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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하에 야외 세워두고 '머리 없냐' 비하…이명 얻은 이주노동자

2026.04.20 12:07

파주 식육공장, 짐 싼 이주노동자만 5명…사업장 변경 신청·직장내괴롭힘 신고했지만

베트남 이주노동자 응우옌 꽁 투(34) 씨는 지난 2월 11일 저녁 7시 반, 공장 정문 앞에서 "벌을 섰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밤이었다. 추워서 몸이 얼었다.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할지 몰라 불안했고, 이유를 몰라 굴욕감이 들었다.

30여 분 후 사장이 나와 '집에 가라'고 했다.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휴게실로 가자마자 그는 영하 8도를 기록한 온도계를 봤다. 걷기도 힘들어 한동안 온풍기를 쐬고 나서야 귀가했다. 숙소에서 감기약을 먹고 잤다.

투 씨는 이날 거의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서 있었다. 오전에 출근해 일하던 중, 사장이 몹시 화를 내고 질책하며 공장 한 곳에 서 있으라고 지시했다. 그 길로 총 8시간가량 똑같이 서 있었다. 그러다 저녁에 야외 벌까지 섰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에는 "4일 동안 영문을 모른 채 공장에서 쫓겨 났다." 당시 투 씨는 작업 중 떨어진 팔레트에 발가락을 다쳐 절뚝였다. 공장 안에서 사장을 본 투 씨는 '많이 걷지 않는 업무로 바꿔줄 수 있는지' 요청하려고 다가갔다. 사장은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두 달 쉬어"라고 대뜸 말했다. 다음 날 출근 조에 투 씨 이름이 빠졌다.

"두 달"의 뜻을 몰라 집에서 찾아본 뒤, 투 씨는 "일을 할 수 있다. 하고 싶다"고 공장에 사정했다. 투 씨는 다음 날 출근했으나, '베트남으로 돌아가', '집에 가', '바이 바이' 등의 비아냥을 듣고 일을 하지 못했다. 투 씨는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일을 시켜달라고 출근했으나 4일 동안 계속 일을 못했다.

그 다음 주부터 출근이 허락됐는데, 출근한 날 갑자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귀와 머릿 속에서 '삐'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병원을 찾은 투 씨에게 의사는 오른쪽 귀 돌발성 난청을 진단하고 '추후 60%까지는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투 씨는 마음이 무너졌다. 전에도 출근하면 자주 어지러움을 느꼈고 사장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긴장한 채 공장을 다녔다. 지난 한 달 간은 불면증에 시달렸다. 평소 사장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았다. 투 씨는 자신을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달 투 씨가 동료 리티 후에(32) 씨와 함께 사장을 직장내괴롭힘 가해자로 신고한 이유다. <프레시안>은 이달 초 고용노동부 고양지청 인근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월 17일 투 씨가 진료 후 발급받은 돌발성 난청 진단서. 추후 청력 회복 가능성은 약 60%라고 적혀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머리 없냐' 비하에 반성문 강요…크게 다쳐 쉬었는데 야간 맞기도

두 사람은 경기도 파주의 한 식육판매업 공장에서 일했다. 돼지, 소, 닭 등 육류를 삶고 자르고 가공해 족발, 곱창, 감자탕 등의 재료를 만들어 납품하는 곳이다. 임직원 수는 10여 명 정도로, 현장 노동자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다.

투·후에 씨는 사장이 평소 "머리가 없냐"는 비하를 국적을 불문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어를 잘 몰라 다른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머리 없냐'는 말은 잘 알아 들었다"며 "멍청하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이유를 모른 채 반성문 작성을 강요당하거나, 혼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부장이나 팀장이 지시해서 다른 작업을 하다가 사장 눈에 띄면, 사장이 해명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화내며 종종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것이었다.

투 씨는 난청에 걸리기 직전과 직후, 두 차례 반성문 작성을 강요받았다. 그는 "첫 번째 반성문 땐 1시간 반 정도 가만히 서 있게 한 후, 갑자기 사무실로 불려 갔다"며 "반성문을 쓰라 하는데 왜 사장이 화가 났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했다. 한 번 쓰고 반려됐고, 고민 끝에 '내가 외국인이라 사장님 말씀을 다 이해 못했다'고 적고 통과됐다"고 밝혔다.

