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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싫은 당신에게…‘평창 영웅’ 신의현이 건넨 뜻밖의 위로

2026.04.18 06:00

장애인 스포츠 ‘맏형’ 크로스컨트리 신의현 선수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딴 장애인 체육계의 ‘맏형’ 신의현 선수가 지난 10일 서울 올림픽회관에서 의족을 착용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태세로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타디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20㎞ 인터벌 스타트 좌식 출발선에 신의현(46) 선수가 섰다. 해발 850m 설원도 봄기운엔 속수무책이었다. 단단히 얼어붙어야 할 눈은 녹아 질퍽해졌고 양손에 쥔 폴대는 힘을 줄수록 미끄러졌다. 조금만 균형이 흐트러져도 속도가 줄어드는 악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55분45초. 두 팔에만 의지한 채 끝내 완주한 시간이었다.

출전 선수 29명 중 11위. 한국 장애인 스포츠를 대표하는 간판스타 신의현의 패럴림픽 마지막 경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경기를 마친 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밭을 바라보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한 달 뒤인 지난 10일 서울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그는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단정히 넘긴 머리와 흰색 유니폼, 가슴의 태극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Q : 생각보다 키가 크시네요.
A : “다리가 새로 생기면서 사고 전보다 키가 좀 커졌어요. 의족과 환부 사이에 공간이 생기거든요. 5㎝는 컸을 걸요(웃음).”


Q : 마지막 완주 후 눈물을 흘렸는데.
A : “제가 타고 온 스키 자국을 뒤돌아봤는데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제가 패럴림픽에 출전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래도 금메달까지 땄으면 잘한 거잖아요. 그날따라 눈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그냥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첫 국제대회 꼴찌…‘맞춤 스키’ 만든 계기
신의현 선수가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 선수는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동계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92년 첫 출전 이후 처음이었다. 같은 대회에서 동메달까지 추가하며 ‘평창 영웅’으로 불렸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시상대에 오르겠다는 목표로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대회 직전 찾아온 지독한 감기 탓에 컨디션 난조를 겪어야 했다. 그래도 투혼 속에 출전한 6개 종목을 모두 완주하며 끝까지 설원을 지켰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두 다리 없이 누빈 거리만 58.5㎞에 달한다.

20년 전만 해도 그는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2005년 2월 대학 졸업식을 하루 앞둔 그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죠. 교통사고가 난 지 나흘 만이었어요. 눈을 뜨고 어머니 얼굴을 보는데 표정을 보고 직감했어요. 크게 다쳤구나. 이미 두 다리가 사라진 상태더라고요. 처음엔 어머니를 원망했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살렸냐고. 자식으로서 하면 안 될 소리를 쏟아냈죠. 제 나이 고작 스물다섯이었거든요. 술과 담배에 의지해 그야말로 폐인처럼 살았죠.”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끈 건 운동이었다. 2009년 당시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였던 윤정문 아산시장애인복지관장의 권유로 팀에 합류했다. 두 다리를 잃은 지 4년 만이었다. 그는 그 시절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한 장면을 꺼냈다.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어요. 그동안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 몸이 얼마나 망가졌겠어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나 아직 살아 있구나….”

그 감각 하나가 그의 삶을 다시 움직였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2012년엔 장애인 아이스하키, 2014년엔 핸드사이클에도 잇따라 도전장을 냈다.


Q : 원래 운동에 재능이 있었나 봐요.
A : “체력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아요. 부모님이 밤 농사를 지으셨는데 밤 한 포대가 40㎏쯤 되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걸 옮기는 걸 도왔는데 그때 근력을 키웠나 봐요. 그에 비하면 노르딕 스키는 편하죠(웃음).”


