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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하수·공기가 에너지로...이 기술의 마법

2026.04.20 15:16

[1%를 위한 제1보] 에너지 비책, 금 모으기보다 효과적인 '열 모으기'
 미국이 대이란 해상봉쇄가 시작된 가운데 전국 주유소 기름값은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며 전국 휘발유 가격이 2천원에 가까워졌다. 지난 14일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윳값은 L당 1996.2원으로 전날보다 1.3원 올랐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에너지 분야에서는 '고립된 섬'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1990년 88.7%에서 2024년 93.7%까지 증가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고 국제 지형이 요동칠 때마다 우리 산업과 민생이 함께 출렁이는 이유다.

우리는 에너지라고 하면 대체로 '전기'와 '석유'를 떠올린다. 그래서 '에너지 절약'이라고 하면 불 끄기와 차량 2부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에너지 소비 구조는 다르다.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열에너지가 48%를 차지한다. 또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 65%는 난방과 온수, 취사 등에 쓰이는 '열(Heat)'이다. 가정용 도시가스 소비의 약 88%가 난방에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열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이 쓰는 열에너지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가장 취약한 방식으로 조달하는 구조다. 이 구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다양한 열원을 잘 확보해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막대한 에너지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다. 지하철 환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바람, 하수관을 흐르는 미지근한 하수,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의 열기 등 이 모든 것에는 '온도 차'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에너지로 보지 않고, '폐열' 혹은 그냥 자연 상태로 치부하며 방치해 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들은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 대응을 위해 재생열에너지 비중을 2022년 13%에서 2028년 17.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생열 비중은 3% 수준에 불과하다. 쓰레기 소각열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자연과 생활 속에서 얻는 재생열은 2% 남짓이다. 버려지는 상당한 열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해법은 무엇인가.

'온도 차'가 만드는 마법

 제주 공공임대주택에 설치된 히트펌프 설비.
ⓒ 연합뉴스

해결책은 이미 존재한다. 땅과 공기, 하천과 바다, 하수 등이 갖고 있는 '온도 차'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하수가 어떻게 에너지가 될 수 있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원리는 간단하다. 하수는 사계절 내내 온도가 일정해 늘 10~20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겨울엔 외부 공기보다 따뜻하고 여름엔 차가운, 최적의 '열 저장고'인 셈이다.

여기에 '히트펌프(Heat Pump)' 기술을 결합하면 마법이 일어난다. 히트펌프 속 냉매가 하수의 열을 흡수해 기체가 되고 이것을 강하게 압축하면 온도가 급상승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뜨거운 열을 파이프를 통해 건물 난방에 활용하는 것이다. 여름에는 반대로 더워진 실내의 열을 흡수해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하수로 내보내고 차가워진 공기를 냉방에 활용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전기 에너지 '1'을 투입해 '3~6'배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상용화된 열 공급 기술 중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온도 차 열에너지 활용은 경제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일반 에어컨 대비 약 20~30%의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실외기에서 뜨거운 바람을 뿜지 않기 때문에 도시 열섬 완화에도 이바지한다. 특히 수열에너지는 기존 수로에 열교환기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대규모 인프라 없이도 도시를 에너지 생산 기지로 탈바꿈할 수 있다.

우리는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때 주로 전기차나 태양광 발전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절반이 '열'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에너지의 탈탄소화 없이 탄소중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럽 등 환경규제가 강한 지역에서 히트펌프를 이용한 재생열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특히 환경규제가 강력한 유럽은 재생열 활용의 선두 주자다. 덴마크 에스비에르(Esbjerg)는 2023년부터 해수열을 이용한 난방을 연간 2만 5000가구에 공급(약 50MW급 규모)하고 있고, 코펜하겐은 소각장 폐열에 이어 지열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도시 난방 수요의 상당 부분을 대형 해수 히트펌프와 하수열로 충당한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하수열 히트펌프 시설을 갖춘 헨리스달(Henriksdal) 하수처리장은 도시 전체 지역난방 수요의 약 15%를 해결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또한 센강의 수열에너지를 활용해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 인근 건물의 냉방을 책임지며 역사적 가치와 친환경 기술의 공존을 보여준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버려지는 열을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공공 에너지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지금 '열'인가

 덴마크 에스비에르(Esbjerg)의 모습
ⓒ Unsplash

이른바 '열 모으기'가 본격화하면 우리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이는 단순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 완화를 넘어, 도시의 온도와 서민의 지갑,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일 기회가 될 것이다. 온도차 에너지가 가져올 결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후 위기와 도시 열섬을 동시에 잡는 '해결사'가 된다. 가장 즉각적인 변화는 탄소 배출의 획기적인 감소다.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를 온도 차 에너지를 활용한 히트펌프로 교체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에서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부수적인 효과도 크다. 여름철 에어컨 실외기가 도심에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대신, 물이나 하수의 냉기를 이용해 냉방을 해결하면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열섬 현상 완화'가 가능해진다. 연소 과정이 없으니 도심 내 미세먼지 걱정도 덜 수 있다.

둘째, 열은 에너지 유통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든든한 조력자'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변동성' 문제를 안고 있다. 반면 하수열이나 수열은 연중 공급량이 일정하고 안정적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24시간 흐르는 하수와 강물은 기상 조건에 민감한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며, 국가 에너지 유통망(그리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셋째, 기업의 생존과 가계 경제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경제적 실익은 더 직접적이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이라는 글로벌 무역 장벽 앞에 선 우리 기업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재생열원은 강력한 '생존 무기'가 된다. 일반 가계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인근 하수처리장의 열을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 국제 유가에 춤을 추던 가스비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국산 에너지' 사용이 곧 가계 경제의 실질적인 안전판이 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재생열은 에너지를 생산한 곳에서 즉시 소비하는 '에너지 자립형' 구조를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최근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구축'과 '전력망 부하 완화'에 크게 기여한다. 여름철 냉방 수요를 전기가 아닌 수열 등으로 분산하면 국가적인 전력 과부하 사태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규모 발전소나 송전탑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 없이도 지역 단위의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는 점은 큰 강점이다.

문제는 제도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꽃피울 수 없다. 그동안 한국에서 열에너지는 에너지 정책의 변방에 머물렀다. 이 에너지에 대한 법이 모호하다 보니 투자와 산업 생태계, 시장 형성이 어려웠다. 지난 3월 26일에 발의한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바로 이 제도적 공백을 조준한다.

개정안의 핵심은 '온도 차 에너지'를 법적 재생에너지로 명문화하는 것이다. 기존 태양광, 풍력, 지열에 더해 공기열, 해수열, 하천열 등, 자연 상태의 온도 차 에너지와 하수열 같은 미이용 폐열까지 재생에너지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에 대한 국가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새로운 열원들을 공공건물의 재생에너지 의무 설치 대상에 포함하고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열에너지 기본법'이나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 로드맵' 등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돕는 강력한 입법적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01

필자 서왕진은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이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 델라웨어대 에너지 환경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기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정책 특보, 서울연구원장을 역임했고 2024년부터 조국혁신당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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