고 탄식도 없었다. 조용히 일어나 법정을 나갔다.

원고는 3명의 고아 청년이었다. 국내 최대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서울 은평구)에서 자랐다. 2021년 보육사 6명과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아동학대)을 청구했다. 원고 일부 승소였다. 보육사 5명의 학대와 수녀회의 사용자 책임이 인정됐다. 보육사들의 폭행을 “훈육을 넘어선 불법행위”이거나 “동조·묵인”이라고 법원은 판단했다. 아동들을 보호하지 못한 수녀회의 “감독 의무 소홀”은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명백하게 그릇된 조치”라고 봤다. 원고 안종표에겐 1300만원을, 손영조와 법정에 출석하지 못한 백진형(가명·24)에겐 1500만원을 배상(이자 별도)하라고 선고했다.

종표가 재판 결과를 전했을 때 진형은 강원도 홍천의 스키장에 있었다. 겨울철 스키 강사로 일하는 그는 강습 중 소식을 들었다. “엄청 기뻤”지만 수강생들 앞이라 티를 내진 못했다. 그날 진형은 강습이 빌 때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승소를 알리는 종표와의 통화 녹음을 듣고 또 들었다.

이제 와서 왜?

많은 사람이 탓했다. 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중에서도 셋의 소송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소수였다. 피고는 그들의 ‘엄마’였고, ‘형’이었고, ‘선생님’이었다. ‘가족’이기도, ‘집’이기도, ‘학교’이기도 했다.

소송은 질문이자 호소였다. 살면서 잘못은 늘 그들 탓이었다. 잘못했으니 맞는 게 당연하다고, 학대받는 건 ‘내 탓’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문제아’가 학대받을 이유는 아니지 않냐고, 피해자가 될 자격이 따로 있는 거냐고, 그들은 묻고 있었다. ‘공정한 게임’엔 발도 들여놓지 못한 ‘생의 출발’이 ‘이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들의 ‘짧은 평생’은 고스란히 증명했다. 아동·청소년 시기의 일들을 두고 성년이 되자마자 시작한 소송은 그러므로 뒤늦은 것이 아니라 가장 빠른 것이었다.

서울 은평구 백련산 기슭과 아파트·주택 단지 사이에 자리한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의 지난 1일 모습.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버려진 아이

백진형은 2002년 2월 부산 구호병원(현 알로이시오기념병원)에서 태어났다. 병원에 버려졌고 부산 소년의집으로 보내졌다. 이 두 문장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진형이 아는 전부였다. 병원과 ‘집’은 같은 울타리(서구 암남동) 안에 있었다. 모두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했다.

손영조는 2001년 4월 세상에 왔다. 구호병원 아기수첩에 이름과 출생일시가 적혀 있었으나 부모 이름과 주소지는 빈칸이었다. 영조도 살면서 자신의 기원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부산 소년의집으로 보내졌다.

안종표는 2002년 1월생이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여자화장실에 유기됐다. ‘무적자’인 종표는 옛 왕조의 존재하지 않는 도읍에 존재의 뿌리(‘한양’으로 본 창설)를 뒀다.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서울 소년의집(은평구 응암동)으로 보내졌다.

버스 창문마다 아이들이 달라붙어 울었다.

진형과 영조가 6살·7살이던 2008년 초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산 소년의집 아이들이 짐을 챙겨 버스에 탔다. ‘작별’은 매년 반복됐다. 부산과 서울 소년의집엔 자체 학교(공식 인가 교육기관)가 있었다. 각각 1973년과 1975년 ‘소년의집초등학교’가 사립으로 개교했다. 부산에선 ‘소년의집중학교’(1974년)와 ‘소년의집기계공업고등학교’(1976년)도 문을 열었다. 부산 초등학교는 1979년 서울 초등학교로 통합됐다.

이때부터 부산에선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중학교 입학 예정인 서울 아이들은 부산으로 내려갔다. 서울로 전원된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 뒤 부산으로 재전원됐다. 부산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보호종료됐다. 진학 단계마다 거주환경 변화와 관계 단절을 겪었다.

영조도 버스에서 울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버스에 타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부산에 남겨져 외부 초등학교를 다녔”다. 같은 버스 저편에서 진형도 울고 있었다. “서울이 뭔지 몰라 무서웠던” 진형은 “악어 떼가 사는 곳인지 모른다고 상상”했다. “45인승 대형버스 3~4대”(진형) 또는 “4~5대”(영조)가 서울로 출발했다. 버스가 서울 소년의집에 도착했을 때 태어나자마자 병원 화장실에 버려졌던 종표는 ‘그 집’에서 6년째 살고 있었다.

