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늑구야, 고마워
2026.04.19 20:08
동물원을 탈출했던 늑구가 열흘 만에 포획됐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달리 늑구는 잘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포획 당시 체중이 평소 대비 3㎏가량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더 ‘팔팔’했다는 구조대원들의 증언이 있다.
낯선 환경에 굴을 파고 숨어들었을 것이란 추정, 야생성 부족으로 사냥을 못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우려 등 늑구의 행적을 둘러싼 인간의 분석도 대부분 빗나간 듯하다. 오월드를 나선 뒤 강 건너 뿌리공원에까지 출몰했고. 그 와중에 날것(물고기)까지 섭취한 걸 보건대, 늑구는 그간 동물원 반경 2~3㎞를 열심히 ‘싸돌아다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늑대의 속내를 인간이 어찌 알겠는가. 말랐던 이유는 사냥을 못해서가 아니라 사냥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사람이나 가축에게 달려들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와준 늑구가 기특하다.
늑구는 포획됨으로써 자신을 구했고, 한편으론 곁에 있는 많은 사람도 구했다. 도심 복판에서 시간이 길어질수록 늑구가 무사히 생환할 가능성은 낮았다. 늑구는 갑갑할지 모르지만, 현재 그가 가장 안전한 곳은 동물원이 맞다. 폐사했거나 사살됐다면 늑구와 관여된 많은 사람도 지금보다 훨씬 더 곤란한 처지가 됐을 것이다. 대전 오월드는 2018년 퓨마 탈출 사건으로 이미 홍역을 치렀다. 늑구가 무사하지 못했다면 재개장은 한참 미뤄졌을 것이다.
현재 SNS 등에서는 “늑구를 보러 가겠다”는 글이 잇따르는 등 집 나간 늑구가 오히려 ‘복덩이’가 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새끼 때부터 늑구를 애지중지 돌봐온 사람들, 늑구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수색을 벌인 대원들, 이를 응원한 많은 시민을 보더라도 늑구의 생환은 경사가 분명하다.
늑구의 탈출과 귀환을 마냥 해피엔딩으로만 볼 수는 없다. 늑구가 사파리에서만 키울 ‘관상용’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늑구는 2008년 한반도 늑대 복원 사업을 위해 러시아에서 들여온 개체의 3세대 후손이다. 일이 잘 풀렸다면 지금쯤 숲속을 누볐을 테지만, 우리 속에 갇힌 늑구의 처지는 그의 할아버지 늑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늑대 복원은 추진 당시부터 일부 논란이 있던 사업이다. 개체수가 충분히 확보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경우 늑대가 사람과 조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겠는가 하는 시각이 있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처럼, 탈출한 김에 남은 여생 자유롭게 산과 들을 누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혈통 논란 역시 과거에도 있었다. 한반도 늑대는 근 반세기 전에 멸절해 원형 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착성이 강한 갯과 동물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 늑대를 한반도 늑대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늑구에 대해서도 외형을 볼 때 순종보다는 개와의 혼종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늑구를 자연으로 환원한다는 계획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 불가능하다면 어떤 관점에서 사육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늑구의 탈출은 열악한 지방 동물원의 관리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월드는 공공기관이 관리해 사정이 나은 편인데도 잇달아 사고가 났다. 오로지 인간의 욕심으로 사육되다가 재정문제 등을 이유로 방치되거나 폐사하는 동물들이 부지기수다. 2023년 경남의 한 동물원에서는 수컷 성체 사자가 피골이 상접한 채 발견돼 일명 ‘갈비사자’ 논란이 일었다. 동물학대 의혹을 받던 부산의 한 동물원은 문을 닫은 지 5년이 넘도록 운영주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이참에 동물 관리 실태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배경이다.
늑구의 탈출은 언론에도 숙제를 남겼다. 경향신문을 포함해 사건이 벌어진 직후 거의 모든 언론이 늑구가 시내 도로 한복판을 걷고 있는 사진을 보도했다. 이 사진은 AI로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고, 결과적으로 언론 대부분 오보를 낸 것이 됐다.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수색 범위나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고, 이는 늑구의 포획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당시 현장에서는 해당 사진이 소방이나 경찰을 통해 검증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벌어진 일이지만, 언론 스스로 사진의 진위에 대해 의심하거나 이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늑구가 생환하지 못했다면 언론도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생환이 새삼 반갑고, 고맙고, 한편으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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