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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한 달…‘사용자성’ 90% 인정했다는데

2026.04.20 09:14

혼돈의 산업현장…경영계 ‘기울어진 운동장’ 지적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3월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민노총 조합원들이 행진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안) 시행 한 달 만에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1000건을 넘어섰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하청 근로자에 대한 대기업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면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여파로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은 ‘노조 리스크’까지 마주한 상태다. 하청업체가 많은 조선과 철강, 건설 업종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로 1년 내내 노동 쟁의에 휘말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청 교섭 요구 1000건 돌파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3월 10일에만 하청 노동조합 407곳(조합원 8만1600명)이 원청 221곳을 상대로 교섭 요구에 나섰고, 이틀째까지 하청노조 총 453곳(조합원 9만8480명)이 원청 사업장 248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9일까지 한 달간 372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1011개 하청노조, 지부, 지회 소속 약 14만6000명이 교섭을 요구했다. 실제 교섭 절차에 들어간 사업장은 33곳이다. 노동위원회도 하청 노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전국 지방 노동위에 접수된 사용자성 관련 사건 중 23건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는데 21건에 대해 원청 업체가 ‘사용자성’이 있다고 봤다. 교섭 단위 분리 신청도 70% 가까이 하청 노조 편을 들고 있다. 경영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노동위가 ‘안전’, ‘근로시간’, ‘인력 배치’ 등 핵심 근로 조건에서 사용자성을 인정함에 따라 업무 여건이 비슷한 다른 하청 노조들의 교섭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노란봉투법 시행 후 24일 만인 4월 2일 공공연대노동조합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4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에 대해 이들 공공기관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 기관은 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식적으로 공고하고 협상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도 올해부터 하청 노동조합 3곳과 단체교섭을 하게 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서로 다른 상급단체에 속한 하청 노조들과 ‘별도 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나오면서다. 하청 근로자에 대한 대기업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된 첫 사례기도 하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4월 8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하청지회와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소속 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신청한 교섭 단위 분리를 인정했다.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 포스코는 하청 노조 3곳(한국노총 1, 민주노총 2)과 교섭해야 한다. 포스코 원청 노조까지 포함하면 포스코는 매년 4개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셈이다.


여러 하청노조와 쪼개기 교섭해야”


노란봉투법 시행령은 하청 노조 간 교섭단위 분리를 허용하는 기준을 ‘노조 간 이해관계 공통성’, ‘이익 대표 적절성’, ‘노조 간 갈등 유발 가능성’ 등으로 규정했다. 하청 노조가 “상급 단체(한국노총·민주노총)가 다르거나 처우가 상이하다”고 주장하면 독자적인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그동안에는 ‘근로 조건의 현격한 차이’, ‘고용 형태 차이’ 등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교섭단위 분리가 인정됐다. 포스코 사례로 경영계가 가장 우려해온 ‘쪼개기 교섭’이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청 노조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대응도 쉽지 않다. 하청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다른 인력을 투입해 대체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하청 노조 간 교섭단위를 분리하면 노조별로 쟁의 행위 시점이 달라져 순차적 파업도 가능하다”며 “파업 시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기업 근로자의 안전사고 방지 조치를 이행한 원청 기업이 ‘사용자’로 판정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은 하청업체 근로자의 안전관리비를 법정 요율에 따라 집행하고 관리, 감독할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노동위가 이를 하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법을 잘 지킬수록 하청 노조와 직접 교섭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실제 건설업은 중대재해가 잦은 업종 특성상 교섭 요구가 집중되고 있다. 한 건설사 노무담당 임원은 “안전 문제로 시작한 교섭이 다른 요구로 무한 확장될 수 있어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사용자성 판단 등 보완 입법 필요

하청 노조와 교섭에 임하더라도 법적 분쟁이 줄을 이을 것이란 점 역시 원청 기업의 고민이다. 노란봉투법은 임금, 복지, 근로조건 등 사안별로 협상하는 ‘의제별 교섭’을 허용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는 형편이다. 하청 노조가 상대적으로 사용자성 인정이 쉬운 ‘안전’을 의제로 원청과 교섭 테이블을 차린 뒤 파업을 지렛대 삼아 임금 인상과 직접 고용 등 추가 의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금속노조는 공식적으로 ‘임금’을 교섭 의제로 공식화한 상태다. 이럴 경우 추가 의제마다 사용자성과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지 판단받아야 하므로 원청과 하청 법적 분쟁이 잇따를 수밖에 없다.

경영계에서는 사용자성 등 노란봉투법의 법적 개념을 명확히 하는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최근 매출 5000억원 이상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노란봉투법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약 9곳에서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그 이유로는 ‘하청 노조의 원청 대상 교섭 요청과 과도한 요구 증가’(74.7%)와 ‘법 규정 모호성에 따른 법적 분쟁 증가’(64.4%)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용자성 판단 적용 기준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위원회의 초기 판단이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불복 및 분쟁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으로 파업 등 쟁의 대상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까지 확대된 점도 기업들의 걱정거리다. 노조가 기업 합병과 분할, 사업 재편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갈 경우 기업의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용노동부는 “법 자체가 원·하청 간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제도가 안착 중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을 맞아 4월 13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됐다고 해서 곧바로 임금 인상이나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며 “경영계의 우려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사용자성 인정이 상대적으로 쉬운 산업안전 분야를 앞세워 교섭권을 확보한 뒤 임금, 고용, 복지 등으로 의제를 넓힐 수 있다는 경영계의 우려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산업안전은 일하는 과정에서 원·하청에 관계 없이 원청의 책임 인정 가능성이 크다”며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돼도 교섭 테이블에서 노동계가 임금·고용 등을 요구하면 산업안전 외 나머지는 인정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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