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이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의 시간 (중)
2026.04.20 08:00
지난 17일, 200만배럴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홍해 우회항로를 통해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3월부터 중동산 원유의 공급이 끊긴 가운데 위험을 감내하고 우회항로를 통해 첫 원유 도입에 나선 것이죠. 가뭄의 단비 같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전쟁 이전과 같은 원유 수급 안정을 기대하긴 여전히 어렵습니다. 홍해를 통한 원유 공급은 제한적인 탓입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그간 대체 원유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해왔지만, 그 대체 원유가 중동의 중질유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기엔 제한이 있었다”며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 얀부에서 들어오는 그 물량은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실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그런 성상에 맞는 원유이기 때문에 가뭄의 단비 같은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김 실장은 “우회항로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원유는 사우디 얀부항과 UAE 푸자이라항을 통해 받는 원유인데, 두 곳의 공급량이 제한적”이라며 “호르무즈 봉쇄로 갖고 오지 못하는 물량을 대체할 만큼의 대체 루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반가운 소식도 잠시, 다음 날 중동의 바다엔 다시금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한 유조선은 공격을 당했죠.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 리스크가 큰 가운데 기온은 그런 우리들의 속도 모르고 높아졌습니다. 기온의 예년과 다른 상승은 예년과 다른 에너지 소비로 이어집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27~28℃ 안팎의 한낮 기온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기온이 가스 수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로 높은 기온은 전기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전력 생산에 있어 석유의 영향은 극히 적지만, 또 다른 '수입산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의 발전비중은 매우 크고, 이 천연가스도 중동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죠. 공급에 제한이 큰 상황 속 수요 관리를 해야만 하는데, 갑작스런 기온 상승은 또 다른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여름 날씨'의 첫날이었던 지난 13일의 전력수급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날의 우리나라 실제 전력 수요의 최젓값은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20분, 4만 9,034MW로 기록됐습니다. 수요 피크는 7만 2,095MW(오후 2시 45분)로 기록됐고요. 출근시간 무렵, 70GW대로 올라선 수요는 오전 10시 55분 7만 1,769MW까지 오르다 점심시간 사이 6만 8,170MW(오후 12시 35분)까지 떨어졌으나 이내 이날의 최곳값까지 늘어났죠. 서울 기준, 낮 최고기온이 14~16℃에 머물렀던 전주엔 오전의 수요 피크가 그날의 최곳값이었지만, 낮 기온이 오르면서 일 최고기온이 기록되는 시간, 전력 수요 또한 가장 많아진 겁니다.
하지만 전력시장 내에서 상황은 달랐습니다. 전력시장 내 전력 수요는 한낮인 오후 12시 35분, 4만8,407MW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날 전력시장 내 최고 수요는 저녁 7시 20분에 기록된 6만 8,694MW였습니다. 피크의 이전을 넘어 최고-최저의 차이도 줄어든 것이죠. 실제 수요가 치솟는 와중에 어떻게 정작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수요는 줄어들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한낮 수요가 새벽 3시보다도 적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재생에너지, 태양광발전에 있었습니다.
이날 태양광발전이 가동을 시작한 시각은 새벽 4시. 푸르스름한 새벽녘, 빛이 조금씩 늘어나며 발전량도 증가했습니다. 그러다 아침 7시 무렵부턴 본격적으로 발전량이 증가해 총수요의 급증을 상쇄시킬 정도였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태양광 발전량은 늘어나 오전 9시 전후부턴 되려 전력시장 내 수요를 감소세로 돌려놓을 정도였습니다. 정오를 지나면서 잠시 주춤했던 실제 총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태양광 발전량 또한 피크를 지나며 순수요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력시장 내 수요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저녁 7시 20분, 태양광 발전량이 0을 기록했던 시점이었고요.
