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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 이혼 소송’이 던진 질문…‘평판’은 곧 인격이다 [김기동의 이슈&로(LAW)]

2026.04.18 10:54

평판 침해 치명성 이미 입증...더 정교해지기도
“이름을 되찾는 싸움”…평판권은 왜 아직 법이 되지 못했나
배우 앰버 허드(왼쪽)와 조니 뎁이 지난 2022년 5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순회법원에서 진행된 이혼 재판에 참석한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름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 목표는 조니의 이름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미국에서 진행된 영화배우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이혼 소송을 이끈 변호사 카밀 바스케스는 이후 한 대학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승소’가 아니라 ‘이름의 회복’을 강조했다. 조니 뎁은 전 배우자의 언론 기고문 하나로 주요 배역을 잃은 상태였다. 6주간의 재판 끝에 1500만달러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바스케스가 기억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초상권은 이제 상식이 됐다. 내 얼굴이 무단으로 사용되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이름에 거짓을 덧붙여 인터넷에 퍼뜨리고, 알고리즘이 이를 증폭시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피해는 초상권 침해를 훨씬 넘어선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여전히 하나의 독립된 권리로 규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를 ‘평판권’(Reputation Right)이라 부른다.

평판은 ‘이미지’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평판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개인에게는 인격의 외연이며, 기업에게는 신용과 시장 지위의 총합이다. 변호사에게는 사건 수임 능력이고, 스타트업에게는 투자 유치 가능성 그 자체다. 물론 형법 제307조(명예훼손)와 형법 제313조(신용훼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침해 이후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후적 규정일 뿐, 평판 자체를 하나의 권리로 보호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공백이 문제다.

평판 침해의 치명성은 이미 여러 비극이 입증했다. 2007년 가수 유니, 2008년 배우 최진실이 악성 댓글과 허위 소문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설리, 구하라, 이선균, 김새론 등 유사한 사례가 반복됐다. 배구선수 김인혁은 “무시가 답이라 생각했는데 지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설리 사망 이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8%가 악성 댓글이 연예인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사회는 이미 인식하고 있지만, 법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평판 침해에서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시간’이다. 허위 의혹이 커뮤니티에서 확산될 때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광고 계약이 해지되고 활동이 중단된다. 수개월 뒤 사실이 바로잡혀도 브랜드 가치는 사실상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른다. 포털 검색어에 오르기 전 차단할 수 있었던 사안이, 수십 개 매체에 재인용된 뒤에는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도 수습이 어렵다. 평판 리스크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명확한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오늘날 평판 침해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악성 댓글은 오히려 구시대적 방식이다. 경쟁사가 아이디를 바꿔가며 조직적으로 허위 리뷰를 작성하거나, 취업 플랫폼에서 부정적 리뷰를 신고로 삭제하고 긍정 리뷰를 조작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실제 경쟁 학원이 상대 업체를 조직적으로 비방한 사건에서는 온라인사업본부장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만 이는 드러난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 2024년 8월 서울에서 열린 딥페이크 음란물 규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눈을 가린 채 “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 국가도 공범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이제는 인공지능(AI)이 핵심 도구로 부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 시정 요구 건수는 2020년 473건에서 2023년 5996건으로 3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는 딥페이크 음성 하나로 학교 교장이 직무 정지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가짜가 진실을 대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이었다. 삭제 이후에도 데이터는 남는다. 인터넷은 쉽게 잊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이미 평판을 ‘전략적으로 방어’하는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이른바 ‘소송PR’(Litigation PR)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부부는 허위 정보 유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며 법률 자문과 여론 대응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공인이라도 허위 사실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과 삼성물산 합병 이슈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수사심의위원회 신청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여론 흐름을 전환했다. 검찰 프레임이 우세하던 상황에서 ‘무리한 수사’라는 반론이 확산됐고, 이는 결국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 법리와 여론을 동시에 설계한 대표적 사례다.

법과 여론, 두 전선을 동시에 설계하라

한국에서는 이 영역을 오랫동안 홍보대행사의 역할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오해다. ▲삭제 청구 ▲정정보도 ▲가처분 ▲손해배상 청구는 명백한 법률 영역이다. 동시에 법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홍보대행사는 법리를 모르고, 일반 변호사는 미디어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의뢰인은 법정과 여론이라는 두 전선에서 동시에 취약해진다.

기술은 이미 실무에 들어와 있다. IP 추적, 작성 패턴 분석, 언어 모델 비교 등을 통해 허위 리뷰의 동일 작성자를 식별할 수 있다. 과거 변호사가 법전으로 싸웠다면, 이제는 알고리즘과도 싸워야 하는 시대다.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초상권, 성명권, 프라이버시권을 인격권으로 인정해 왔다. 평판권도 같은 선 위에 있다. 초상은 개인의 외면이다. 평판은 개인의 사회적 실존이다. 외면보다 실존이 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평판 침해는 이제 더 은밀하고, 더 광범위하며, 더 빠르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의 생명마저 앗아간다.

법적 메시지와 미디어 메시지를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법리만 앞세우면 여론에서 지고, 여론만 관리하면 법정에서 진다. 두 전선을 동시에 설계하는 것, 그것이 평판권 시대를 맞이한 변호사들의 새로운 소명이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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