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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 <20> 대타협은 없다 … “선별적 봉쇄와 역봉쇄, 다시 쓰는 세계질서”

2026.04.18 11:44

미국과 이란의 휴전속 대치 상황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 정지된 휴전, 계속되는 충돌

전쟁은 끝났는가?

겉으로 보면 그렇다. 총성은 멈췄고, 미국과 이란은 일정 수준의 휴전에 동의했으며, 조건부 해협 재개방과 추가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를 긴장 완화로 받아들이고, 금융시장은 유가 하락과 함께 안도하는 분위기를 보인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휴전은 시작됐지만, 충돌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왜 미국과 이란은 결국 ‘대타협(Grand Bargain)’에 이르지 못하는가?

양측 모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에게 고농축 우라늄과 핵 개발 능력,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협상 카드가 아니라 체제 생존 그 자체다. 이를 내려놓는 순간 전략적 존재 이유가 무너진다.

반대로 미국에게 항모강습단과 상륙강습단, 그리고 역봉쇄를 포함한 군사적 압박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다. 이미 꺼낸 칼을 다시 넣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결국 행동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개인의 신뢰와 리더십 문제를 넘어 미국의 억지력 전체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이란은 포기할 수 없고, 미국도 물러설 수 없다.

그래서 대타협은 없다. 지금 진행되는 협상은 평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누가 먼저 지치고 누가 먼저 굴복하느냐를 겨루는 힘의 관리다. 이란은 선별적 봉쇄로 압박하고, 미국은 역봉쇄로 대응한다. 겉으로는 휴전이지만, 내부에는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긴장이 응축돼 있다.

이것이 바로 ‘정지된 휴전(Paused Peace)’이다. 멈춘 것은 총성이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다.

미국의 ‘능동적 현존함대(AFIB)’ vs 이란의 ‘현존 위협(TIB)’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 대타협은 왜 불가능한가 … TIB vs AFIB의 구조적 충돌

국제정치에서 ‘대타협(Grand Bargain)’은 가장 이상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서로가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포괄적 합의를 통해 안정된 질서를 만드는 방식이다. 핵 프로그램 일부 제한, 제재 완화, 해협 통항 정상화, 군사적 긴장 완화와 같은 패키지 딜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는 이러한 대타협이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유는 단순하다. 양측이 협상하고 있는 대상이 ‘양보 가능한 이익’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붙잡고 있는 것은 ‘현존 위협 (TIB·Threat in Being)’, 즉 존재 자체로 작동하는 위협이다. 고농축 우라늄과 핵 개발 능력, 그리고 드론·모기함대·기뢰·미사일 등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상대의 행동을 제한한다. 핵무기를 발사하지 않아도, 해협을 완전히 닫지 않아도 그 가능성만으로 미국과 국제사회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TIB의 본질이다.

이란에게 시간은 무기다. 위협이 유지되는 한 상대의 부담은 계속 커지고,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은 흔들린다. 제재와 고립에 이미 익숙한 이란에게 장기전은 오히려 협상력을 높이는 구조가 된다. 완전한 봉쇄보다 ‘닫히지 않은 봉쇄’가 더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미국이 보유한 것은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 즉 언제든 실행 가능한 힘이다. 항모강습단, 상륙강습단, 전략폭격기, 특수전 전력은 단순한 군사력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준비 상태를 의미한다. 힘은 사용될 수 있어야 하며, 사용될 것이라는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AFIB의 핵심이다.

미국에게 시간은 압박이다. 이미 막대한 전력을 전개해 놓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비용이 급격히 커진다. 특히 트럼프에게 이는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다. 행동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곧 그의 신뢰도와 리더십의 붕괴로 이어진다. 동맹은 트럼프의 의지를 의심하고, 이란은 트럼프의 억지력을 시험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이란은 TIB를 포기할 수 없고, 미국은 AFIB를 거둘 수 없다. 이 구조에서는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그것은 해결을 향한 과정이 아니다.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누가 먼저 지치느냐를 겨루는 과정일 뿐이다. 협상은 평화를 만드는 장이 아니라, 충돌의 속도를 조절하는 관리 장치가 된다.

