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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폭 범죄자' 누가 만들었나?…검찰의 실패를 따라간 언론의 실패[박세열 칼럼]

2026.04.18 07:01

[박세열 칼럼] '기성 언론'이 다른 '수세식 스피커들'과 차별점을 갖기 위해

언론은 검찰의 거울이었다. 언론은 검찰을 '반영'하고 '재현'한다. 우리는 검찰의 내부 사정과 검찰의 수사 내용을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아는 검찰은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검찰이다. 언론은 검찰(검찰 수사)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이유다.

검찰과 언론의 '받아쓰기' 논란은 마치 문학의 유구한 주제인 재현(Representation)을 둘러싼 논쟁과 닮았다. 문학은 실제(present)를 '재(re-)현'할 수 있는가? 검찰은 '실제'이고, 언론은 '재현'이다. '실제'는 현실, 관념, 감정이 뒤섞인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고, 언론은 그걸 구체화 해 언어로 전한다. 언론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며, 실제를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고, 또 아예 재구성하기도 한다.

저널리스트가 유념해야 할 문제는 '언론이 실제를 반영한다'는 착각이다. '팩트 앞에 겸손해 지자'는 오래된 격언은 그 나름의 철학을 담고 있고 폄훼되어서도 안되지만, 언론이 '팩트'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항상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리얼리즘의 착각'에 빠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한때 리얼리즘 작가들은 현실이 '거기'에 '존재'하고, 문학은 그걸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재현의 위기가 찾아오는 건 현실의 모순이 극대화될 때다.

이를테면 검찰수사에서 언론은 2차 가공물이다. 1차 가공물은 검사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검사가 재현한 현실을 언론이 다시 재현하는 것이다. '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의혹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OOO 너(남욱) 결정한 대로 다 해줄 테니까"라는 내용이 있다. 검찰은 OOO를 '윗 어르신(이재명과 정진상으로 검찰은 추정)들이 너 결정한 대로 다 해줄 테니까'라고 공소장에 적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남욱은 법정에서 '위례신도시도 너 결정한 대로 다 해줄 테니까"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

위례신도시가 윗어르신이 된 것은 '실제'에서 글자 몇 개의 작은 변화지만, 검찰의 자의적 해석은 '이재명 일당'을 사건의 중대한 범죄자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로써 현실의 '민간업자들의 비리 사건'은 거물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장됐고, 언론은 검찰의 가공물을 다시 받아들여 '2차 가공물'을 재현하고 재생산해 냈다.

검찰은 스스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팩트의 물량공세를 통해 언론에 검증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의도를 담아 '재현'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특수부 검사들은 '범죄자 이재명'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윤석열의 정적을 겨냥했다.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팩트 물량공세'가 검찰청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 나왔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검사 사칭 사건 위증교사 혐의,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 쌍방울 대북 송금 연루 의혹,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까지. 그리고 이재명의 측근인 정진상과 김용의 뇌물수수와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수사하면서 '윗 어르신(이재명)'이 타깃이라는 암시를 줬다.

그 결과 이재명은 8개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만 5개를 받았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조작이며, 어디까지 거짓인지 우리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물량공세를 정신없이 '재현'해 내기에 바빴던 언론들의 행태가 그야말로 검찰의 '받아쓰기 기계'였다는 논평은 최소한 뼈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리얼리즘 효과 (L'effet de réel)는 롤랑 바르트가 고안한 것으로, 이야기 전개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소한 묘사들(묘사 속의 낡은 시계, 장신구 등)이 서사적 기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건 현실이다'는 느낌을 강화하는 기호로 작용하는 걸 말한다. 일종의 기술적 장치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의 논두렁 시계'다. 그리고 이건 이재명의 '초밥 법카'라든지, '돈 봉투 부스럭 거리는 소리' 따위로 변주된다. '리얼리즘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치들을 검찰이 고안해 내면 언론은 경쟁적으로 디테일을 따라가며 '현실을 재현한다'고 착각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재현의 함정'이다.

이런 작은 장치들은 모여서 '신화'가 된다. 특히 언론이 만든 이른바 '이재명 조폭 연루설'은 '신화화'의 정수다. 영화 <아수라>의 안남시는 이재명의 성남시가 아니지만, 언론은 '이재명의 성남시'로 암시한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8년 7월 21일자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프로그램이 반영된 후 일주일간 104개 주요 언론사에서 '이재명'과 '조폭'이 키워드인 기사 584건이 쏟아졌다.(미디어오늘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 인용 보도) 특히 '아수라' 영화와 비교한 기사는 69건. "'이재명 조폭' 의혹에 '아수라'도 역주행…'안남시·은실장' 다큐같은 디테일"(서울경제), "'그알' 이재명 조폭연루설 제기…영화 '아수라' 속 안남시=성남시라고?"(세계일보), "'재평가 시급' 이재명 보도 전·후 '아수라' 평점…다운로드 순위 역주행"(국민일보), "영화 아수라, 이재명 조폭연루설 암시했다?"(서울신문) 등이다.

영화 <아수라>와 이재명은 전혀 상관 없지만, 언론은 마치 무한증식 기계처럼 '썰'을 기사화하고 이를 통해 조회수를 올렸다. 이건 다시 '밈'으로 형상화돼 퍼지고, AI 알고리즘을 타고 확증 편향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초등학교밖에 안나오고 공장에서 거칠게 일하던 교련복 입은 소년공과 그의 불행한 가족사는 '조폭의 음험한 세계'와 결합해 낙인 효과를 일으킨다. 언론은 이를 '인터넷 트롤'들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트롤'들에게 먹이를 준 건 언론이라는 사실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MIT 연구진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2만6000건의 뉴스 기사와 450만 개 이상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잘못된 뉴스'(가짜 뉴스)가 사실에 근거한 뉴스보다 훨씬 더 빠르고 멀리, 더 널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했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사실에 근거한 기사보다 잘못된 기사를 리트윗할 가능성이 70퍼센트 더 높았다. 그리고 '잘못된 기사'들은 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사탕일 뿐이다. 하지만 사탕이 우리의 영양가 있는 주식을 대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대중은 언제나 진실보다 그럴듯한 거짓말을 선호해 왔다.

대중의 취향과 여론 환경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현실의 정보 유통 세계는 마치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과 같다. 마셜 맥루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널리스트는 "의사들에게 가장 큰 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식별할 수 없다고 말한 파스퇴르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이런 세계에서, 그래도 기성 언론이 '유사 언론'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모 인사는 '재래식 언론'이란 표현으로 기성 언론을 폄훼하지만, 그들이 대단한 새 시대의 언론처럼 여기는 '수세식 스피커'들이 하는 행태는 과거 '재래식 언론'들이 하던 '프레임 조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수세식 언론' 역시 '리얼리즘 효과'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성찰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

검찰 개혁의 시대, SNS 시대에 언론은 끊임없이 '재현 윤리'에 대해 더 성찰해야 한다. 검찰 수사, 폭력, 역사적 사건 등을 다룰 때, 언론은 대상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다시-드러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실제'와의 거리를 인정하고, 아무리 정밀한 재현이라도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으며, 특히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 속에서 현실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기본으로 세상을 대해야 할 것이다. '반성하는 언론'과 '성찰하는 언론'이 결국 가짜 언론들과 진짜 언론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도, 그런 반성과 성찰의 일환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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