이날 태양광발전은 하루 평균 12%의 전력 생산을 책임졌습니다. 한낮엔 최고 40.5%의 발전비중을 기록할 정도였죠. 수력과 풍력 등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전체의 발전비중은 하루 평균 17.8%, 한낮엔 최고 44.6%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원자력까지 포함한 전체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을 살펴보면, 이는 하루 평균 절반에 가까운 48.8%의 비중을 기록했고, 태양광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 전체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은 무려 72.9%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먼 일'이라고, '다른 나라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여기는 사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느덧 '잠시나마' 청정전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에너지전환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탈화석연료와 전기화, 그리고 그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에 있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인은 에너지 안보의 확립입니다. 수많은 글로벌 NGO와 싱크탱크가 에너지전환을 외쳤던 주된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이었지만, 실제 국가가 움직인 이유는 안보와 지속적인 성장 동력의 확보에 있었죠. 때문에 에너지전환의 와중에도 미묘한 결의 차이로 비판과 제언,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수 국가가 추구하는 지속적인 성장 동력과 유엔 등 국제사회 차원의 '지속가능성' 사이의 차이, 에너지 안보 중심의 에너지전환과 환경주의적 관점의 에너지전환 사이의 차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각자가 생각하는 온실가스 감축의 우선순위는 다를지라도, 에너지전환이 온실가스 감축을 부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똑같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 쓰더라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높아질수록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기 마련이니까요. 지난주 연재에서 그간의 글로벌 발전량 추이를 살펴본 것처럼, 최근 10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였던 2020년을 제외하곤 전력 수요와 발전량은 해마다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일부 선진국 중심에서 진행됐던 에너지전환이 세계 다수 국가로 퍼져나가면서 전력 수요의 증가세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세는 약해졌고, 2025년엔 전력 생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되려 총배출량이 2024년의 139억 1,400만톤에서 138억 8,600만톤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죠.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30년 136억 4,400만톤까지 단계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 겁니다.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의 주요국 또는 권역별 배출량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떨까. 먼저 선진국 그룹에서 IEA는 미국과 EU,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발전부문 배출을 분석했습니다. 선진국 그룹인 만큼, 이미 2016년 이래로 이들의 발전부문 배출은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미국은 2016년 18억 7,100만톤에서 2025년 15억 2,300만톤으로 18.6%(3억 4,800만톤) 감소했고, EU는 8억 8,500만톤에서 4억 8,100만톤으로 무려 45.6%(4억 400만톤) 감축을 달성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8억 8,200만톤에서 6억 8,700만톤으로 22.1%(1억 9,500만톤) 줄여냈고요. IEA는 이러한 감소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2030년 미국은 14억 1,600만톤, 한국과 일본은 5억 2,400만톤, EU는 2.7억톤을 전력 생산 과정에서 뿜어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이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감소세를 보인다는 겁니다.
개도국도 앞으론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중국의 발전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39억 6,700만톤에서 2024년 57억 3,500만톤으로 정점을 기록했습니다. 중국 자체의 역대 최고기록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단일 국가 기준 역대 최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25년엔 56억 6,900만톤으로 드디어 감소세로 돌아섰죠. 이 역시 발전량 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 발전량의 증가에도 배출량을 줄여낸 성과입니다. 인도 또한 상황은 비슷합니다. 발전부문 배출량은 2016년 10억 4,400만톤에서 2024년 인도 역대 최고인 14억 6,900만톤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엔 14.2억톤으로 드디어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상대적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 속도와 에너지전환 속도 모두 공히 중국과 인도 대비 뒤처진 상태인 동남아 지역의 경우엔 2016년 5억 8,300만톤에서 2025년 9억 6,900만톤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발전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발전부문의 탈화석연료는 그 속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IEA는 2030년까지 중국의 발전부문 배출은 56억 1,900만톤으로 정점 대비 약 2%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개도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여전히 화석연료에 기반한 인프라에 더 많은 의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원의 전환에 박차를 가해 이를 에너지 패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전 국가 차원에서 몰입, 몰두 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인도와 동남아의 발전부문 배출은 2030년까지도 감소세에 접어들진 못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건은 발전설비 그 자체만이 아닙니다. 그 설비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마련되어야만 하죠. “전력망의 용량 부족이라는 심각한 병목 현상이 많은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다”며 “전력망 연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IEA는 설명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599G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253GW 규모의 유틸리티급 대형 BESS가 완공을 목전에 둔 단계이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074G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397GW 규모의 대형 BESS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들 설비를 수용하기 위한 고압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데에 평균적으로 최소 7년이 소요된다는 것이 IEA의 설명이고요. 이는 발전설비의 건설과정보다 훨씬 긴 시간입니다.