자신이 발견된 장소를 종표는 ‘초록 파일’(아동카드)을 몰래 들춰 보다 알게 됐다. 아이들은 보는 것이 금지된 파일이 어느 날 보육사 책상에 있었다. 진형도 들킬까 가슴을 졸이며 ‘출생의 비밀’을 확인했다. ‘백밀양’. 아동카드에 그 이름이 있었다. 볕이 빽빽한 그 도시와의 관계는 지금도 알지 못했다. 영조가 찾아본 카드엔 “미혼모아”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영조는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원해서 낳았을까. 나는 태어난 것부터 잘못일까.

“이 애비 에미도 없는 놈아.”

아이들은 뜻도 모르는 말로 서로를 놀렸다. 서로의 출생을 두고 농담하고 장난쳤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론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다. 단체로 간 영어마을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이 “고아 새끼”라고 불렀다. ‘부모’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도 고아라고 욕해서” 종표는 “고아가 범죄인 줄” 알았다. 혈연 가족이 없는 그들은 삼촌과 이모의 개념을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진형과 영조가 부산에서 올라오고 2년 뒤 ‘서울시립 소년의집’은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2010년)로 이름을 바꿨다. 그즈음 보육사들이 불빛 없는 ‘은행나무길’(오르막길) 입구에 아이들을 모았다. 한밤중에 한명씩 뛰어올라가도록 시켰다. 언덕 위엔 대운동장(9594㎡)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이름 외치기 전까진 못 내려와.”

‘귀신 체험’이라고 불리던 담력 테스트(아이들은 괴롭힘으로 인식)였다. 진형은 넓고 깜깜한 운동장이 무서웠다.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공포를 키웠다. “과거 이 시설에서 죽은 전쟁고아들이 대운동장에 묻혀 있다는 소문”(영조)이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말들과 섞이며 ‘체험’은 아이들에게 ‘정신적 상해’를 남겼다. 성인이 된 뒤에도 진형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이었다.

소문은 아이들도 정확히 모르는 꿈나무마을의 역사와 닿아 있었다.

마리아수녀회는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던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1930년 미국 출생~1992년 선종)가 1964년 부산에서 창립했다.

“(그곳에선) 폭력으로 불구가 된 아이들도 있고 심지어 죽은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알로이시오 신부 자서전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귀신 체험

그곳은 ‘영화숙’이었다. 재단법인 영화숙은 1960~70년대 부산 지역 최대(형제복지원 사건 이전) ‘부랑아’ 시설이었다. 거리를 떠돈다는 이유로 단속해 영화숙(18살 미만)과 재생원(18살 이상)에 강제수용(부산시 위탁)했다. 부랑아를 잠재적 우범자로 보고 사회에서 치우려는 ‘국가 기획’이었다. 아이들은 하천 개간 등 강제노동에 동원됐고 돼지 먹이와 쥐·개구리·뱀, 흙을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다. 구타·가혹행위와 성폭행이 만연했다. 사망한 주검들은 야산에 암매장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해 2월 영화숙·재생원 수용자 181명의 피해를 인정(지난 2월 법원이 511억원 배상 판결)했다.

영화숙의 참상(1971년 위탁 취소)이 드러나는 데는 알로이시오 신부와 마리아수녀회의 노력이 컸다. 신부는 아이들 ‘구출’을 위해 영화숙의 불법 사실들을 모아 대통령, 국무총리, 내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에게 보냈다. 가톨릭계를 동원해 서명운동을 벌였다. 영화숙 원장과 담판도 지었다. 영화숙에 2만달러어치의 식료품과 의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아이들 300명을 데리고 나왔다. 이 아이들을 인계받아 1970년 4월 수녀회는 부산 소년의집을 시작했다. 진형과 영조의 ‘고향’이었다.

“나는 소년의집 사업을 서울에도 진출시켜 달라는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서울시는 시립아동보호소의 일부 땅을 소년의집 건축을 위해 내놓았다.”(자서전)

신부와 수녀회의 운동은 영화숙이란 ‘문제적 시설’에 맞춰졌다. ‘배후’이자 ‘실체’인 부산시·정부와는 협력했다. “부산 소년의집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서울시장이 공무원을 내려보냈다. 시설을 둘러본 뒤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운영을 부탁했다.