▲투 씨는 지난 2월 사장으로부터 반성문 작성을 지시받았으나, 뭘 잘못했는지를 몰라 내용을 적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당일 그가 작성한 반성문 내용 중 일부. ⓒ프레시안(손가영)

지난 3월 일하다 손목과 허리를 크게 다쳐 한 달가량 쉬었던 후에 씨도 요양급여 기간이 끝나고 바로 복직하지 못했다. 일을 하게 해 달라고 3일 간 사정했고, 이후 출근 명단에 후에 씨 이름이 다시 올라갔다. 쉬는 도중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장은 후에 씨 눈 앞에서 진단서를 던졌다. 그날 사장은 '의사가 더 쉬라고 한다'고 답한 후에 씨에게 통역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럼 1년 쉬라 그러세요. 아프니까 쭉 쉬라 그러세요. 계속 아플 것 같아 이 친구는. (중략) 영원히 쉬라는데, 푹 쉬라는데. 인상쓰지 마. 너가 잘났어? 인상을 쓰고 있어. 버릇없이 씨. 의사선생님 말 잘 들어? 그럼 내 말을 잘 들었어야지. 의사선생님이 최고야? 난 몰라. 니가 알아서 해. 나는 2주 지나면 너 불법으로 신고할 거야. 난 너한테 계속 문자 보낼 거고. 알았어?"(녹음 파일에 담긴 사장의 말)

▲후에 씨가 지난 3월 크게 다쳐 요양급여 수급(산재) 인정을 받은 통지서. 총 4주 가량의 요양기간이 인정됐다. ⓒ프레시안(손가영)

"항상 소리를 지릅니다"…짐 싼 이주노동자만 5명

사장 때문에 힘들어한 것은 투·후에 씨만이 아니었다. 2년가량 일한 투 씨는 5명의 이주노동자가 짐 싸고 나가는 것을 봤다.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다. 고용허가제 노동자가 비자 만료 전에 본국에 돌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특히 매몰비용이 막대해 웬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면 비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직장내괴롭힘을 신고하며 투·후에 씨는 회사를 떠난 이주노동자 2명에게 진술을 부탁했다. 이들은 공장을 떠나야 했던 사정을 글로 털어놨다.

"저는 이제 필리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몸과 배가 너무 아파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제 사장은 심술궂고, 제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항상 소리를 지릅니다."(전직 필리핀인 직원 A 씨)

"사장이 좋지 않습니다. 항상 욕을 합니다. 일이 너무 힘들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손발에 감각이 없을 정도, 마비될 정도입니다. 사장에게 업무 변경을 요청했지만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전직 라오스인 직원 B씨)

다른 라오스 출신 이주노동자 C 씨도 올해 초 투 씨처럼 영문을 모른 채 "서 있기만 하는 벌"을 서다가, 이후 일주일 가량 강제로 출근하지 못하던 중 귀국했다. 그때 투 씨는 "참고 일하자. 힘들게 왔는데, 돌아가면 더 힘들지 않느냐"고 구글 번역기로 글을 써가며 그를 설득했으나, '힘들다'는 답만 돌아왔다.

▲괴롭힘에 힘들어 회사를 나간 전직 이주노동자 직원이 쓴 자필 진술서 일부. 위는 라오스 출신 B 씨의 글이고, 아래가 필리핀인 A 씨의 글이다. ⓒ프레시안(손가영)

노동조건도 문제…둘이 하던 일 혼자 하게 하고, 지게차 불법 운전 시키기도

노동조건도 열악했다. 몸이 아프다는 토로는 일상적이다. 두 명이 해도 힘든 일을 홀로 하기도 한다. 2024년 6월부터 일한 투 씨는 한국인이 많았던 근무 초기엔 두 명이 조를 이뤄 고기 분쇄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투 씨는 "그러나 이내 한 명이 하게 됐다. 이주노동자가 많아졌을 때"라며 "둘이 교대로 할 땐 손목이나 허리 통증이 덜했는데, 혼자서 다 하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투 씨는 "하루에 약 1톤 정도 고기나 내장을 담은 바구니를 옮기는 것 같다"며 "약 50킬로그램인 돼지 뒷다리 바구니 등은 예전엔 두 명이 같이 옮기고 쌓거나 내렸지만, 지금은 혼자 한다"고 토로했다.

