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금 밥상]허울뿐인 발효 강국
2026.04.19 20:14
퀴즈다. 빵, 술, 치즈, 햄, 병차, 수르스트뢰밍(청어 절임)의 공통점은? 힌트를 더 준다면 김치, 된장, 간장이다. 발효가 정답이다. 모두 발효로 만드는 음식이다.
발효는 인류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각각의 사정에 맞는 재료를 활용해 발효식품을 만들었다. 보리를 많이 생산하는 곳은 보리로 술을 빚는다. 포도, 옥수수, 수수 등 모든 곡물과 과일의 당분은 훌륭한 발효의 소재가 된다. 당분만이 아니다. 소금의 힘을 더하면 지방이 많아 썩기 쉬운 돼지 뒷다리도 발효 과정을 통해 미식의 정점인 하몬이 된다.
냉장고나 얼음이 없던 과거에는 잡힌 생선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켜 소스나 반찬으로 사용했다. 밀은 가루를 만들어 이스트를 더하면 딱딱하지 않은 빵이 된다. 술을 조금 더 발효시키면 식초다. 매일 사냥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원시 부족도 발효의 원리를 알고 술을 담근다. 발효는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지혜다. 하지만 가끔 발효와 관련한 불편한 장면과 마주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말하는 이들의 인터뷰에서 종종 이런 장면을 목격한다. 한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에서 발효 음식이 많다는 것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발효가 우리의 전유물인 양 이야기할 때는 쓴웃음을 짓곤 했다. 이런 인터뷰는 대개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등장해서는 K푸드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뻔한 클리셰를 따른다. 이런 인터뷰가 공유될 때마다 ‘우린 역시 한식’이라며 열광한다. 우리 것이 좋다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하는 것과 비슷한 식생활이 다른 문화권에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미생물과 공생하는 삶은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를 전유물처럼 과장해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마주하면 앞선 애국심이 넘치던 K푸드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화면 속 외국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던 고추장은 일상에서 쉽게 맛볼 수는 없다. 발효의 대표인 김치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김치 최대 수입국이 된 지 오래다. 김치 없이 라면을 먹지 못하던 나조차 요즘은 휴게소나 분식점에 가면 김치를 먹지 않는다. 맛없는 김치를 억지로 먹느니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대신 단무지 한 조각으로 대신한다. 이것이 발효 강국을 자처한 한국의 현실이다.
‘발효 강국’이라는 용어가 낯설다. 왠지 자동차 강국, 반도체 강국, 방산산업 강국처럼 내 삶에 와닿지 않는다. 인류 공통의 자산인 발효를 두고 우리 된장, 간장, 김치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처럼 말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번 직접 만들어 먹자는 것은 아니다. K푸드와 발효를 이야기하려면 많은 이들이 시간과 숙성을 거쳐 깊어진 맛을 찾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마트에서 할인쿠폰에 따라 혹은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것에 손이 간다. 그렇지 않은가.
어제 먹은 된장찌개가 콩으로 발효된 것인지, 아니면 기름을 짜고 남은 것을 수입해 만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잘나가는 K푸드만큼 크지 않다. 외국산 대두박으로 만든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중국산 김치로 차린 밥상 앞에서 외치는 발효 강국 한식은 공염불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발효한 된장, 간장, 김치를 찾자. 1+1 행사나 이름값이 아니라 시간과 숙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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