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이슈 분석] 160엔의 경고음, 원화 환율도 긴장해야 할까?
2026.04.20 15:51
160엔 위협, '단호한 조치' 경고에도 약세...캐리 트레이드 매력 되살아나
日 금융기관, 두 달간 '역대 최대' 해외채권 매도
일본 엔화가 달러당 160엔 선을 다시 위협받고 있다. 이웃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을 단순한 해외 뉴스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엔화 약세에 대한 일본 정책당국의 고심, 기관투자자들의 해외채권 기록적 매도, 그리고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이라는 지정학 충격이 동시에 겹치면서 아시아 자본 흐름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일본의 '안전자산 신화'에 금이 가는 순간, 국경을 맞댄 한국 금융시장도 그 파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일 후코쿠 상호생명보험은 이번 회계연도 일본 국채 매입 규모를 크게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본 기관투자자들의 조심스러운 기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후코쿠는 올해 일본 채권 보유를 1100억 엔가량 늘릴 계획이라 밝혔는데 이는 직전 회계연도의 4800억 엔 증액 전망과 비교하면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 160엔 위협…'단호한 조치' 경고에도 약세
3월 말 엔화는 달러당 160엔을 넘어섰다. 이는 2024년 7월 이후 처음으로, 과거 일본 정부가 실제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던 심리적 저지선이다. 미무라 아쓰시 재무성 국제담당 차관은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엔화는 이후 아시아 거래에서 일시 160엔 아래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하방 압력 자체는 이어지고 있다.
엔화를 짓누르는 요인은 지정학 리스크와 금리 격차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유의 95% 이상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일본은 유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 비중이 90%를 넘는다.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에너지 수입 비용이 늘수록 엔화 매도 압력은 커지는 구조다. 여기에 일본은행(BOJ)이 지난해 12월 금리를 3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지만 미국 등 주요국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유효하다.
◆ 日 금융기관, 두 달간 '역대 최대' 해외채권 매도
엔화 약세의 이면에서 일본 기관투자자들은 해외 자산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앞서 일본 재무성 대외투자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투자자들은 3월 한 달에만 해외 채권 3조7570억 엔어치를 순매도했다. 2월 순매도 3조4220억 엔을 더하면 두 달 합계는 7조1790억 엔에 달한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 VT Markets에 따르면, 미쯔비시UFG의 데릭 할페니는 일본 은행과 보험사들이 해외 채권을 기록적인 규모로 매도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수요 패턴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 강한 JGB 수요 vs 흔들리는 엔화…엇갈린 시그널
역설적이게도 일본 국내 채권시장 수요는 이례적으로 강하다. 지난 14일 실시된 일본 20년물 국채 입찰에서 응찰률은 4.82로 2019년 이후 가장 강한 수요가 몰렸다. 직전 입찰의 3.25, 지난 12개월 평균 3.2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1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를 통해 SMBC닛코증권 금리 전략가 미키 덴은 "다른 만기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였다"며 "4월부터 시작된 초장기 국채 발행 축소도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다만 핵심은 이런 강한 국내 수요가 엔화 강세로 직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 안에서 돈이 돌고 있지만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금의 규모가 이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현재 투자자들의 시선은 다가오는 28일 일본은행(BOJ) 정책결정회의로 쏠려 있다. 스왑 시장에서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약 30%로, 직전의 55% 수준에서 크게 낮아졌다. 금리 인상이 미뤄지면 일본과 주요국 간 금리차는 더 벌어지고 이는 다시 캐리 트레이드를 자극해 엔화 약세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생긴다. 과거 사례는 이 흐름의 파급력을 보여준다.
앞서 워랜 버핏의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 2020년 일본 5대 상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환 헤지를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엔화 채권을 발행했다. 버핏은 2023년 버크셔 연례회의에서 "(이들 상사주가) 꽤 괜찮은 배당금을 주다보니 약 14%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며 "반면 환 위험을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은 0.5%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쪽에서 14%를 벌고 다른 쪽에선 0.5%로 비용을 낮추면 영원히 돈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저금리 엔화를 조달처로 활용하는 전략이 글로벌 큰손에게도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2024년 8월 BOJ의 깜짝 금리 인상으로 캐리 트레이드는 일시적으로 청산됐지만 주요 중앙은행들이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사이 일본은행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캐리 트레이드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자본 공급국' 된 일본…한국이 읽어야 할 신호
구조적 관점에서 일본의 경상수지 성격 변화도 주목할 대목이다. 일본은 상품 수출국에서 글로벌 자본 공급국으로 전환됐다. 경상수지 흑자는 여전히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상품 수출이 아니라 해외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에서 발생하는 소득수지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일본 기업과 가계가 해외 투자를 늘릴수록 엔화에는 하방 압력이 가해지는 취약성이 자리 잡은 셈이다.
엔화 160엔은 단순한 환율 숫자가 아니다. 에너지 의존, 미·일 금리 격차,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기관·가계의 해외 투자 확대가 한 점에서 만난 결과다. 한국 금융시장에 이 신호는 외면하기 어려운 경고음이다.
미·일 금리차 확대는 원화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일본 자본의 해외 이동은 글로벌 채권·주식시장의 수급을 흔든다. 이웃나라 통화가 '안전자산' 지위를 잃어가는 순간, 아시아 자본 지도는 다시 그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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