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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방식의 고통

2026.04.20 12:46

<정신병을 팝니다>(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이승연 옮김, 사월의 책, 2024)얼마 전 한 제조업 사업장에서 들은 얘기다.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이 업무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단다. 그럼 다른 부서로 옮기도록 하면 될 텐데, 그쪽 부서에서는 안 받겠다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기발령을 내놓고 두 달간 제대로 일을 주지도 않으니 일터 괴롭힘이 되어 버렸다.

사연을 전해 준 사람이 보기에는 노동조합이 회사에 강력하게 항의해서 제대로 배치했어야 할 문제인데, 일이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고 개인들 간의 갈등만 남았다. 꼭 그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직원들이 신입 사원에 대해 '걔는 청소도 안하는 애, 핸드폰만 보는 애'로 평가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규 직원에게 직무 범위를 분명히 알려주고 교육해야 할 회사가 책임을 방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노사 간 풀어야 할 의제가 괴롭힘 문제가 되고, 스트레스 받은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되어 버렸다.

 『정신병을 팝니다』(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이승연 옮김, 사월의 책, 2024)
ⓒ 사월의책

이 사례에서 조직의 잘못이 얼마큼이고, 개인의 잘못이 어느 정도이며, 괴롭힘인지 아닌지를 여기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일터에서 발생한 '괴롭힘' 문제나 갈등,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 문제라고 하는 것 중 상당수는 보상 체계, 업무 분담 체계, 정보 공유 체계, 노동 시간의 길이와 배치 등 일 자체를 다루고 바꿔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문제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결책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런 문제가 '정신 건강' 문제로 나타나면, 함께 해결에 나설 동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고, 회사의 책임은 시야에서 사라지며, 노동조합의 역할은 모호해진다. 가해자에게는 처벌이, 피해자에게는 상담과 치료가 권유된다.

<정신병을 팝니다>의 저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이것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 치료 약물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정신적 고통은 심각해지는 이유라고 본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심각해지는 차별과 혐오, 무의미하거나 너무 고된 업무, 남들과 상호작용을 맺을 시간과 기회의 박탈 등 신자유주의 이후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고통에 빠트릴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원인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이 고통의 사회적 원인은 외면하고 개인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는 서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서사에서 정신적 고통은 손쉽게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고통받는 개인은 의학적 처방과 치료의 대상이 된다.

이런 태도는 신자유주의가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자의 기능을 정확히 반영한다. 일을 계속할 만큼은 기능적이되 소비를 지속할 만큼은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가 지속해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

저자가 보기에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쉽게 정신 질환과 장애의 문제로 치환하는 약물 처방, 상담 등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가리는 '십자가에 붙은 꽃'과 같다. 더 많은 정신 건강 서비스 제공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라고 부르는가. 우리는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노동자 정신건강을 고민한다고 얘기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 얼마 전 이 책의 옮긴이가 쓴 『손절사회』(이승연, 어크로스, 2026)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아 한국사회를 분석했다고 한다. 이 책도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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