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정동영 기밀 유출 주장은 잘못”…논란 커지자 직접 진화 나서
2026.04.20 22:16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며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최근 주한미군이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에 핵시설이 있다고 한 정 장관의 발언을 이유로 한국군과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자 직접 조기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인도를 국빈 방문하고 있는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엑스(X)에 “정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이전에 구성시의 핵시설 존재 사실은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말했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낮 정부서울청사에서 몇몇 기자들의 질문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명한 것을 정보 유출로 모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답했는데, 이 대통령이 ‘엑스 게시글’을 통해 정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날 “정동영 리스크가 초래한 역대급 외교·안보 대참사”라며 정 장관 즉각 경질을 촉구한 데 대한 ‘거부 답변’의 성격도 지닌 듯하다.
특히 이 대통령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강한 톤으로 언급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보 유출’의 당사자는 정동영 장관이 아니라, 지난 17일 이후 ‘정 장관의 구성시 핵시설 발언 탓에 미국이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부 관계자”나 “여권 관계자”라는 취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선 ‘정동영 책임론’을 제기한 “정부 관계자”나 “여권 관계자”를 겨냥한 내부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정 장관은 자신의 ‘구성 핵시설’ 발언은 지난해 7월14일 장관 인사청문회 때부터 가끔 해오던 얘기라며 “그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아홉달이 지나서 느닷없이 이 문제를 들고나온 저의가 의심스럽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당시 “지금 이 시간에도 북의 핵시설은 가동되고 있다”며 “영변에 한군데 더 짓고 있다. 구성, 강선에 있다. 빨리 대화를 통해서 멈추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달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같은 달 2일 이사회 보고 발언을 들며 “(북한) 영변과 구성, 강선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자신의 ‘구성 핵시설’ 발언은 2016년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를 시작으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여러 연구소 보고서의 “공개 정보를 사용해 정책을 설명한 것이다. 당시 한국방송(KBS)을 비롯해 많은 언론이 보도했다”며 “정보 유출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해 7월25일 장관 취임 이후 국내외 관계 정보기관으로부터 핵시설 관련 정보 보고를 일체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모든 것을 국익 중심으로 판단해주셨으면 한다. 중동 전쟁으로 안보 환경이 엄중한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한-미 관계 위기설을 퍼뜨리는 일각의 행태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정부 관계자”와 “여권 관계자”한테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 제기로 들린다.
전에는 한-미 간 정보 공유 제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고 해소되거나, 언론에 알려지더라도 상당한 시차를 두고 불거졌다. 주한미군 쪽의 정보 공유 중단은 이전 정부에서도 한-미 간 대북정책 이견 등과 관련해 여러차례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1년 넘게 정보 공유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 장관도 “간헐적으로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관계자” 발언으로 정보 공유 중단 사실이 사실상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최근 주한미군 쪽은 지난 2월 서해상 미·중 전투기 대치 사건과 관련한 국방부 장관의 항의 및 주한미군사령관의 ‘사과’ 논란,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디엠제트법’ 등과 정 장관 발언을 언급하며 정보 공유 제한 방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팀 내부의 정책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 장관은 이른바 ‘동맹파-자주파 갈등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팀 안에 미국·일본과 협력을 앞세우는 ‘동맹파’ 쪽과 전략적 자율성 제고 및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자주파’ 쪽 사이에 구체적 정책을 두고 때때로 이견이 표출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만약 최근의 논란이 외교안보팀 내부의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를 “터무니없는 일”로 규정하며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한 이 대통령의 의지가 인사 조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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