IEA는 이러한 역대급 병목 현상을 풀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했습니다. ① 전압 상승(4~7년 소요), ② 송전선 도체 교체(3~4년), ③ 첨단 전력 흐름 제어(2~3년), ④ 송전용량 동적 제어(1~2년), ⑤ 송전용 BESS(2~3년), ⑥ 계통 구성 최적화(1~2년), ⑦ 변압기 동적 제어(1~2년)가 바로 그 대안입니다.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그리고 실제 시공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하드웨어를 대신하는 기술적 대안이죠. IEA는 이들 대안을 종합하면 최소 450GW, 최대 707GW 규모의 발전설비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여러 대안 중 계통 수용 용량 확보에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것은 전압의 승압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은 고압 송전망 신설에 맞먹을 만큼 걸릴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당장의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대안으로는 계통 구성의 최적화(최소 73GW~최대 110GW 확보 가능), 변압기의 동적 제어(최소 73GW~최대 110GW 확보 가능)와 송전용량의 동적 제어(최소 165GW~최대 221GW 확보 가능), 첨단 전력 흐름 제어(최소 165GW~최대 248GW 확보 가능)와 같은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노력과 더불어 송전용 BESS(최소 91GW~최대 132GW 확보 가능)의 설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IEA는 망 차원의 기술적 대응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 사업자의 노력을 통해서도 기존 전력망의 수용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계통에 발전설비를 접속하는 계약 과정에서 유동성을 염두에 둔 '비확정 계통접속 계약'입니다. IEA는 “전력망 확충이 이뤄지기 전까지 보다 신속한 계통 접속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계통 이용의 효율성이나 출력제어의 불확실성, 여러 이해관계자간 비용 문제 등의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위험도 있지만요.
이는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됩니다. 출력제한이 고정적이거나 사전 협의가 이뤄지는 방식인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 그리고 출력제한이 유동적이거나 시간대별로 달라질 수 있는 '유연 계통접속 계약'으로 말이죠.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의 경우, 출력제한이 상시 고정된 값으로 이뤄지는 '출력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과 출력제한이 계획 하에 이뤄지는 '시간대별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으로 나뉩니다. 유연 계통접속 계약의 경우엔 출력제한이 그나마 예상 가능한 '동적 운영형 계통접속 계약'과 출력제한의 예상이 어려운 '완전 비예측형 계통접속 계약'으로 나뉘게 되죠.
