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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비인간 주민’ 만나러 갑니다”···재개발 앞둔 정릉골에 모인 인간들

2026.04.20 06:00

동물권 모임 ‘동물교회’ 활동가와 참여자들이 19일 서울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구역에서 진행된 ‘정릉골 비인간 주민 다양성 탐사’의 일환으로 재개발 구역에 자라난 식물들을 관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성한 대문이 없는 동네엔 8가구만 남았다. 철거 통보가 적힌 경고문이 부서진 대문과 창문 곳곳에 붙어있었다. 골목마다 터진 75ℓ 쓰레기봉투와 망가진 의자, 캐리어, 진공청소기, 비디오테이프 등으로 가득한 이곳은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정릉골이다.

사람 말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정릉골에 이른바 ‘비인간 주민’을 부르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꽃마리야. 양지바른 곳에 흔하고, 무리 지어 자라.” “이렇게 얼기설기 만들어진 둥지는 보통 맷비둘기 둥지야. 가지치기할 때 가지인 줄 알고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대.”

동물권 모임 ‘동물교회’는 19일 정릉골에서 ‘정릉골 비인간 주민 다양성 탐사 활동’을 진행했다. 동물교회는 지난해부터 재개발을 앞두고 “주민대책 없는 강제이주 압박 규탄”을 외치는 정릉골 세입자 대책위원회와 연대해왔다. 정릉골은 1960~70년대 청계천 일대 판자촌 철거로 살 곳을 잃은 이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달동네다. 재개발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조합 내 갈등 등을 이유로 아직 철거가 시작되지 않았다.

이번 활동은 오는 22일 지구의날을 맞아 열렸다. 활동가 사이(45)는 “우리 활동은 바이오블리츠(Bioblitz)의 작은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블리츠는 한 지역에 새, 곤충, 나무 등 생물이 몇 종 있는지 시민과 과학자들이 조사하는 ‘생물종 다양성 탐사활동’이다. 사이는 “많은 사람들이 떠났어도 남아있는 이들과 비인간 주민들의 삶은 지속되고 있고, 이런 삶의 공간에서 여전히 우리는 관계 맺을 수 있음을 경험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들은 주로 식물을 관찰했다.

4명의 참여자는 정릉골 초입부터 1m를 채 걷지 못하고 멈춰 도감과 식물을 맞춰봤다. 용기(활동명·30)가 도감을 읽으면 기록을 맡은 최현성씨(29)는 옆에서 이름들을 하나씩 적었다. 잎이 긴 삼각형에 날개가 거의 없는 흰젖제비꽃, 열매가 하트 모양에 까슬까슬한 잎을 가진 냉이, 하트 모양의 잎에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괭이밥까지. 보리(활동명·30)는 카메라 줌을 당기고 빼며 여러 사진을 찍었다.

멈추고, 읽고, 찍고, 적는 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낯익은 식물이 늘었다. “저 보라색은 자주괴불주머니다” “꽃마리가 많네” “이건 서양 민들레일까, 토종 민들레일까?” 용기는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이들은 “왜 사진을 찍으러 와? 얼마 안 있으면 헐 텐데”란 행인의 말에도 꿋꿋하게 비인간 주민을 눈에 담았다. 이날 이들이 만난 식물은 총 41종이었다.

동물권 모임 ‘동물교회’ 활동가 및 참여자들이 19일 서울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구역에서 진행된 ‘정릉골 비인간 주민 다양성 탐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쓰레기가 무성한 동네였지만 곳곳에선 철거민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흔적도 보였다. 참새 세 마리 그림과 ‘참새들 옹기종기 여기에 삶. 주거권을 보장하라’란 낙서가, ‘아무도 없다는, 모두 쫓아내겠다는 오만한 착각 뒤로 여전히 살고 있는 존재들이 지켜보고 있다’란 낙서가 검게 그을린 담벼락과 벽에 적혀있었다.

최씨는 “이 시간에 주식 투자를 하든, 투기할 땅을 알아볼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여기 온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리는 “도살장처럼 어떤 존재가 사라지는 공간들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목격하는 것밖에 못 한다”면서도 “그래도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밀려나는 이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재개발로 퇴거 임박한 ‘정릉골’ 사람들…“40년 살던 동네 떠나 어디로 가야 하나”
서울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143번 시내버스를 타고 성북구 정릉 종점에 내려 정릉천을 건너면 ‘정릉골’이란 마을이 나온다. 북한산 자락에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릉골. 이 마을은 1960~70년대 청계천 일대 무허가주택 철거로 살 곳을 잃은 이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달동네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정릉골은 얼핏 보기에 빈집들만 남...
https://www.khan.co.kr/article/20240819172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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