그래서 대타협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TIB와 AFIB의 충돌뿐이다. 그리고 이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초기 공습과 함께 이미 시작된 전쟁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이미 시작된 전쟁 …초기 공습과 AFIB의 현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중동 상황을 ‘전쟁 직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다만 그것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은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행동했고, AFIB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로 작동했다.

초기 국면에서 미국은 대규모 공습을 통해 이란의 핵 및 미사일 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핵심 목표는 명확했다. 핵 개발 능력과 장거리 미사일 운용 체계를 약화시키고, 협상 이전에 전략적 중심을 흔드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의 위치를 바꾸기 위한 선제적 행동이었다.

항모강습단(Carrier Strike Group)과 상륙강습단(Amphibious Ready Group), 전략폭격기와 특수전 전력이 동시에 작동했다. 항모는 공중에서 정밀 타격을 수행하고, 상륙강습단은 제한적 점령과 통제를 준비하며, 특수전 전력은 고가치 표적 제거와 침투작전을 담당했다. 이것은 단순한 무력 과시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실행 구조였다.

특히 주목할 사건은 미 공군 F-15E가 격추된 이후 벌어진 조종사 구조작전이었다. 조종사 1명은 즉시 구출됐고, 실종된 조종사에 대한 구조작전도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이 과정에는 수백 대 규모의 항공기와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특수전 전력이 동원됐다. 이는 단순한 구출이 아니라, 미국이 얼마나 깊이 작전 환경을 통제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전쟁은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드러냈다. 미국은 단순히 전력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AFIB의 현실이다. 존재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필요할 경우 즉시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AFIB의 핵심은 ‘Center of Gravity Strike’, 즉 적의 중심을 단번에 흔드는 급소 타격에 있다. 장기 소모전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와 전략 자산을 정밀하게 제거함으로써 전체 구조를 흔드는 방식이다. 초기 공습은 바로 이 전략의 첫 단계였다.

따라서 지금의 협상은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전쟁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과정에 가깝다. 총성은 잠시 멈췄지만, 전쟁의 설계는 이미 끝나 있었다.

미국은 이미 행동했다. 질문은 이제 하나뿐이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결정적 타격으로 나아갈 것인가.

봉쇄 vs 역봉쇄 대치 장면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정지된 전쟁…휴전의 실체와 협상의 본질

2026년 4월 18일 현재, 미국과 이란은 분명 일정 수준의 휴전 상태에 있다. 총성은 멎었고, 양측 모두 전면전 재개를 일단 유보하고 있다. 조건부 해협 재개방이 이뤄지고 있으며, 추가 협상도 계속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긴장은 완화된 듯하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지금의 상황은 평화가 아니라, 충돌이 잠시 멈춰 선 상태에 가깝다.

트럼프는 “협상은 매우 빠르게 갈 것”이라고 말하며 낙관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미국이 회수하는 방안, 해협의 기뢰 제거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안, 그리고 최종 합의 전까지 미국의 해상 압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겉으로는 협상 진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압박을 유지한 채 결과를 강요하는 방식이다.

반면 이란은 훨씬 조건부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선박 통항은 허용하되, 이는 완전한 자유통항이 아니다. 이란이 지정한 항로와 절차에 따라야 하며, 군함의 통과는 여전히 제한된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승인 아래 이뤄지는 사실상의 선별적 봉쇄다. 해협은 열려 있지만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선별적 봉쇄와 역봉쇄의 구조다.