“정부 부랑아 단속 정책을 집행하는 핵심 거점.”(지난해 4월22일 진실화해위 결정문)

시립아동보호소는 서울시가 1958년 개소한 전국 최대(1953~1975년 ‘접수’ 아동 12만명)의 부랑아 시설이었다. 부산 영화숙과 형제복지원, 경기 안산 선감원, 전남 목포 감화원 등 “전국으로 아동을 분산·전원하는 중간 경유지”였다. 보호자 동의 없는 단속과 법정 정원 2~3배의 과밀 수용, 위계에 따른 아동 간 폭력과 성적 피해, 직원들의 폭행과 묵인·방임 등이 확인됐다. 현재 국가·서울시를 상대로 피해자·유가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도 민간 위탁에서 ‘출구 전략’을 찾았다. ‘보호소 비리’가 잇따라 터지자 부산에서 ‘성공’한 마리아수녀회를 주목했다. 1차로 800명의 남자아이들을 인수한 수녀회가 1975년 1월 보호소 부지에 서울 소년의집을 열었다. 훗날 종표의 집이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큰딸 박근혜가 개원식에서 축사했다. 이튿날 박정희는 알로이시오 신부를 만찬에 초대했다. 동석한 서울시장이 보호소의 남은 시설과 아동 1200여명을 모두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2천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한지붕 밑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서울 소년의집에는 날마다 거리에서 단속된 남녀 아이들이 10~20명씩 들어왔다.”(자서전)

1차 800명은 장기보호 아동이었던 반면 2차 1200명은 전국으로 분산 전 잠시 대기하는 아동들이었다. 이 아이들까지 넘겨받는 순간 마리아수녀회는 ‘정부 단속행정의 민간 조력자’가 됐다. 전국 최대 아동시설 운영단체로도 발돋움했다. 수녀회의 급성장은 “사업의 도덕적 정당성이 유신정권의 사회정책과 긴밀히 맞물리게 되었음을 의미”(김일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했고, 성직자의 종교적 권위와 헌신은 역설적으로 국가의 “부랑아 수용 정책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가 됐다. 신부에겐 그해 국민훈장 동백장과 이듬해 ‘5·16 민족상 교육부문상’이 수여됐다.

출발부터 전국 최대.

“수녀회가 아동보호소를 (서울시 직영 시절보다 나은 환경으로) 변화시킨 것만큼이나 아동보호소 위탁 역시 수녀회의 모습을 변화”(김일환)시켰다.

서울시는 2002년 1050명, 2009년 850명(당시 시내 양육시설들은 30~150명), 2011년 690명으로 정원을 줄였다. 2018년 443명, 2019년 288명으로 거주 인원이 감소했으나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았다. 2020년 이전(2019년 12월 수녀회 위탁 종료) 꿈나무마을에서 발생한 사건 대부분의 뿌리엔 이 ‘전국 최대’(엔젤스헤이븐이 운영 중인 2026년 2월 현재 140여명)가 있었다. 진형, 영조, 종표가 겪은 아동학대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공산당과 투명인간

“동물의 왕국”.

꿈나무마을에서의 어린 시절을 종표와 영조는 이 말로 요약했다. “수녀님과 선생님 수가 제한돼 있으니 아이들은 사랑받길 갈구하며 서로의 잘못을 일러바쳤”다.

“시설화된 돌봄의 딜레마”(김일환)였다.

국내 아동복지시설 보육사 배치 기준(아동복지법 시행령)은 0~2살 2명당 1명, 3~6살 5명당 1명, 7살 이상은 7명당 1명이었다. 2016년 꿈나무마을 초록꿈터(남아 시설)에선 생활실(22개)별로 1명의 보육사(2명이 맞교대)가 10~12명의 아이들을 돌봤다. “종사자 법정 기준 미충족”과 “과도한 케어 부담으로 인권침해 가능성”(2017년 서울시 ‘꿈나무마을 운영 개선 마스터플랜’)이 거듭 제기됐다.

‘제한된 사랑’엔 편애 시비가 따라다녔다. 사랑은 “혜택”이었다.

한때는 영조도 ‘예쁜 아이’였다. 부산에서 전원된 직후 “물어보고 배우려는 의욕이 강하다”(상담기록)고 칭찬받았다. “운동을 잘하며 형으로서 동생들을 잘 챙겼”다. 영조는 “혜택을 입었”다. 보육사가 퇴근길에 데리고 나가 피자를 사주거나 영화를 보여줬다. 영조처럼 “시설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예쁜 아이에겐 보통 청소 당번을 빼주거나 ‘좋은 후원자’를 연결”(종표)해줬다. “제게도 외출시켜줄 후원자가 생기게 해달라고 밤마다 기도”했던 진형은 “이쁨받는 아이들이 싫었”다. “편애하는 선생님들이 미워 말 안 듣는 아이가 됐”다.