돼지 내장 작업을 주로 맡는 여성 노동자는 하루 종일 15~20분마다 한 바구니에 16~20킬로그램 정도를 담고 옮긴다. 후에 씨는 몸무게가 40킬로그램 정도 되는 작은 체구의 라오스인 여성 B 씨가 "차가운 물로 하루 종일 소창을 씻어 손이 얼 정도인데 다른 대책이 없고, 바구니 운반도 너무 힘겨워 몸이 아프게 돼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며 "사장은 거부했다"고 밝혔다.

매일 출근 시간이 바뀌는 문제, 불법을 감내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들은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고 근로계약을 했으나, 오전 7시 40분부터 오후 12시까지 출근시간은 매일 달라졌다. 보통 하루 전에 카카오톡 등으로 알려줬고, 새벽에 갑자기 일정이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자던 중 일정 변동으로 갑자기 불려 나가기도 했다.

투 씨는 지게차 운전 교육을 받지 않았고 자격증도 없지만, 회사 지시로 지게차를 수시로 운전했다. 그는 또 "지난해 4월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야외 작업을 할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휴게실 앞 지붕 아래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사장은 거절했다. 이후 몸이 다 젖어 옷을 다 갈아 입어야 했고, 퇴근 후 감기약을 먹고 잤다"고 말했다.

사업장 변경 신청·직장내괴롭힘 신고했지만

고충을 겪은 이들 대부분은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사장은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한국 고용허가제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 외엔 사장 동의 없는 이주노동자 이직을 금지한다. 견디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간 이유다. 돌아가지 않으면, 스스로 이직해 '불법(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투·후에 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사장의 직장내괴롭힘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최근 관할서 고양지청 근로감독관을 만난 이들은 좌절했다. 담당 C 감독관은 '이게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이 되냐', '이걸(신고서)로 조사 못 한다', '사업장 변경하고 싶어서 신고한 거 아니냐' 등의 말을 먼저 꺼냈다.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인 진술을 하려고" 간 것이었는데, C 감독관은 당일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

이들이 추가 서면 진술서 등을 다시 제출하면서 조사는 진행 중이다. 그런데 고양지청은 자체 조사를 하지 않고, 사업주에게 '외부 노무 관련 기관을 선임해 사건을 조사를 한 후 내용을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사장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된 사건인데, 당사자에게 '셀프 조사'를 시킨 셈이다. 노동부가 2022년 내부 지침으로 이를 허용하면서, 근로감독 현장에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다만 노동부는 최근 '가해자 셀프 조사' 비판 여론이 사회적으로 거세지자, 지난 15일 직장내괴롭힘 사건 처리 지침을 개정했다. 사장이 신고된 사건이면, 조사의 객관성을 위해 근로감독관이 선제적으로 직접 조사를 하는 의무 규정을 뒀다.

지난 16일 C 감독관에게 '왜 면담 당일 조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유선으로 묻자 "신고서에 (직장내괴롭힘 요건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과 관련한 구체적 진술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장 내부와 야외에 벌을 세웠다는 진술은 명확하지 않느냐'고 묻자 "본인 진술일 뿐이다. 벌을 세운 건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었는지 등이 명확치 않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투·후에 씨를 대리하는 장혜진 노무사(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는 16일 통화에서 "근로감독관이 면담 자리에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인 경우 20건 중 1~2건에 불과할 것"이라며 "구체적 진술을 하러 간 당사자를 조사도 안 하고 돌려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혹행위를 당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러 갔고 지금도 그 사장의 지시를 받으면서 일을 하는 신분인데,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이를 포기하지 않게 안정감을 주진 않을망정 의심부터 한다"며 "면담 초반부터 '사업장 변경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이게 직장내괴롭힘이 되느냐'고 하는 건 정말 잘못된 태도"라고 비판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13일과 16일 해당 업체에 전화했으나 "언론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노동부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다만 '벌을 세웠다'는 주장에 대해선 "벌 세운 게 아니라 작업하는 걸 지켜보라고 한 것이고, 그들의 업무 불이행 문제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겨울밤에 투 씨를 밖에 세워뒀다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그런 적 없다. 일방의 주장이다"라고 반박했다. 또 "일을 제대로 못했기에 혼이 나는 것이고, 회사는 부당한 대우, 문제될 만 한 일을 한 적 없다"며 "그들이 사업장을 변경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5명이 회사를 퇴사한 것에 대해선 "본인들이 원해서 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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