이란은 완전 봉쇄를 하지 않는다. 완전 봉쇄는 즉각적인 전면전을 부르기 때문이다. 대신 특정 선박만 통제하고, 군함 통과를 제한하며, 해상 위험 자체를 가격으로 전환한다. 보험료는 상승하고, 물류는 지연되며, 유가는 흔들린다. 이것이 ‘닫히지 않은 봉쇄’이며, TIB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역봉쇄를 실행한다. 이란 항구를 출발지 또는 목적지로 하는 해상 교통을 제한하고, 관련 물류망 전체를 압박한다. 이란이 해협을 통해 비용을 전가한다면, 미국은 그 해상 흐름 자체를 묶어 되돌려준다. 봉쇄를 봉쇄로 되받아치는 구조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것은 휴전이 아니라 ‘봉쇄 대 역봉쇄’의 전쟁이다. 총성이 멈췄을 뿐, 통제와 압박은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

그래서 현재의 협상은 최종 합의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통제된 휴전 + 조건부 해협 재개방 + 임시 협상 지속’이라는 중간 관리 단계다. 핵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처리, 제재 해제라는 핵심 쟁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거의 다 됐다”고 말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과도한 요구 때문에 성과가 없다”고 맞선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평화도 시작되지 않았다. 양측은 싸우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다음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작은 변수 하나만으로도 전체 구조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지금 중동은 휴전의 시대가 아니라, 정지된 충돌의 시대에 들어섰다.

트럼프의 결단에 따라 변화될 상황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트럼프의 선택… Center of Gravity Strike

협상이 교착되거나 완전히 결렬될 경우, 남는 것은 결국 하나다. 결정적인 타격이다.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단순한 압박이 아니라, 상대의 중심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급소 한방’을 선호한다. 군사적으로는 이것을 ‘Center of Gravity Strike’라고 부른다.

이는 장기 소모전이 아니다. 교량, 발전소, 전력망, 지휘시설, 핵심 군사 인프라와 같은 국가의 핵심 기능을 지탱하는 중심을 정밀하게 타격하여 전체 체계를 마비시키는 방식이다. 핵시설만이 아니라 국가 운영 자체를 흔드는 구조적 타격이다.

트럼프가 언급한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표현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전략적 의도를 드러내는 정치적 언어다. 핵심 인프라를 제거해 전쟁 수행 능력뿐 아니라 국가의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교량과 발전소, 주요 산업시설에 대한 타격은 군사시설보다 더 강한 심리적 충격을 만들어낸다.

이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군사적 효과 때문이 아니다.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신뢰와 리더십이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항모강습단과 상륙강습단, 전략폭격기, 특수전 전력까지 집결한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적 행동 없이 물러선다면, 그는 ‘결국 행동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국 내부에서는 곧바로 “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는 뜻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조롱이 따라붙을 것이고, 이는 단순한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 자체를 흔드는 정치적 타격이 된다.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의지를 의심하게 되고, 적대국들은 미국의 억지력을 시험하려 할 것이다. 특히 중국, 러시아, 북한과 같은 전략 경쟁 상대들은 이를 단순한 중동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 패권의 약화 신호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트럼프에게 후퇴는 평화가 아니라 더 큰 전략적 손실이 될 수 있다. 이것이 AFIB가 가진 시간의 역설이다. 전개된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 사용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낳고, 결국 행동을 강요한다.

물론 결정적 타격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의 TIB는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라 구조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핵심 시설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해협 봉쇄, 비대칭 공격, 지역 확전이라는 반격은 여전히 가능하다. 단기적 승리가 장기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선택해야 한다. 관리된 긴장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급소를 직접 타격할 것인가.

결국 지금 중동의 향방은 군사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군사력을 실제로 사용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결단의 중심에는 트럼프가 서 있다.

이란의 최후 방어수단인 인간방패의 처절한 장면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이란의 마지막 방어 …인간방패와 TIB의 극한

미국이 결정적 타격을 준비할수록, 이란의 대응 역시 더욱 극단으로 향한다.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에서는 미국이 앞서지만, 이란은 다른 방식으로 버틴다. 그것은 정면 승부가 아니라, 상대가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바로 TIB의 극한적 적용이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핵심 시설을 둘러싼 인간방패였다. 핵시설과 주요 전략 인프라 주변에 국민들을 동원해 인간 띠를 형성하고, 공격 자체를 정치적·도덕적 부담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군사적 방어라기보다 체제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에 가깝다.