‘전국 최대’는 갈등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종사자들도 압박했다. “아동의 자기결정권 존중보다 관리와 통제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2016년 서울시 ‘꿈나무마을 생활아동 복지증진 및 기능 다각화 방안’)였다.

“천당”에 있던 영조는 10살쯤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졌”다. 친구랑 싸운 뒤 “문제아가 됐고 모든 혜택이 끊겼”다. “생활실 선생님이 문자 그대로 하루 종일 엎드려뻗쳐를 시키거나 무릎 꿇고 앉아 있게 했”다. 멕시코, 페루, 과테말라, 룩셈부르크…. 종일 꿇어앉아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외웠다. 영조는 지금도 나라 이름과 국기 맞추기 게임에서 지는 일이 없다.

진형은 ‘투명인간’이었다.

2011년(9살) 호세아반 아이들은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ㅇ(피고 1)과 ㅂ(피고 2)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들은 테이블 가까운 자리에 앉아 ‘민주주의’가 됐고 싫어하는 아이들은 ‘공산주의’가 돼 먼 자리에 앉았”(진형)다. 공산주의보다 더 싫은 아이들은 투명인간으로 분류됐다. “민주주의는 말할 권리가 있었지만 공산주의와 투명인간은 말하면 안 됐”(당시 같은 반 A)다. ‘투명인간 진형’은 보육사가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투명인간들은 밥도 화장실에서 먹었고 애들이 용변을 보러 들어와도 같이 있어야 했”다.(ㅇ 재판 서면 “아무런 증거 없는 일방 주장”, ㅂ “한번도 학대한 사실 없다”)

청년이 된 지금도 종표는 쑥국을 먹지 못했다.

2010년 말셀리노반이었던 그(8살)는 “먹기 싫은 쑥국을 억지로 먹다가 토했”다. “바닥에 토한 걸 ㅅ(피고 3) 선생님이 그릇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입을 벌리지 않자 강제로 밀어넣었”다. 쓸기 당번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바닥에서 쓸어 모은 쓰레기를 종표가 먹고 있던 “라면에 부었”다. 같은 반 아이는 이가 깨졌다. “공부 시간에 떠든다며 (ㅅ이)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는데 얼굴이 날아가서 싱크대에 부딪혔”(당사자 B)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빨 없이 지냈”다.(ㅅ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더 잘해주려 했다는 연민의 감정이 기억날 뿐 주장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반’에 들어가자마자 영조는 “빠따”를 맞았다.

2016년 초 안토니오반이던 영조(15살)에게 “담당 수녀님이 정규성(가명) 형 반에 갔다 오라”고 했다. 보육사 “규성이 형”은 꿈나무마을 출신 선배였고 영조보다 5살 많았다. “수녀님과 미리 이야기가 돼 있던 것처럼 들어가자마자 형이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엉덩이를 때렸”다. 아이들이 ‘빼빼로’라 부르던 쇠막대기로 맞았다.

당시 꿈나무마을에선 중학생이 돼 감당하기 힘들어진 아이들을 ‘형방’ 또는 ‘언니방’으로 보내곤 했다.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연령대 아이의 양육에 힘들어하던 선생님들이 가장 빠르게 훈육하는 방법으로 나이가 많은 선배들 생활실로 보내거나 졸업생 선생님이 있는 방으로 보냈”(상담사 김화진(가명) 재판 증언)다. “형을 무서워하는 심리를 선생님들이 이용”(당시 ‘규성 형 방’에서 생활한 C)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꿈나무마을 초록꿈터의 전경. 남자 아동·청소년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폭행은 교육적 목적”

반이 달랐던 진형과 종표가 2015년(중 2) 초 같은 생활실에서 만났다.

새로 생긴 ‘요한반’이었다. “꼴통들만 모은 반”(종표)이라고 아이들은 인식(수녀회 “서울시 ‘생활실 밀집도 해소’ 권고에 따라 신설한 것으로 차별 목적 아니다”)했다. 양기태(가명·피고 4)는 그해 5월 요한반 생활지도원으로 채용됐다. “키 180㎝ 이상에 몸무게 100㎏은 돼 보이는 거구”였다. ㄱ(피고 5)과 교대로 근무했다.