영국의 경우, 비확정 계통접속 계약을 통해 계통에 연결된 발전설비 가운데 '누가 먼저 출력 조정을 받는지'를 결정할 때엔 LIFO(Last In, First Out, 후입선출) 방식을 사용한다고 IEA는 소개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계통에 접속한 설비부터 먼저 출력제어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더불어 출력제어 지수(Curtailment Index)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발전설비들의 출력제한 시간이나 제어된 발전량이 균등해지도록 하는 방법도 혼란을 줄이는 방법으로 꼽힙니다. 더불어 일반적이고도 전통적인 급전 원칙인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입찰 가격을 기준으로 출력 조정 순서를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IEA는 미국의 ERCOT(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 텍사스 전력신뢰성위원회)나 호주의 NEM(National Electricity Market, 국가전력시장)이 비확정 접속 계약 발전설비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입찰가 기준 출력제한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앞서 언급한 각종 기술적 대안보다 휘뚜루마뚜루인 것처럼 보이는 대응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비확정 계약의 효과는 되려 기술적 개선보다도 더 크다는 것이 IEA의 분석 결과입니다. 전압의 상승, 송전선의 도체 교체, 첨단 전력 흐름 제어, 송전용량 동적 제어, 송전용 BESS 설치, 계통 구성 최적화, 변압기 동적 제어 등 온갖 기술적 혁신을 통합적으로 적용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최대 707GW의 계통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비확정 계약으로 확보 가능한 전력망의 수용 능력은 최대 910GW에 달하는 겁니다. 특히 북미와 중국을 제외한 기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기술적 개선을 통한 계통 용량 확보보다 비확정 계약을 통한 용량 확보가 더 용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술적 개선 노력을 통해 북미 지역에선 최대 97GW, 아태 지역에선 최대 44GW의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비확정 계약을 통해선 북미에서 최고 207GW, 아태에선 최고 246GW의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지금의 에너지전환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일견 마른 수건을 짜는 듯한 대안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든,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든 구축이 안 된 V2G를 당장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보단 되려 현실성있는접근인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곧 마주할 근미래의 상황은 어떨까요. 그 속에서 우린 이 대안들 외에 추가로 어떤 대책들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그간 대체 원유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해왔지만, 그 대체 원유가 중동의 중질유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기엔 제한이 있었다”며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 얀부에서 들어오는 그 물량은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실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그런 성상에 맞는 원유이기 때문에 가뭄의 단비 같은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김 실장은 “우회항로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원유는 사우디 얀부항과 UAE 푸자이라항을 통해 받는 원유인데, 두 곳의 공급량이 제한적”이라며 “호르무즈 봉쇄로 갖고 오지 못하는 물량을 대체할 만큼의 대체 루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반가운 소식도 잠시, 다음 날 중동의 바다엔 다시금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한 유조선은 공격을 당했죠.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 리스크가 큰 가운데 기온은 그런 우리들의 속도 모르고 높아졌습니다. 기온의 예년과 다른 상승은 예년과 다른 에너지 소비로 이어집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27~28℃ 안팎의 한낮 기온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기온이 가스 수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로 높은 기온은 전기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전력 생산에 있어 석유의 영향은 극히 적지만, 또 다른 '수입산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의 발전비중은 매우 크고, 이 천연가스도 중동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죠. 공급에 제한이 큰 상황 속 수요 관리를 해야만 하는데, 갑작스런 기온 상승은 또 다른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여름 날씨'의 첫날이었던 지난 13일의 전력수급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날의 우리나라 실제 전력 수요의 최젓값은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20분, 4만 9,034MW로 기록됐습니다. 수요 피크는 7만 2,095MW(오후 2시 45분)로 기록됐고요. 출근시간 무렵, 70GW대로 올라선 수요는 오전 10시 55분 7만 1,769MW까지 오르다 점심시간 사이 6만 8,170MW(오후 12시 35분)까지 떨어졌으나 이내 이날의 최곳값까지 늘어났죠. 서울 기준, 낮 최고기온이 14~16℃에 머물렀던 전주엔 오전의 수요 피크가 그날의 최곳값이었지만, 낮 기온이 오르면서 일 최고기온이 기록되는 시간, 전력 수요 또한 가장 많아진 겁니다.
이날 태양광발전이 가동을 시작한 시각은 새벽 4시. 푸르스름한 새벽녘, 빛이 조금씩 늘어나며 발전량도 증가했습니다. 그러다 아침 7시 무렵부턴 본격적으로 발전량이 증가해 총수요의 급증을 상쇄시킬 정도였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태양광 발전량은 늘어나 오전 9시 전후부턴 되려 전력시장 내 수요를 감소세로 돌려놓을 정도였습니다. 정오를 지나면서 잠시 주춤했던 실제 총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태양광 발전량 또한 피크를 지나며 순수요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력시장 내 수요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저녁 7시 20분, 태양광 발전량이 0을 기록했던 시점이었고요.