트럼프가 발전소와 교량, 핵심 산업시설을 타격해 국가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려 한다면, 이란은 그 목표를 ‘군사시설’이 아닌 ‘국민의 생존 공간’으로 바꾸려 한다. 공격의 대가를 단순한 군사 손실이 아니라 국제적 비난과 정치적 후폭풍으로 확대시키는 전략이다.

이란이 끝까지 버티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기서 물러서는 순간 단순한 협상 실패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핵 능력과 해협 통제력은 정권의 협상 카드가 아니라 생존 장치다. 따라서 후퇴는 선택지가 아니다.

이 구조는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닫지 않는다. 완전 봉쇄는 미국의 즉각적인 대규모 군사 개입을 부르기 때문이다. 대신 ‘닫히지 않은 봉쇄’를 유지한다. 특정 선박만 통제하고, 군함 통과를 제한하며, 위험 그 자체를 비용으로 전환한다.

특히 하르그섬과 호르무즈 해협은 이 전략의 중심에 있다. 하르그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이란 원유 수출의 심장부이며, 호르무즈는 세계 에너지 흐름의 문고리다. 미국이 이곳을 직접 무력화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무 강한 타격은 곧 세계 경제 전체의 충격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란은 바로 이 지점을 안다. 그래서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완전히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쉽게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TIB의 본질이다.

결국 이란은 싸우지 않으면서 싸운다. 핵을 발사하지 않아도, 해협을 완전히 닫지 않아도, 인간방패와 선별적 봉쇄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을 만들어낸다. 전쟁은 총성이 아니라 비용으로 수행된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전의 가장 위험한 모습이다. 승패는 더 이상 누가 더 많이 파괴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큰 부담을 상대에게 떠넘기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지금 이란은 바로 그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21세기 안보의 새로운 질서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편승해야 한다는 의미의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힘만이 질서를 만든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순한 지역 분쟁으로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미국과 이란의 일시적 충돌이 아니라, 21세기 국제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총성은 멈추고 협상은 이어지지만, 질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금의 대화는 평화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고 상대를 더 압박할 수 있는가를 겨루는 힘의 관리다.이란은 TIB, 즉 존재 자체로 작동하는 위협으로 버틴다. 핵 능력과 해협 통제력은 사용되지 않아도 상대를 제약한다. 반대로 미국은 AFIB, 즉 언제든 실행 가능한 힘으로 압박한다. 항모강습단과 역봉쇄는 실제 행동의 가능성 자체로 상대를 흔든다.이 두 힘은 서로 양보할 수 없다. 그래서 대타협은 없다.결국 질서를 결정하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힘이다. 누가 더 오래 버티고, 누가 마지막 순간에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가가 결과를 만든다. 트럼프의 선택 역시 이 구조 안에 있다. 그의 결정은 중동을 넘어 미국의 억지력과 세계질서 전체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한국 역시 이 변화의 밖에 서 있을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은 먼바다가 아니라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생명선이다.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이 해역을 통과하는 현실에서, 해협의 불안정은 곧 국가경제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중립’은 현실적인 전략이 되기 어렵다. 해양 교통로와 에너지 공급을 타국의 결정에만 맡긴 채, 그 질서 형성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결과를 수동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단순한 외교적 관망이 아니라, 해양 질서 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필자가 강조해 온 ‘능동적 현존함대(AFIB)’의 개념은 바로 여기서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 청해부대의 임무를 단순한 선박 보호 수준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연합 해상작전과 해협 안정 유지의 핵심 축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역봉쇄와 해협 안전 확보 작전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은 청해부대를 중심으로 ISR 능력을 강화하고, 연합 호송 및 해상통제 작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여기에 소해부대 파견 역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호르무즈의 기뢰는 단순한 군사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해부대와 소해전력의 전개는 단순한 군사적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해양 질서의 소비자가 아니라 형성자로 참여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다.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질서 형성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형 AFIB의 핵심이다.

결국 지금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참전 여부가 아니다. 어떤 질서에 설 것인가의 문제다. TIB가 만든 불안정에 수동적으로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AFIB를 통해 질서 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인가.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질서는 협상이 아니라 힘이 만든다. 그리고 지금, 그 질서는 다시 쓰이고 있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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