“출근 첫날부터 공포는 시작”(진형)됐다. 앉아서 공부하라는 ㄱ의 말에 진형이 싫다며 대들자 양기태가 머리채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잡고 흔들 때마다 뇌가 흔들리고 피가 쏠렸”다. “진형이 방에서 나왔을 땐 머리카락이 한움큼 빠져 있었”(종표)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쇠가 붙은 작업화”로 정강이를 차거나 주먹으로 명치와 복부, 갈비뼈 등을 가격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종표도 그 신발의 위력을 알았다. 학교 예배를 빠지고 피시방에 있다 돌아온 날 “조인트를 까였”다. 양기태가 이층침대에 몸을 거꾸로 늘어뜨리게 한 뒤 갈비뼈를 찼다. 권투 글러브를 끼고 때리거나 글러브가 없을 땐 맨손에 수건을 감고 때렸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진짜 부모라면 이럴까.” 종표는 맞을 때마다 억울했다.

요한반 아이들 대부분 비슷한 학대를 당했다. 양기태는 자신이 지정한 특성화고 대신 다른 학교에 합격했다고 때리기도 했다. ‘신고하면 조폭 친구 부른다’며 위협했다.(양기태 “형사재판 유죄(2017년 9월) 내용 외에는 폭행하지 않았고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

진형과 종표는 ㄱ을 “양기태만큼이나 나쁘다”고 여겼다. 폭행과 학대를 알면서도 신고하는 대신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양기태에게 “고자질해서 학대를 부추겼다”며 원망했다.(ㄱ “고자질한 사실 없고 절차대로 인수인계한 것”)

2016년 초 초록꿈터 2층에선 ‘마리요셉반’이 신설됐다. ‘공인된 문제아반’(수녀회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동들이 완력을 행사할 때 수녀와 여자 보육사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웠고, 다른 아동들에게도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어 분반 필요성 대두”)이었다. 영조가 빼빼로로 맞았던 ‘규성 형 방’이기도 했다.

정규성(피고 6)은 부산 소년의집에서 서울로 전원한 2003년부터 꿈나무마을에서 자랐다. “사랑을 받고 싶어 공부, 기도 등 모든 것을 열심히 하여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시설) 추천으로 서울 소재 국제중학교에 입학”(재판 서면)했다. 대학 입학 뒤 1학기만 다니다 재수를 결심한 그에게 원장 수녀가 ‘재수할 동안 시설에서 지내게 해줄 테니 마리요셉반 지도교사를 맡아달라’(2016년 9월 검찰 신문조서)고 했다. “애들이 너무 막 나가고 사고를 많이 치니까 형으로서 분위기 잡아주고 도와달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도 부탁을 하셔서 하게 됐”(같은 해 6월 경찰 신문조서)다.

보육사로 일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했지만 정규성은 무자격이었다. 수녀회(피고 7)가 조리원으로 채용했다.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후배들에게 잘하는 친구”(당시 초록꿈터 사무국장)였던 그에게 마리요셉반 동생들은 “일주일에 두세번은 무조건 단체기합을 받았”(C)다.

영조는 특히 많이 맞았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활실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봉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10회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폭행”(검찰)했다. “가출했다는 이유로 엉덩이와 팔 부위를 역기 샤프트로 때려 우측 팔에 미세 골절상을 가하였”다. “영조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 배에 니킥을 꽂는 것”도 목격(C)됐다.

정규성은 스스로를 “중학생의 고충을 잘 이해”하는 “시설 선배”(재판 서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영조는 “일진 무리에 끼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생활실에 늦게 들어오는 문제아”였다. “폭행은 교육적 목적에서 필요한 업무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체벌로서 사회상규에 비추어 정당행위”였다.

시립아동보호소 시절 최고 2328명(1966년)까지 인원이 치솟았다. 만성적 과밀 수용 상태(정원 1천명)였던 보호소는 아동 중에서 ‘통장’과 ‘실장’을 뽑아 통제했다. ‘부랑아 수용 시대’의 흔적은 ‘양육과 돌봄의 시대’에도 말끔히 지워지지 않았다. 10년 전 꿈나무마을에선 그 역할을 ‘형’이 대신했다. (2회 ‘밖이 알려준 것’에서 계속)

※기사는 재판 판결문, 원고와 피고 쪽 준비서면, 피고들 징계·형사처벌 기록과 원고 청구에 대한 입장, 아동 상담기록과 경찰 진술서, 서울시 등 기관 보고서와 조사자료,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 법정 취재와 개별 인터뷰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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