이날 태양광발전은 하루 평균 12%의 전력 생산을 책임졌습니다. 한낮엔 최고 40.5%의 발전비중을 기록할 정도였죠. 수력과 풍력 등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전체의 발전비중은 하루 평균 17.8%, 한낮엔 최고 44.6%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원자력까지 포함한 전체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을 살펴보면, 이는 하루 평균 절반에 가까운 48.8%의 비중을 기록했고, 태양광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 전체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은 무려 72.9%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먼 일'이라고, '다른 나라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여기는 사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느덧 '잠시나마' 청정전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에너지전환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각자가 생각하는 온실가스 감축의 우선순위는 다를지라도, 에너지전환이 온실가스 감축을 부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똑같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 쓰더라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높아질수록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기 마련이니까요. 지난주 연재에서 그간의 글로벌 발전량 추이를 살펴본 것처럼, 최근 10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였던 2020년을 제외하곤 전력 수요와 발전량은 해마다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일부 선진국 중심에서 진행됐던 에너지전환이 세계 다수 국가로 퍼져나가면서 전력 수요의 증가세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세는 약해졌고, 2025년엔 전력 생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되려 총배출량이 2024년의 139억 1,400만톤에서 138억 8,600만톤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죠.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30년 136억 4,400만톤까지 단계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 겁니다.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의 주요국 또는 권역별 배출량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떨까. 먼저 선진국 그룹에서 IEA는 미국과 EU,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발전부문 배출을 분석했습니다. 선진국 그룹인 만큼, 이미 2016년 이래로 이들의 발전부문 배출은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미국은 2016년 18억 7,100만톤에서 2025년 15억 2,300만톤으로 18.6%(3억 4,800만톤) 감소했고, EU는 8억 8,500만톤에서 4억 8,100만톤으로 무려 45.6%(4억 400만톤) 감축을 달성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8억 8,200만톤에서 6억 8,700만톤으로 22.1%(1억 9,500만톤) 줄여냈고요. IEA는 이러한 감소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2030년 미국은 14억 1,600만톤, 한국과 일본은 5억 2,400만톤, EU는 2.7억톤을 전력 생산 과정에서 뿜어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이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감소세를 보인다는 겁니다.
개도국도 앞으론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중국의 발전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39억 6,700만톤에서 2024년 57억 3,500만톤으로 정점을 기록했습니다. 중국 자체의 역대 최고기록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단일 국가 기준 역대 최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25년엔 56억 6,900만톤으로 드디어 감소세로 돌아섰죠. 이 역시 발전량 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 발전량의 증가에도 배출량을 줄여낸 성과입니다. 인도 또한 상황은 비슷합니다. 발전부문 배출량은 2016년 10억 4,400만톤에서 2024년 인도 역대 최고인 14억 6,900만톤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엔 14.2억톤으로 드디어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상대적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 속도와 에너지전환 속도 모두 공히 중국과 인도 대비 뒤처진 상태인 동남아 지역의 경우엔 2016년 5억 8,300만톤에서 2025년 9억 6,900만톤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발전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발전부문의 탈화석연료는 그 속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IEA는 2030년까지 중국의 발전부문 배출은 56억 1,900만톤으로 정점 대비 약 2%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개도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여전히 화석연료에 기반한 인프라에 더 많은 의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원의 전환에 박차를 가해 이를 에너지 패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전 국가 차원에서 몰입, 몰두 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인도와 동남아의 발전부문 배출은 2030년까지도 감소세에 접어들진 못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IEA는 이러한 역대급 병목 현상을 풀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했습니다. ① 전압 상승(4~7년 소요), ② 송전선 도체 교체(3~4년), ③ 첨단 전력 흐름 제어(2~3년), ④ 송전용량 동적 제어(1~2년), ⑤ 송전용 BESS(2~3년), ⑥ 계통 구성 최적화(1~2년), ⑦ 변압기 동적 제어(1~2년)가 바로 그 대안입니다.