Q : 노르딕 스키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A : “주말엔 하키선수로, 평일엔 장애인체육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평창 패럴림픽을 앞두고 정진완 장애인체육회장님이 노르딕 스키를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흔쾌히 ‘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데 나 좋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잖아요. 그런데 이걸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찾아가서 말했어요. 실업팀을 만들어주면 해보겠다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신 선수는 2015년 창성건설 노르딕 스키팀이 창단되면서 본격적으로 크로스컨트리에 뛰어들었다.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노르딕 스키는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두 종목으로 나뉜다. 크로스컨트리가 눈 위를 스키로 달리는 레이스에 가깝다면 바이애슬론은 스키와 사격이 결합한 형태다. 신 선수는 이번 대회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사격 ‘만발’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메달리스트에게도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신 선수는 “처음엔 무서워서 속도를 낼 엄두조차 못 냈다. 첫 국제대회에선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나뒹굴어 사실상 꼴찌였다”며 10년 전을 회상했다. 승부욕이 생긴 그는 좋은 성적을 내는 외국 선수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Q : 좋은 성적에 비결이 있었나요.
A : “장애인 스포츠에서 선수만큼 중요한 게 장비예요. 장애 정도가 제각각이라 표준형이 없거든요. 처음 국제대회에 나가보니 장비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상위권 선수들 장비를 보면서 몰래 길이도 재고 사진도 찍으면서 제 나름대로 설계를 했죠. 자전거나 휠체어 공업사를 찾아다니면서 발품도 팔았고요. 제가 직접 앉아보면서 하나하나 수정하다 사장님이랑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Q : 주행 중엔 어떤 생각을 하나요.
A :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이요. 내가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이게 대수냐,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수백수천 번씩 되뇌다 보면 어느덧 결승선에 와있어요. 모든 스포츠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살죠.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출근하기 싫어도, 하루에도 수차례 그런 나약한 나랑 싸워 이기는 거죠. 저 보고 다들 ‘평창 영웅’이라는데 매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두가 다 영웅이다 싶습니다.”


Q : 평창 올림픽 후 장애인 스포츠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A :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 추위 자체가 장애인에겐 고통이거든요. 환부가 시리고 아픈 데다 혈액 순환도 잘 안 돼서요. 그래도 모두가 국가대표라는 긍지로 정말 열심히 노력해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도 거뒀습니다. 꿈나무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고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신 선수는 2022년 베이징 패럴림픽 이후 마음속으로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가 걸렸다. 그는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은 선수로 활동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은 편”이라며 “나까지 그만두면 평창에서 끌어올린 관심이 줄어들까 싶어 선뜻 결심을 못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패럴림픽에서 5개 메달을 딴 김윤지(20) 선수의 등장은 그에게도 단비와 같았다.


Q : 김윤지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A : “딸 같아요. 실제로 우리 딸보다 한 살 많더라고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힘든 훈련도 거뜬히 해내고요. 처음 봤을 때부터 대성할 거라 여겼는데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했어요. 이번에 윤지가 잘해줘서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요. 덕분에 마음 놓고 은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재능 있는 선수 발굴·지도 ‘제2의 인생’
지난 12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사이클 대회에 출전한 신 선수. 최기웅 기자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스포츠라고 하면 재활 스포츠로 여기곤 하는데 앞으로는 스포츠 그 자체로 봐주면 좋겠어요. 패럴림픽이라고 뭐 다를 게 있나요. 장애인 스포츠도 얼마든지 멋지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걸 보며 일반 장애인들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선수로서는 트랙을 떠나지만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다.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젠 누군가의 출발선이 되고 싶다”고 했다.


Q : 은퇴 후 그리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A : “제가 크로스컨트리 장거리 코스를 좋아하는 건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이 골고루 있기 때문이에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저의 삶에도 오르막을 지나니 평지도 나오곤 하더라고요. 특히 젊은 날의 저처럼 장애 때문에 웅크리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앞으로는 경기장 밖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도울 겁니다. 그러다 보면 쇼트트랙처럼 노르딕 스키가 패럴림픽 효자 종목이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이번 대회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선수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덧붙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 이 한 문장이 그의 지난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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