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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㉛ 쉬리 - 인간관계의 미학,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

2026.04.19 12:00


1999년 2월 13일 관객들에게 공개된 ‘쉬리’는 한국 영화계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당시 한국 영화의 제작비가 평균 10억 원이었지만, ‘쉬리’ 제작진은 총제작비 30억 원을 들였다.

영화가 제작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촬영과 연출, 기술 활용 등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대자본이 집약된 제작 시스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쉬리’는 한국 영화계 확장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쉬리’를 극장에서 관람했던 관객을 제외하면, 동시대 대중이 온라인에서 영화를 다시 마주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1999년 개봉 당시 압도적 스케일로 ‘한국판 블록버스터’로 꼽힌 〈쉬리〉. 판권 문제를 해결하며 2025년 재개봉했다. (사진 제공=CJ ENM)

투자 배급사 폐업 이후 판권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오랜 기간 재개봉이나 온라인 시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마침내 CJ ENM이 '쉬리' IP 활용을 위한 대행사로 나서면서 판권 문제가 해결됐다. 이에 26년 만에 ‘쉬리’는 관객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 2025년 3월 19일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고, OTT도 공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쉬리’라는 매력 가득한 IP를 활용해 리메이크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길 또한 열렸다.

■다시 돌아온 ‘쉬리’, 관객과 가까워지려면

그렇다면 중요한 건, 이 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을 재개하는 방법에 관한 고민들이다.

그간 평단과 대중은 한국 영화 산업에 미친 이 영화의 성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칭찬하고 곱씹어 왔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쉬리’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쉬리’가 다시 관객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현상들에 주목하고 싶다. 즉 지금의 학생과 청년 세대가 ‘쉬리’를 자신들의 콘텐츠 소비의 사정권 안에 둘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대체로 SNS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는 틱톡과 유튜브 숏폼 속에서, ‘쉬리’라는 영화에 대한 완성도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위화감이 전혀 없다며 작품에 관한 흥미를 보인다.

제작 26년 만에 재개봉했지만 ‘전혀 위화감이 없다’는 반응을 얻은 영화 〈쉬리〉 (사진 제공=CJ ENM)

그렇다면 재개봉으로 대중 담론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쉬리’가 오래도록 회자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한 반복되는 강박적인 칭찬 세례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지탱하는 작동 원리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이건 비단 관객뿐 아니라 이 영화의 IP를 활용하려는 창작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쉬리’가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리얼리티를 살린 총격술 연출 등 기술의 혁신을 보여주는 액션 블록버스터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과연 동시대 관객에게 ‘쉬리’라는 프랜차이즈가 어떤 가치를 지닌 채 다가가야 하는지 그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쉬리’를 지탱하는 핵심, 관계와 소통

얼핏 봐서 ‘쉬리’는 다채로운 장르를 품은 총천연 빛깔의 프리즘처럼 보인다.

하지만 ‘쉬리’의 표면을 벗겨내면 드러나는 건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과 관계라는 점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눈에 띄는 구간들이 있다. 바로 서로의 진심을 파악할 수 없는 이들의 소통 방식이 어떤지에 관한 문제다.

이들은 서로의 민낯을 결코 직시할 수 없다. 연인이든 동료든 반드시 매개물을 거쳐야만 내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많은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던 키싱구라미,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 도청 장치 따위의 매개체들이 그렇다.

영화 〈쉬리〉의 핵심은 관계와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사진 제공=CJ ENM)

이처럼 계속해서 극에 배치되는 물리적인 매개물들은 서로의 내면에 있는 접속 통로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온전히 내면을 해독하게 해주는 장치가 될 수는 없다는 씁쓸함도 동시에 남긴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면 결국 서로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 하지만 ‘쉬리’는 그들에게 민낯의 대면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허용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쉬리’는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 온전한 내면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명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들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보기관의 첩보 요원이어서가 아니라, 분단에 놓인 남북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 진심을 터놓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고 믿음을 주고받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게 아닌가.

‘쉬리’는 역설적으로 장르의 외피를 뒤집어쓴 채, 이런 보편의 가치를 관객들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넣고 있다.

영화 <쉬리>의 이야기들

1. 강제규 감독은 1993년 <은행나무 침대> 시나리오를 중국에서 집필할 당시, 북한 유학생들과 어울렸던 경험이 <쉬리>에서 다루는 남북 간의 멜로나 인간적인 면모들을 표현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2. 영화 <쉬리>에서 “하나가 죽으면 다른 것도 죽는다”며 방희가 중원에게 한 쌍의 키싱구라미를 선물하는 장면이 당시 젊은 층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줘 수족관에 이 물고기의 가격 등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3. 강제규 감독은 2009년 20부작 드라마 <아이리스>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고, 이는 사실상 <쉬리 2>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글: 영화평론가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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