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그리고 실제 시공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하드웨어를 대신하는 기술적 대안이죠. IEA는 이들 대안을 종합하면 최소 450GW, 최대 707GW 규모의 발전설비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여러 대안 중 계통 수용 용량 확보에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것은 전압의 승압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은 고압 송전망 신설에 맞먹을 만큼 걸릴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당장의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대안으로는 계통 구성의 최적화(최소 73GW~최대 110GW 확보 가능), 변압기의 동적 제어(최소 73GW~최대 110GW 확보 가능)와 송전용량의 동적 제어(최소 165GW~최대 221GW 확보 가능), 첨단 전력 흐름 제어(최소 165GW~최대 248GW 확보 가능)와 같은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노력과 더불어 송전용 BESS(최소 91GW~최대 132GW 확보 가능)의 설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됩니다. 출력제한이 고정적이거나 사전 협의가 이뤄지는 방식인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 그리고 출력제한이 유동적이거나 시간대별로 달라질 수 있는 '유연 계통접속 계약'으로 말이죠.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의 경우, 출력제한이 상시 고정된 값으로 이뤄지는 '출력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과 출력제한이 계획 하에 이뤄지는 '시간대별 제한형 계통접속 계약'으로 나뉩니다. 유연 계통접속 계약의 경우엔 출력제한이 그나마 예상 가능한 '동적 운영형 계통접속 계약'과 출력제한의 예상이 어려운 '완전 비예측형 계통접속 계약'으로 나뉘게 되죠.
영국의 경우, 비확정 계통접속 계약을 통해 계통에 연결된 발전설비 가운데 '누가 먼저 출력 조정을 받는지'를 결정할 때엔 LIFO(Last In, First Out, 후입선출) 방식을 사용한다고 IEA는 소개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계통에 접속한 설비부터 먼저 출력제어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더불어 출력제어 지수(Curtailment Index)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발전설비들의 출력제한 시간이나 제어된 발전량이 균등해지도록 하는 방법도 혼란을 줄이는 방법으로 꼽힙니다. 더불어 일반적이고도 전통적인 급전 원칙인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입찰 가격을 기준으로 출력 조정 순서를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IEA는 미국의 ERCOT(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 텍사스 전력신뢰성위원회)나 호주의 NEM(National Electricity Market, 국가전력시장)이 비확정 접속 계약 발전설비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입찰가 기준 출력제한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앞서 언급한 각종 기술적 대안보다 휘뚜루마뚜루인 것처럼 보이는 대응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비확정 계약의 효과는 되려 기술적 개선보다도 더 크다는 것이 IEA의 분석 결과입니다. 전압의 상승, 송전선의 도체 교체, 첨단 전력 흐름 제어, 송전용량 동적 제어, 송전용 BESS 설치, 계통 구성 최적화, 변압기 동적 제어 등 온갖 기술적 혁신을 통합적으로 적용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최대 707GW의 계통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비확정 계약으로 확보 가능한 전력망의 수용 능력은 최대 910GW에 달하는 겁니다. 특히 북미와 중국을 제외한 기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기술적 개선을 통한 계통 용량 확보보다 비확정 계약을 통한 용량 확보가 더 용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술적 개선 노력을 통해 북미 지역에선 최대 97GW, 아태 지역에선 최대 44GW의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비확정 계약을 통해선 북미에서 최고 207GW, 아태에선 최고 246GW의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지금의 에너지전환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일견 마른 수건을 짜는 듯한 대안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든,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든 구축이 안 된 V2G를 당장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보단 되려 현실성있는접근인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곧 마주할 근미래의 상황은 어떨까요. 그 속에서 우린 이 대안들 외에 추가로 어떤 대책들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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